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큐에게 물어라
야마모토 겐이치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난 일본의 다도 문화가 일본인의 성격을 극명하게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혼네(本音, 본심)와 다테마에(建前, 표면상의 방침)을 엄격히 구분하는 그런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즉, 마음 속에는 칼을 품고 있지만 겉으로 웃는 모습이랄까. 차 한잔을 앞에 두고 담소를 나누는 듯 보여도,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그런 느낌이다. 까다로운 법도와 향긋한 차 뒤에는 무엇이 숨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당사자 이외에는.

이 소설에는 흥미로운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센코쿠(전국)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물이면서도, 그 시대를 주름잡았던 센코쿠 시대 무장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인(茶人)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것이다. 센코쿠 시대의 무장이라 하면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도쿠카와 이에야스를 말한다. 센코쿠 시대의 혼란했던 시기를 평정하고 전국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던 오다 노부나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죽임을 당했다. 자신의 주군을 죽음으로 몰아 넣고, 전국 통일을 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분명 걸출한 인물이었지만 민심을 장악하기엔 부족했다. 그의 사후 다시 혼란에 빠진 일본을 재통일한 인물이 바로 도쿠카와 이에야스로 이 세 명의 장수에 대한 이야기는 무척이나 유명하고 또한 그들 각각의 이름을 딴 소설도 많이 나와 있지만 다도를 하는 다인의 이야기는 처음이라 무척이나 신기했다.

둘째는 조선과 조선인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는 것이다. 우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책 중반부에 보면 조선의 사신인 김성일과 황윤길이 등장한다. 나중에 조선으로 돌아가 두 사람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일본 정세에 대한 극명히 대조적인 의견을 내놓는데, 김성일의 의견에 커다란 영향을 준 인물이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 리큐였다.

그리고 리큐가 처음으로 사랑했던 여인이자, 리큐가 전 생애를 통해 절대적인 미를 추구하게 만든 계기를 준 사람이 조선 여인이다. 사대부 집안의 여인이었지만 일본으로 팔려오게 된 한 여인. 그녀는 리큐에게 절대적 미의 추구를 하게 한 인물이자,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리큐가 대립하게 된 요소중의 하나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가 가지고 있던 향합이 바로 그 이유라 볼 수 있다.

세번째로는 이 책의 구성이다. 이 책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의 대립이 극한에 달한 리큐의 할복으로 부터 시작해서 리큐가 절대적인 미를 추구하게 된 계기가 된 사건까지, 근 50년에 달하는 세월을 거꾸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각각 다른 사람의 시점으로 리큐란 인물과 리큐의 삶에 대해 보여 준다. 그중에는 리큐를 적대시한 사람도 리큐를 존경한 사람도 리큐를 사랑한 사람도 있다. 각기 다른 시점은 리큐란 사람에 대해 편협한 시각이 아니라, 여러 가지 시각으로 그를 판단할 수 있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리큐는 훌륭한 다두(茶頭)이자 훌륭한 책사이기도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그의 대립은 향합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물론, 그것이 한가지 이유이기도 했다) 결국은 리큐의 이름이 가진 뜻처럼 너무 날카로운 사람이었기에 그 대립이 강해졌다. 날카롭게 벼리는 것만이 아니라 가끔은 그 날카로움을 숨기기도 해야 하지만, 리큐는 그러하지 못했다. 아마도 그러한 것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심기를 건드리기도 했고, 또한 불안하게도 했으며, 질투하게도 만들었으리라. 그가 좀더 굽힐줄 아는 인물이었다면 할복으로 인한 죽음을 피할 수는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그의 성질과는 맞지 않았다. 

리큐는 또한 뜨거운 가슴을 지닌 남자였다.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은 지극했고, 그것은 평생 그 가슴속에 남았다. 빼앗기느니 차라리 죽인다. 어찌보면 사무라이 정신을 보여주기도 한 그의 사랑. 하지만 그로 인해 주변인들은 고통받았으리라. 리큐의 전처나 첩들은 그를 사랑했고 그에게 사랑받았지만, 그의 마음에는 늘 한 여인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 소설은 사실과 허구가 어느 정도 섞여 있게 마련이다. 사실 현대인들 입장에서는 역사조차 어느정도가 사실이고 어느 정도가 허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역사는 늘 사람에 의해 씌어져 왔고, 지배자가 누구이냐에 따라 때로는 왜곡되고 때로는 가감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리큐에게 물어라에 나오는 이야기가 어느 정도까지가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센코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회적 모습이라든지, 당시의 다도 문화, 정치적 문제 등에 관한 서술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했다고 보여진다. 특히 다도 문화에 관한 이야기는 무척이나 흥미롭다. 도코노마에 장식하는 화기나 족자등에도 의미가 있고, 다구나 다원등에도 제각각의 의미를 부여하는 흥취와 정취, 그리고 다실에서 보이는 풍경등은 인고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인위적인 것이나 극도의 자연스러움을 보여준다.

죽음에 이르러서도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았던 한 다인의 삶과 죽음, 그리고 처연한 사랑.
책을 펼치면 은은하고 쌉싸름한 차의 향기가 풍겨나오는 듯 하다. 아니, 여전히 노 앞에서 찻물을 끓이고 차를 끓여 내는 리큐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