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하는 사람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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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있어 죽음이란 늘 자신을 따라다니는 존재이다. 물론 젊은이들이야 아직 살아갈 날이 구만리인데.. 라고 하면서 죽음을 외면하기 일쑤이지만, 사람의 인생이란 한 치 앞도 내다 보지 못하는 것이기에 오늘 살아 있다고 해서 내일도 살아 있으란 보장은 없다. 굳이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주변에서는 늘 사람이 죽는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 죽을 수도 있고,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그리고 가족이나 친지 중에 죽지 않은 사람도 없고, 죽지 않을 사람도 없다. 인간의 목숨은 한정되어 있는 것이라, 연장은 가능해도 막지는 못한다.

여기에 한 청년이 있다. 그의 이름은 사카쓰키 시즈토.
그는 언제부터인가 일본 전역을 떠돌면서 사고나 자살등 비명횡사로 죽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고인을 기리는 뜻하는 말에는 여러 가지 단어가 있다. 명복을 빈다거나 추도를 한다거나 추모를 한다거나, 혹은 극락왕생을 빈다거나 성불하십시오라고 말하거나.
그러나 이 청년은 애도라는 말을 쓴다. 그리고 이 청년은 호상으로 죽은 사람이 아니라 우연찮게 피치 못한 죽음을 맞은 사람들을 찾아 다닌다.

애도(哀悼)란 말은 사전적 의미로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석해 한다는 뜻이다. 시즈토는 왜 애도란 표현을 쓸까. 다른 말도 있는데... 시즈토는 생전의 고인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애도란 표현을 쓴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고인에 대해 세가지를 질문한다.
고인은 어떤 사람에게 사랑받았는가, 어떤 사람을 사랑했는가, 그리고 어떤 일로 사람들이 고인에게 감사를 표했는가. 이는 고인의 생전 모습을 전부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이는 죽음의 경중을 떠나 고인이 어떤 사람인가를 떠나 죽음 자체를 슬퍼하는 행위라 볼 수 있다. 순수하게 죽음 자체를 슬퍼하는 행위라..
우리는 고인이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고 등을 강조하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하기에 애도받고 슬퍼해야한다고 말을 한다. 그러한 우리의 관점을 이 청년은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애도하는 사람은 세 사람의 시점으로 서술된다.
하나는 인간을 불신하는 기자 마키노 고타로. 그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가슴에 품은 채 살아가는 남자이다. 기사를 써도 사람들을 자극시킬 기사만을 쓰며, 사람의 죽음을 한낱 기삿거리로 치부한다.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더 자극적으로 쓸 것일까에 대한 생각만을 하는 사람이다. 마키노는 우연히 시즈토를 만나 그의 뒤를 따라 다닌다. 처음에는 머리가 어떻게 된 녀석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지만, 그의 사심없는 행위에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두번째는 어머니 사카쓰키 준코이다. 그녀는 말기암으로 고통받고 있고, 아들 시즈토가 집으로 돌아와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강요는 하지 않는다. 시즈토의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는 어머니를 중심으로 이야기되어지는데, 아버지, 동생, 그리고 사촌동생등의 이야기도 함께 나오는데, 준코는 시즈토가 죽음에 집착하고 애도하는 사람이 되었던 원인에 대해 독자에게 어렴풋한 이해를 시키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 파트에 나오는 어머니의 병의 악화와 더불어 새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시즈토의 여동생 미시오의 이야기는 생과 사는 결코 동전의 양면처럼, 혹은 멀찍이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늘 함께 있는 존재란 생각을 하게 한다. 어머니의 죽음과 동생의 출산. 인간은 언젠가 죽기 때문에 생을 더욱더 소중하게 여길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세번째는 남편을 죽인 나기 유키코. 그녀는 왜 남편을 죽였고, 남편은 왜 그녀에게 죽여달라고 했는가. 유키코는 남편이 죽었던 자리에서 그를 애도하고 있는 시즈토를 만나게 되고, 시즈토를 따라 다니게 된다. 여전히 자신의 주변을 배회하는 남편의 영혼은 유키코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유키코는 시즈토와 만나 그를 따라다니면서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꺠닫게 된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주인공인 시즈토의 시점은 없다. 다만 그의 주변인들을 통해 그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 준다. 그가 애도하는 사람이 된 이유를 시즈토에게서는 직접 들을 수는 없지만 그 주변인들을 통해 우리는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눈물이 핑돌았다. 그러나 책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나도 처음엔 시즈토의 애도하는 행위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다. 하지만 시즈토가 묻는 세가지 질문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고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고 떠올리는 것을 보면서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다. 신문기사 따위에 실린 고인에 대한 이야기 몇 가지 - 그것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만한- 가 아니라 실제 고인의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살아 생전에는 정말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던 사람이었더라도 그들에게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 사랑해줬던 사람,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비록 죄를 지었던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시즈토의 애도는 바로 그러한 것이 아니었을까. 순수하게 슬퍼하고 기억하는 행위.

하지만 조금 불만인 점도 있었다. 시즈토는 아무런 접점도 없는 사람들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전국을 떠돌지만, 결국 자신의 가족은 외면했다. 가장 사랑해야 할 가족, 그중에서 어머니는 병이 깊어지는데, 시즈토는 연락 한 번 하지 않는다. 나중에 시즈토가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되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마키노 역시 마찬가지. 그는 인간 불신이었지만 시즈토를 만나 이런 저런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 조금 달라지게 되지만, 결국 아버지는 용서하지 못했다. 가족을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결국 사람은 끝까지 불완전한 존재로 밖에 남을 수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사고나 비명횡사로 죽은 사람은 신문에 실리거나 뉴스거리가 되지만 사람들에게 곧 잊혀지게 된다. 그러한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 그리고 기억하는 것. 이것이 시즈토가 하는 일이다. 생전에 만나본 사람의 죽음에 대해 슬퍼할 수 있을까. 난 솔직히 말해서 이해는 안되었지만, 적어도 이런 사람이 있었음으로 해서 누군가가 기억된다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죽음이란 일차적으로 육체의 소멸을 뜻하지만, 사람들의 기억속에 고인이 남아 있는 한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질 때 완전히 그 사람은 소멸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척이나 슬픈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가족들은 고인을 기억하겠지만, 자신의 일이 아닌 이상 처음엔 안되었다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어느새 그 죽음에 대해 잊어버니까. 시즈토는 그것이 안타까웠던지도 모르겠다. 세상에서 단 한사람만이라도 기억을 해준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일까.

내 주변의 친지분들 중에는 사고로 운명을 달리하신 분은 없다. 천수를 누리시다 가신 분이나 병환으로 돌아가신 분은 있을지 몰라도... 하지만 초등학교 때 친구 하나가 사고로 죽었다. 초등학교때는 제법 친해서 늘 붙어 다녔는데, 중학교부터 다른 학교를 배정받고는 연락이 끊어졌고, 고교시절에 친구로 부터 그 친구의 죽음에 대해 듣게 되었다. 오토바이 사고였다고 한다. 그때, 난 울지 않았다. 고교생이었던 내 또래 나이에선 죽음이란 다른 나라 이야기만큼이나 먼 것이었고, 오토바이 사고란 정말 별세계 이야기였으니까. 애도하는 사람을 읽으면서 그 친구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만약 여기에도 시즈토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 아이를 애도해줄까...라고. 그 아이를 기억해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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