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속물들
오현종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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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속물(俗物)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 보면 "교양이 없거나 식견이 좁고 세속적인 일에만 신경을 쓰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즉, 교양머리 없이 돈만 밝히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그래서 우리가 "저 사람 속물이야"라고 하는 말하면 그것은 그 사람을 욕하는 의미가 된다.

하지만!
요즘같은 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안밝히면 무엇을 밝히리오.
속물이 될 수 밖에 없는 아픈 현실과, 따지고 들면 세상에는 속물이 아닌 사람은 없다고 냉정하게 이야기하는 소설이 바로 오현종의 거룩한 속물들이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속물들은 비록 속물일 망정 밉지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속물 캐릭터 중 누구 하나는 빼닮아 있을 테니까. 스스로를 한 마리의 고고학 학처럼 생각하며 '난 세속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네' 하고 착각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혹은 정말 세속과 거리가 먼 사람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어느 정도 속물 근성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기린, 명, 지은은 대학 동기로 사회 복지과 학생이다. 처음에 사회복지과란 설정을 봤을 때 웃음이 터져버렸다. 물론 난 사회복지과는 아주 좋은 학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에 나오는 이 여학생들은 속물근성으로 똘똘 뭉친 삼인방이라 사회복지과와의 갭이 크게 느껴졌던 것 뿐이다. 아마도 작가는 일부러 세 여학생의 과를 사회복지과로 설정했으리란 생각이 든다.

기린은 가난한 축에 든다. 오래된 아파트에 사는 건 둘째치고, SKY를 나온 아버지는 백수, 언니는 아르바이트로 근근히 연명하다가 도피처로 TV를 선택했다. 오직 어머니만이 집안을 먹여 살리는 셈이다. 기린의 아버지는 곧 죽어도 자존심은 있어서 아무 일이나 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가부장적인 사람이라 늘 큰 소리를 떵떵 친다. 기린의 언니 토란은 속물도 되지 못하고 그렇다고 한 마리 고고한 학이 되지도 못한 채 꿈나라로 숨어 버렸다. 기린은 뱁새가 황새 쫓아가려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속담도 무시한 채 부자 친구들인 명과 지은을 따라 다니고 있고, 남자 친구는 미래의 보험으로 든 의대학생이다. 하지만 역시 의대생, 볼품 없이 생긴 외모를 커버하기 위해 그는 의대생인 걸 의도적으로 강조하는, 역시 속물과이다.

명은 부잣집 따님으로 졸업후 유학갈 예정이지만, 원래 부자들이 더 짜다고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도 늘 더치 페이. 게다가 그녀의 집안은 얼른 돌아가셨으면 하는 할아버지의 유산을 놓고 친지들끼리 물밑 작업이 한창이다. 지은은 유통기한 6개월의 남자 친구들에게 받은 전리품이 유일한 위안거리로 삼고 있다.

20대 초반의 그녀들은 아주 당당하게 속물적 생활을 한다. 사실 따지고 들자면 그녀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세상은 외모, 학벌, 경제적 능력등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있으니 한 살이라도 더 어릴때 손에 넣을 건 손에 넣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으로 움직인다. 그러한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그녀들의 욕망만을 탓할 것인가.

거룩한 속물은 20대 여대생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속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으로 움직이는 사회에서 돈타령을 안하면 무슨 타령을 하겠는가. 돈이 있어야 사는데 돈이 없는 게 죄가 되는데, 돈타령을 안하려야 안할 수 있겠는가.

문득 기린이 방송국 선배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서른이 넘으면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이 다 결정되어 있을 것 같다는 말... 씁쓸해진다. 나 역시 기린과 같은 나이에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른이 넘어선 지금도 난 골대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있다. 어쩌면 인간은 죽을 때까지 골을 넣을 골대를 찾아 헤매는 서글픈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가난한 집안과 백수 아버지, 도피자 언니, 혼자서 돈을 버는 어머니. 기린은 가난을 싫어했다. 물론 기린보다 더 가난하게 사는 사람도 있지만 사람이란 언제나 위를 본다. 자신보다 더 잘나고 더 잘사는 사람을 부러워하게 마련이다. 수입 생수병에 정수기물을 받아서 들고 다니고, 과외를 해서 번 돈은 모조리 명과 지은과 다니는 사치스런 생활에 다 써버리고, 의대생 남자 친구를 장래 보험처럼 생각했던 기린. 조금 일찍 사회 생활을 시작했던 기린은 사회는 더욱더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게다가 명과 지은과의 우정은 우정이란 이름을 뒤집어쓴 얄팍한 관계에 불과했다는 것도. 기린이 무엇을 얼마나 많이 깨닫게 된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적어도 한가지는 깨달았으리란 생각이 든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와 유기적 관계를 가지면서 살아가지만 자기 자신이 있을 곳을 찾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란 걸.

사회는 만만치 않다. 거기에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제자리를 찾아 살아가는 것은 더 어렵다. 하지만 무인도에 가서 살지 않는 이상 인간은 사회에서 살 수 밖에 없고, 그렇다 보니 속물로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세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문득 이런 이야기가 생각난다. 너희 중 죄가 없는 자만이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물론 그 이야기와 이 소설의 내용이 똑같지는 않지만 난 이렇게 바꾸어 생각하고 싶다.
너희중 스스로를 속물이라 생각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을 비난하라고.
우리는 속물로 가득한 사회, 속물을 양성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한 우리 사회는 속물로 늘 가득할 것이고, 우리는 언제든 속물 근성을 내보이면서 살 것이다. 

오현종의 거룩한 속물은 속물을 찬양하는 소설도 속물이 되라고 권하는 소설도 아니다. 다만 속물이 될 수 밖에 없는 이 사회, 그리고 이러한 사회에서 속속 속물로 전향하는 그리고 속물로 키워지는 우리들의 모습을 서글프게 그려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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