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치 체포록 - 에도의 명탐정 한시치의 기이한 사건기록부
오카모토 기도 지음, 추지나 옮김 / 책세상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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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에도 시대라고 하면 도쿠카와 이에야스가 권력을 잡고 막부 통치를 시작하던 1603년부터 막부 통치가 막을 내린 1867년까지의 약 250년간을 말한다. 이 시기는 쇼군이 권력을 장악하고 통치하던 시기로 사무라이들의 전성기이기도 하다. 막부 통치가 막을 내리고 메이지 시대가 시작되면서 일본 근대사가 시작되었다.

한시치 체포록은 메이지 시대에 살고 있는 '나'가 에도 시대 말기 오캇피키로 활약하던 한시치의 사건 해결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는 총 12편의 단편이 실려 있지만, 일본에서는 여러 권의 한시치 체포록이 나와 있고, 미야베 미유키와 기타무라 가오루가 쓴 앤솔로지 작품도 나와 있다고 할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일단 단편들의 제목들을 보면 괴담 분위기가 풀풀 나는 제목들이 보인다. 그래서 처음에는 에도 시대에 유행하던 괴담일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책의 소제목에는 에도의 명탐정 한시치란 단어가 들어가 있어 괴담만은 아닐거란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한시치는 도대체 어떤 일을 했을까.

한시치는 오캇피키로 일종의 수사관이다. 지금은 경찰이나 형사가 수사를 하지만 에도 시대에는 행정 부교소 아래에 요리키 - 도신 - 오캇피키 - 테사키 - 시탓피키 등이 있어 당시에 발생한 사건을 수사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지금과는 달리 과학적 수사 방법 등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일은 꽤나 힘들었을 것 같은 생각도 들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면 지금과 같은 무시무시한 트릭은 거의 없었을 거란 생각도 들기는 한다.

한시치 체포록에 실린 단편들은 괴담처럼 보이거나 괴담을 빙자한 사건도 있고, 또 현대 범죄처럼 무차별 살인 혹은 묻지마 범행 등도 나온다. 1800년대 초중반은 전기도 없었을 터이고, 과학적으로 밝혀낼 수 없는 일들이 많았기에 괴담이 유행했을 거란 생각도 든다. 어슴푸레한 달빛이나 초롱불 아래에서는 사람의 얼굴 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고, 조금만 수상한 소리가 나도 사람의 두려움을 증폭시켰을테니 당연히 괴담이 사람들에게 먹혀 들어 갔을 거란 생각이 든다. 또한 일본은 팔백만 신이 있다고 할 정도니 요괴의 숫자도 얼마나 많겠는가.

하지만 알고 보면 세상에는 기괴한 일은 많지만 근거없는 일은 없다고 했던가. 한시치 체포록은 괴담처럼 보이는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잘 풀어 내고 있다. 특히 오후미의 유령, 여우와 승려, 외눈박이 요괴, 단발뱀의 저주는 얼핏 보기에 괴담으로 보일 요소가 충분했는데, 여우와 승려는 하쿠조스의 여우(교코쿠 나츠히코의 항설백물어를 보면 자세히 나온다)를 떠올리게 한 사건이었다.

12개의 단편 중 현대 사회의 사건과 제일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건 역시 창찌르기이다. 에도 시대 츠지기리 사건과 비슷한 맥락의 사건인데, 츠지기리(辻切り)는 옛날 무사가 칼을 시험하거나 검술을 닦기 위해 밤길에 숨었다가 행인을 베던 일을 뜻하는 용어로 요즘 말로 하면 묻지마 살인 사건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여기에선 무사가 아닌 다른 직업의 사람이며, 칼이 아니라 창으로 대체되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가끔 섬뜩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 그런 경우는 우연의 일치로 발생하는 사건이 많다. 알고 보면 별 것 아니라고 느끼게 되는 그런 일들, 한두번씩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한시치 체포록이 시시하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에도 시대를 충실히 고증해 내고 있으며, 그 시대 사건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모든 추리 소설도 트릭을 알고 나면 별것 아닌 것 처럼 보인다. 괴담도 마찬가지. 그 괴담이 생겨난 연유를 알게 되면 그 괴담 역시 별것 아닌 것 처럼 보이게 되는 착각을 하는 것 뿐이다. 작은 단서만을 가지고 사건의 핵심에 점점 더 다가가는 오캇피키의 활약은 매우 놀랍다. 게다가 당시 사회적 배경과 관련한 부분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한시치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나 역시 에도 시대의 한 거리를 걷고 있는 느낌이 든다.

오캇피키 한시치는 에도 시대의 훌륭한 수사관이었을 뿐 아니라, 훌륭한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뜸을 들이기도 하고, 궁금케 만들기도 하는 그의 이야기 실력은 그의 이야기 속으로 독자들을 몰입시킨다. 또한 사건 자체를 풀어가는 것도 재미있지만, 사건의 배경이 되는 에도 시대의 사회상을 드러낸 부분이 많아 그것 또한 흥미롭다. 거기에다 책 중간중간에 첨부되어 있는 우키요에는 책의 분위기와 잘 맞아 떨어져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도 있다.

한시치가 들려주는 에도 시대의 괴사건 파일.
시대물을 좋아하고 탐정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만족할만 한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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