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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사회를 구성하는 집단 중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은 바로 가정일 것이다. 그리고 그 가정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는 가족 혹은 식구라고 한다. 가족이란 혈연과 혼인 관계등으로 한 집안을 이룬 사람들을 의미하며, 식구는 같은 집에서 끼니를 함께 하며 사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요즘은 식구보다는 가족이란 말을 많이 쓰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아무래도 예전에는 밥 안굶고 사는 게 제일 큰 목표이다 보니 식구란 말을 많이 썼지만, 요즘은 밥은 다 제대로 먹고 다니는 형편이니 식구보다는 아무래도 정감가는 가족이란 말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여기에 한 가족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제대로 된 가족이 아니다.
어머니, 아들 둘, 딸 하나, 손녀 하나로 구성된 이 가족은 겉으로 보기엔 다른 가족과 별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정말 이런 가족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막장가족이다.
큰 아들은 전과 5범에 로리콘 변태이고, 둘째 아들은 유일하게 대학을 나왔지만 영화 감독으로 성공도 못하고 마누라는 바람을 펴서 이혼을 했다. 딸은 결혼했다가 바람펴서 소박맞았고, 지금은 물장사를 하고 있는데, 이혼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남자를 만난다. 손녀는 소녀의 시쳇말로 발랑 까진 날라리.
게다가 더 깊은 사정이 있다. 큰 아들인 오한모(오함마)는 아버지의 전처가 낳은 자식이고, 딸인 미연은 엄마가 바람 펴서 낳아온 자식이다. 이 소설의 화자인 오인모가 유일하게 어머니와 아버지의 피를 모두 이은 자식이라 할 수 있다. 자식이 딸랑 셋인데, 형제간에는 양쪽으로 핏줄이 이어진 사람은 하나도 없단 말이다. 세상에 도대체 이런 가족이 있을수 있나 싶을 정도다.
그런 사람들이 엄마의 집으로 들어오게 된다. 오함마야 원래부터 엄마 등골 쪽쪽 빨아 먹으면서 살아온 기생충같은 존재였지만, 대학물 먹었다는 일명 엘리트 오인모는 영화 실패에 마누라와 이혼까지 해서 빈털털리가 되어 엄마의 집으로 들어 온다. 미연은 바람폈다가 소박맞고 갈데가 없어 엄마의 집으로 들어 온다.
하지만 엄마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자식들을 받아 들인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고기 못먹어 죽은 귀신이라도 붙은 양 고기를 먹인다.
고령화 가족은 늙은 어머니와 독립했다가 다시 엄마 품으로 돌아온 자식들간의 이야기이며,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이고, 오인모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머니란 존재는 각별하다. 물론 부모란 존재는 누구에게나 각별할테지만, 어머니는 더욱더 각별하다. 누가 봐도 손가락질 할 자식들이지만 따스한 마음으로 감싸고, 아낀다. 오인모의 어머니는 핏줄이 연결되지 않는 한모와 함께 살 이유도 없지만 한모를 거두고 제자식처럼 키웠고, 인모나 미연이 어떤 일을 저질렀던 간에 감싸준다. 물론 부모가 자식을 무조건 감싸고 도는 것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이들은 더이상 의지할 곳도 없고 갈 곳도 없다. 어머니가 아니면 안되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인모는 혼자 잘난줄 안다. 형인 오함마를 무시하기 일쑤. 게다가 자신의 죄로 오함마가 감방에 갔다 왔는데도 고맙다거나 미안하단 말 한 번 안했다. 지금은 백수라 동생 미연이나 엄마가 벌어 오는 돈으로 사는 주제에 동생이 하는 장사나 동생의 연애에 대해 말도 많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가족의 비밀이랄까, 가족들이 등에 지고 사는 짐의 무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한 집에 살면서 비로소 자신의 가족들이 지고 사는 짐의 무게에 대해 깨닫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이면서 자신이 늘 무시해 왔던 가족에 대한 애정도 되살아 난다. 받을 줄만 알았지 베풀 줄 몰랐고, 가족이기에 당연시 여겼던 것들, 그리고 죽어도 자신의 탓은 아니고 남의 탓으로만 돌려왔던 지난 날들. 오인모는 다시 한번 재구성된 가족과의 삶에서 그러한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된다.
가정의 구성원인 가족은 해체와 재탄생을 반복하는 유기적인 존재일지도 모른다. 부모에게서 태어나 독립하는 과정은 가족의 긍정적 해체이며, 독립후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가족을 만드는 것은 가족의 재탄생이라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사람은 백년 이백년을 사는 존재가 아니기에 늘 이러한 순환이 이어진다.
오인모의 가족은 한 번 해체되었고, 감춰진 비밀까지 있었다. 그러나 그 가족들이 모여 다시 부대끼고 하는 동안 재결합되어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그 가족들은 다시 한번 해체되고 재탄생이란 것으로 환원된다. 즉, 어머니는 미연의 생부와 다시 한 번 결합하고, 오함마는 미용실 여자와 외국으로 떠난다. 미연은 보험회사 직원과 다시 한 번 결혼을 하게 되고, 오인모는 대학시절 후배와 다시 만나 진짜 사랑을 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어머니의 사랑이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좁은 집에서 복닥거리며 싸우면서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이 이들에겐 꼭 필요했다. 그리고 그 거름이 되고 원동력이 된 것은 역시 엄마가 해주신 밥이다. 그것이 가족의 유대감을 다시 살리는 불씨가 되었다.
이들이 막장가족이라고 손가락질 받을 이유는 없다. 겉으로 보기엔 그래도, 각자 나름의 사연이 있는 법이고, 이 세상의 모든 가족들은 그들만의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비난할 수만은 없는 게 가족사랄까. 누가 뭐래도 스스로가 가족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긴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가장 가까운 존재이면서도 가장 소홀히 해왔던 가족.
하지만 세상 사람 모두가 등을 돌려도 가족만은 늘 그자리에 있다.
가족의 소중함을, 그리고 엄마가 지어 주신 밥의 따스함을 느끼게 해준 고령화 가족.
가족이기에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단 말도 안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이기에 다 알겠지 싶어서 소중하단 말도 안하는 경우가 많다.
때를 놓치면 다음엔 그런 말들을 하기 어렵다.
이젠 쑥스러워하지 말고, 이런 말을 해보는 건 어떨까.
엄마, 고마워요, 난 세상에서 엄마가 지어주신 밥이 제일 맛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