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야 가의 전설 - 기담 수집가의 환상 노트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5
츠하라 야스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기담이나 괴담은 묘하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요소가 많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 봐도 그렇다. 여름만 되면 방송했던(지금도 하고 있지만) '전설의 고향'같은 것을 볼 때, 여름이라 무더워도 이불을 뒤집어 쓰고 불을 꼭 끄고 봤던 경험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고교 시절에는 야간 자율학습시간 중 쉬는 시간에 교실의 불을 몽땅 끄고 모여서 귀신 이야기를 하고, 햇빛 쨍쨍 맑은 날보다는 천둥치고 번개치는 어두컴컴한 교실에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무서운 이야기를 서로 들려줬던 기억이 난다. "야~~ 하지마, 무섭단 말야..."라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귀는 반쯤 열어막고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는가, 이불 뒤집어 쓰고 그 틈사이로 TV에서 나오는 귀신 이야기를 본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분명 그건 괴담을 즐긴다는 증거이다.

아시야가의 전설은 무직인 사루와타리와 괴기 소설가인 백작이 콤비가 되어 우리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괴담 연작 소설이다. 표제작인 아시야가의 전설과 송장벌레는 에드거 앨런 포의 오마주 소설로 애드거 앨런 포의 소설을 읽어 본 사람이면 아, 그 소설이라고 퍼뜩 떠올릴 유명한 소설이기도 하다.

일단 사루와타리와 백작 콤비를 보면 참 안어울릴 듯 한 두 사람이 좋은 짝을 이룬 경우처럼 보인다. 단지 두부를 좋아한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콤비가 되다니.. 이거 설정부터 무척이나 흥미롭다. 아니 솔직히 말해 난 많이 웃었다. 나도 두부를 좋아하긴 하지만, 이 둘을 따라가려면 멀어도 한참이나 멀었다. (笑) 게다가 두부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음식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오는데, 두 사람의 취향이 얼마나 잘 맞아 떨어지는지 두 사람의 대화를 보고 있자면 대담 혹은 만담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괴담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면서도 웃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 두 사람의 대화가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백작 캐릭터의 경우, 왠지 교코쿠 나츠히코의 교코쿠도 시리즈에 나오는 헌책방 주인이자 음양사인 교코쿠도를 닮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교코쿠도는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좋아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첫번째 작품인 반곡터널의 경우 터널 괴담과 자동차에 씌인 혼령의 조화랄까,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백작의 해석은 조금 달랐다. 물론 터널에는 여러 가지 사고로 인해 나타나는 유령 이야기가 많이 존재하지만, 차에 유령이 씌었다기 보다는 자동차 자체가 사고에 대해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이란 해석은 무척이나 참신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중고차의 경우 어떤 것을 기억하고 있을지... 생각해 보니 두려워진다.

아시야가의 몰락은 어셔가의 몰락(혹은 붕괴)의 오마주 소설로 소재는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에서 따왔지만 설정은 사뭇 다르다. 이를 일본 특유의 이야기로 바꿔 놓은 점이 특히 흥미로웠다. 이를테면 너구리 요괴나 여우 요괴같은 것. 특히 아시야 도만과 그의 라이벌인 아베 세이메이의 이야기가 등장해서 내 관심을 확 잡아 끌었다. 아시야 도만은 내가 잘 모르겠지만, 아베 세이메이라고 하면 최고의 음양사가 아닌가. 결국 이 라이벌의 관계는 현대에까지 이어진다는 설정이 있었는데, 아시야가의 건물이 붕괴하기 직전 별이 그려진 아베 건설의 트럭이 지나갔다는 것을 읽었을 때는 완전히 자지러지게 웃어 버렸다. 아, 이런 식으로도 전개가 되는구나 하고...

고양이등 여자의 경우,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란 우리 속담이 강하게 떠올랐던 작품이었다. 이게 괴담이 아니라 (소설의 설정이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다면 그것만큼 두려운 일도 없었으리라. 카르키노스는 지벌과 관련한 이야기인데, 문득 먹을 건 잘 가려 먹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이를 일종의 미신이라 치부할 수도 있지만, 조금 찜찜한 생각이 들었던 것은 생명이 있는 것을 잡아 먹는다는 행위에는 잡아 먹히는 대상에게는 큰 고통을 준다는 것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런 걸 보면 육식을 금하고 채식을 하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케르베로스는 일본의 풍습이랄까, 전승 설화이랄까 그런 느낌을 많이 주는 단편이었다. 물론 케르베로스는 서양 신화에서 지옥을 지키는 파수견을 뜻하지만 그걸 일본적으로 만들어 놨다고 할까. 쌍둥이가 태어나면 하나를 물에 띄어 보내는 솎기란 풍습과 그 저주를 막기 위한 결계의 형성 등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가난했던 옛시절 쌍둥이를 다 키울수 없어 버려야만 했던 죄책감을 쌍둥이중 하나를 버리지 않으면 마을에 재앙이 닥친다는 이야기로 바꾸었을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가끔 지맥을 끊어 놓아 마을에 지벌이 내리는 경우 석상같은 것을 세워 그 재앙을 피하려고 하는 행위가 있어 왔다. 풍수지리학적으로 보자면 그렇다는 건데, 의외로 이게 꽤나 설득력있는 의견이라 생각한다. 무조건 미신으로 치부할 일은 아닌듯 하다는 생각을 해왔었는데, 역시 같은 동양권이라 그런지 일본도 그런 비슷한 이야기가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이 단편을 보면서 든 다른 하나의 생각은 물이란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이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서양의 경우 스틱스 강을 건너면서 이승의 기억을 잃게 되며, 동양의 경우 물(호수나 우물, 강등)은 저승으로 통하는 입구라 믿어 왔다. 뭐랄까, 인종도 민족도 나라도 달라도 어느정도 물에 관한 믿음은 비슷비슷하다고 할까. 

송장벌레 역시 에드거 앨런 포의 황금벌레(혹은 황금충)의 오마주 소설이다. 지금은 황금벌레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개미에 기생하는 창형흡충에 관한 이야기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본 내용과 같아서 무척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서양 풍습이나 미신, 믿음에 관한 이야기의 조화, 정말 일본다운 이야기,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할 것 같은 이야기, 이건 정말 이 세상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될 것 같은 이야기 등 아시야가의 전설에 실린 이야기들은 무척이나 독특하다. 그러면서도 복잡하다거나 잡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이러한 것은 작가의 필력이 상당 부분 받쳐주기 때문이기도 하고, 작가의 스토리 구성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흔히 들을 수 있는 괴담의 새로운 해석, 근친 상간으로 이어져 내러온 혈족의 비밀, 여자의 한과 집착, 지벌, 생태계 교란으로 인한 새로운 종의 등장, 기묘한 풍습과 인습 등 다양한 소재로 다양한 이야기가 탄생했다. 이는 작가가 가진 지식의 양이 방대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그러나 분명히 오소소하고 소름이 돋을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간헐적으로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든 이유는 등장 인물의 캐릭터 설정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괴담이지만 의표를 찌르는 유머 코드의 결합과 괴담의 뒤에 숨어 있는 새로운 해석 등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기존의 괴담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놓은 느낌이랄까. 난 퓨전이란 걸 싫어하지만, 이런 식의 퓨전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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