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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째 인격
기시 유스케 지음, 김미영 옮김 / 창해 / 2009년 7월
평점 :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을 읽은 건 2004년. 올해가 2010년이니 기시 유스케의 작품은 6년만에 다시 만난 셈이다. 물론 그 중간에 다른 작품이 출판되긴 했으나, 이런 저런 사정으로 못읽다가 요번에 그의 데뷔작인 13번째 인격을 읽게 되었다. 검은 집은 보험사기와 사이코패스라는 것을 소재로 한 호러 소설이었는데, 그 소설을 통해 처음으로 사이코패스란 말을 접하게 된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윤리적 가치관이 우리와는 크게 다른 사이코패스를 접하면서 책을 읽는 내내 소름이 끼쳤다.
13번째 인격은 그런 느낌과는 조금 다르다.
제목에 나와 있듯이 13번째 인격. 즉 해리성동일성 장애를 가진 한 소녀에 관한 이야기이다. 해리성동일성 장애는 쉬운 말로 다중인격장애라고도 한다. 즉, 한 인간에게 두 개 이상의 인격이 존재한다는 뜻으로 정신의학계 쪽에서는 아직도 이 부분에 대해 논란이 많다고 한다. 아마도 과학적 근거로 밝혀내기 힘든 인간의 정신적 부분이기 때문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리처드 기어, 에드워드 노튼이 등장한 프라미얼 피어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 영화에서 에드워드 노튼이 연기한 캐릭터가 바로 다중인격자였다. 하지만, 결국은 다중인격을 연기한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 영화 자체로 무척 충격적이었다.
13번째 인격이란 것은 적어도 13개의 인격이 존재한다는 말이니,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중인격자와는 차원자체가 다르다. 작품속의 치히로란 소녀는 어린 시절 부모를 사고로 잃고 친척집에서 자라났다. 그리고 1995년 고베 대지진(한신 아와지 대지진)을 겪으면서 엠파스(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진 사람)인 유카리를 만나게 된다. 유카리는 치히로와 만나면서 그녀의 안에는 적어도 10개 이상의 인격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후 치히로의 상당사였던 학교 교사를 만나면서 치히로를 함께 치료해가기로 한다.
어린 아이에서부터 어른, 남자, 여자 등 모두 13개의 인격을 가진 소녀 치히로. 소녀가 그렇게 많은 인격을 가져야만 했던 이유는 모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즉, 외부로부터의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어린 아이에게 있어 부모가 자신의 눈앞에서 죽는다는 것은 정신이 피폐해질 정도의 충격이었고, 삼촌에게 받은 학대는 치히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다.
고베 대지진전에 있던 열 두개의 인격과 고베 대지진 후에 나타난 열 세번째 인격.
그들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했다. 12가지의 인격은 각각 한자 사전에서 의미를 따온 이름들로 각각의 외부 상황에 맞게 그 인격들이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한다. 그러나 13번째 인격은 이소라라는 이름이며, 그것은 우게쓰 모나가타리에 실린 기비쓰의 가마에 나오는 한 원령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소라라는 인격은 왜 갑자기 등장한 것일까. 여기에서 의문이 시작된다. 다른 인격과는 확연히 다른 존재이자, 악마의 인격으로까지 불리는 이소라.
유카리는 치히로안에 숨어 있는 이소라라는 인격의 정체를 파헤치기 위해 여러 가지 조사를 한다. 그러면서 밝혀지는 이소라의 진실.
이소라는 이 책의 제목인 열 세번째 인격과 함께 이 작품에서 중의성을 가진 존재라 볼 수 있다. 자세히 언급하면 스포일러가 될 가능성이 있기에 더이상 언급은 하지 않겠지만, 이소라라는 것이 이 작품내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또한 작품의 제목 열 세번째 인격의 진짜 의미 역시 마지막 페이지를 보았을때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인간의 마음은 강하면서도 약하다. 인간들은 자신들이 받는 외부자극이 자신의 한계치를 넘었을 때 정신이 붕괴한다. 작중의 치히로가 바로 그런 인물일 것이다. 소녀가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힘든 일들은 소녀의 인격을 붕괴시켰고, 그렇게 드러난 것이 그녀안의 여러가지 인격이다. 이소라의 경우는 사람에게 받은 불신, 배신감, 절망감, 질투가 물리적 힘을 가지게 된 경우로 이 또한 인간의 정신의 나약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자기자신을 잃고 악의로 똘똘 뭉치게 된 이소라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지만, 역시 용서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데뷔작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한 전개와 더불어 일본 한자가 가지는 중의성, 그리고 일본 고전 이야기, 유체 이탈, 해리성동일성장애(다중인격), 빙의 등 과학적인 소재와 초자연적인 소재가 함께 쓰여 더욱더 흥미진진해진다.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참고 자료를 조사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정신분석과 관련한 부분에 있어서는 무척 흥미로운 부분이 많아 시종일관 즐겁게 읽게 되었다. 비록 유카리와 마나베사이에 흐르는 감정이랄까, 도피 행각 그리고 마나베의 결심은 공감하기 힘든 부분이 조금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꽤나 재미있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