유빅
필립 K. 딕 지음, 한기찬 옮김 / 문학수첩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난 원래부터 영화든 책이든 SF장르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지만, 유빅은 표지가 너무나도 독특해서 선택하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필립 K. 딕은 너무나도 유명한 작가였다. 그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인 <마이너리티 리포트>, <토탈리콜>, <블레이드 러너>는 모두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원작자는 모르고 영화만 보고 좋아하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웃긴다란 생각이 든다. 사실 영화를 볼 때만 해도 배우 중심으로 봤기 때문에 -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톰 크루즈, 토탈리콜은 아놀드 슈워제네거, 블레이드 러너는 해리슨 포드가 주연이었다 - 원작이 책이란 생각은 하지도 못했고, 찾아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여간, 지금에 와서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SF영화의 원작자란 걸 알게 되니 이것도 인연인듯 싶다.

유빅은 1960년대 중반에 씌어진 SF 소설로 배경은 1990년대 초반이다. 지금이 벌써 2010년이니 책속의 배경이 되는 년도와는 거의 20년차이가 난다. 물론 책이 씌어진 1960년대에서는 30년 후의 미래이지만 현재는 20년전의 과거에 대한 상상이라 생각하니 그 갭에서 웃음이 먼저 난다. 1960년대에 상상하던 미래는 이랬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실상 1990년대를 지나 2010년인 현재에도 그런 기술은 안타깝게도 없다.

현대 사회의 과학기술에서는 유빅에 나오듯 사람을 냉동 보관할 수 있는 기술도 없을뿐 더러, 죽은 것도 아니요 산 것도 아닌 사람 즉 반생인(半生人)이란 개념도 없다. 외과적 수술이나 생명 연장 장치, 혹은 장기 이식으로 생명을 연장할 수는 있지만, 여전히 죽음은 현대 사회에 있어 수수께끼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유빅에서도 생명 연장은 가능하지만 여전히 죽음 후의 세계는 산 사람들에게는 수수께끼와 마찬가지인 듯 하다.

프리콕(텔레파시 능력자)과 일반인들이 공존하는 사회이며, 프리콕들의 능력을 상쇄시켜주는 관성자들도 함께 공존하는 소설 속의 세상. 어느 날 기관의 감시를 받던 능력자들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런사어터는 그들을 찾기 위해 반(反)텔레파시 요원을 프리콕들이 숨어 있다고 판단되는 달에 급파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발생한 의문의 폭발 사건 이후 살아 남은 자들에게 이상한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폭발로 런사이터가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살아 남은 자들인 반텔레파시 요원들은 지구로 돌아옴과 동시에 세상이 쇠퇴해감을 느낀다. 모든 것이 거꾸로 돌아간다. 아니 거꾸로 돌아가는 건 그들 자체일지도 모른다. 시간은 자꾸만 빨리 돌아가 어느덧 1930년대까지 돌아가버리는데....

겨우 살아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에게 닥쳐온 시련은 너무도 컸다. 요원들은 하나씩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왜 시간이 거꾸로 흐르게 된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유일하게 폭파 사고로 죽음을 당했던 런사이터의 메세지가 조 칩에게 흘러 들어 온다. 과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죽은 자의 메세지? 그런 설정이라면 기껏해야 호러 소설쯤이겠지. 역시 아니었다.

유일하게 살아 남은 자가 런사이터였고, 나머지 요원들은 모조리 죽음을 당한 것이었다. 그들은 반생인이 되어 냉동된 상태로 죽은 자들의 시간을 살아 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반생인들 가운데도 특출한 능력과 재력이 있는 조리라는 존재가 그들에게 남은 생명력을 갉아 먹고 있었던 것. 런사이터는 유빅이란 물질을 반생인들의 세상에 투입하여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게 하려고 하지만 조리는 점점더 과거로 과거로 회귀시켜 버린다. 유빅을 발견함과 동시에 혹은 발견 직전에 또다시 시간을 돌려 유빅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죽음 뒤에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죽은 자들의 사회도 어쩌면 산 자들의 사회와 닮아 있을지도 모른다. 천국과 지옥, 연옥등으로 나뉜 세상이 아니라 현재 세상과 맞닿아 있지만 결코 겹쳐지지 않는 세상. 유빅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산 자들은 죽은 자들의 세상에, 죽은 자들은 산 자들의 세상에 직접 관여는 못하지만, 독립된 그들만의 세상 속에서 그들은 서로 간섭하고 관여할 수 있다. 죽음 후 평온을 바랐지만, 죽음조차도 평안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면 인간에게 있어 죽음은 더욱더 두려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생인들의 남은 생명의 찌꺼기를 먹어 치우는 조리. 그는 죽은 자들의 세상에 군림하면서 영원히 살고자 하는 욕망을 표현하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죽음은 모든 인간에게 닥쳐오는 것. 하지만 예로부터 인간은 삶에 집착하고 죽음을 두려워했다. 먼 옛날 진시황은 불로불사를 꿈꿨고, 일본의 이야기에서는 인어 고기를 먹으면 불로불사의 몸이 된다고 한다. 인간이 영원히 살기를 바라는 것은 헛된 욕망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인간의 집착과 욕망은 끝을 모르는 것 같다. 이미 죽은 육체인데도 나머지 반생인을 희생시켜 영원한 삶을 꿈꾸는 조리를 보면서 인간은 삶에 대한 집착을 영원히 놓을 수 없는 존재인가 하는 씁쓸한 기분이 든다.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스피디하게 전개되는 스토리, 그리고 죽음 후의 세상에 대한 수수께끼와 궁금증, 그리고 삶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는 인간을 그리고 있는 필립 K. 딕의 유빅은 벌써 40여년전에 씌어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흥미로웠다. 비록 연대가 현재보다 20년전을 묘사하고 있지만, 전혀 과거의 작품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필립 K. 딕의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로 만들어진 세 작품은 하나같이 어둡고 암울한 미래를 다루고 있다. 유빅은 그에 비해서는 전반적으로 가볍고 밝은 느낌을 보이지만, 산 자보다 죽은 자들의 세상, 죽음 뒤에 기다리는 세상은 여전히 암울하다. 죽음 뒤 평안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남은 생명의 찌끄러기마저도 강탈당하는 기분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는 생각은 할 수 없게 되었다. 죽은 뒤에도 권력과 재화에 따라 남은 생명마저도 빼앗길 수 밖에 없다면, 그것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빼앗기게만 된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제발 이런 미래는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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