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TH 고스 - 리스트 컷 사건
오츠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오츠 이치를 처음 만난 건 몇 년전 <너 밖에 들리지 않아>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아름답고 애절하며 기묘한 색채를 지닌 그 이야기들에 매료되긴 했지만, 그후를 기약해야겠다는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작년 오츠 이치의 ZOO라는 작품을 접하게 되면서 난 오츠 이치에게 푹 빠지게 되었다. 사실 난 두 작품의 작가가 같다는 걸 ZOO를 구매하기 전까지 몰랐다. 아니 너무 다른 성향의 작품이라 연결지을 수 없었다는 게 맞을까. 잔혹하면서도 미묘한 슬픔이 느껴지는 이야기들을 보면서 이 두 가지 감정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작가의 능력에 대해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

그후 읽은 건 그의 데뷔작인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난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오츠 이치가 천재로 불릴만 하구나 하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불과 열일곱살에 썼다는 데뷔작은 날 충격으로 몰아가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츠 이치의 책에 대해서는 이젠 아무런 망설임 없이 구매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고스는 만화책으로 먼저 접했다. 소설과 만화가 함께 나온 작품이라 만화는 어떤 느낌일까가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원작 소설을 먼저 읽고 만화를 보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화와 소설을 두고 고민이라면 원작 소설을 먼저 보기를 권한다. 나같은 경우 만화를 먼저 보다 보니 줄거리를 모두 알았다는 것도 있지만, 만화에는 실리지 않은 단편도 하나 있고, 설정이 다른 단편도 있기 때문이다.

고스의 두 주인공은 화자인 남자 고등학생과 모리노 요루라는 여고생. 두 사람의 공통점은 보통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어두운 사건에 대해 묘하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특히 사체(死體)라는 것에 대해...

보통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피하고 싶은 것이지만, 이 둘은 죽음이 가지는 속성에 대해 매료되어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궁극적으로 다른 게 하나 있다. 남학생은 가해자가 모리노 요루는 피해자가 될 입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남학생은 살의란 것을 가슴에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갈갈이 찢겨진 사체와 그 범인을 추적하는 암흑계는 만화책으로 봤을때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다. 물론 소설에 묘사된 것도 무척이나 세세해서 비릿한 피냄새와 살이 썩어가는 냄새가 느껴질 것만 같았다. 왜 범인은 그러한 일을 해야만 했을까. 난 이런 작품을 보면 보통 사람들이라 여겼던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도대체 어떤 어둠들이 숨어 있을까를 상상하게 된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암흑이 숨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억누르고 살지만, 억누르지 못하면 그건 남을 해하는 일이 되어 버리니까.

표제작인 리스트 컷 살인 사건의 경우, 이 연작 단편에서 가장 평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남자 주인공과 모리노 요루가 처음으로 친구가 되게 된다. 서로를 알아 보게 된 계기라고 할까.

개는 만화에는 실려 있지 않아 무척이나 흥미롭게 읽었다. 왜 만화에서 빠지게 되었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는데, 나중에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고 충격을 꽤나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이렇게 허를 찌르는 작품, 이게 바로 오츠 이치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기억은 고스의 여자 주인공인 모리노 요루에 관한 이야기이다. 쌍둥이로 태어난 모리노 요루. 어린 시절의 사고는 동생 유우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과연 쌍둥이에게 일어난 일의 진실은 무엇일까. 아이들은 잔혹하다. 순수한만큼. 그런 기분을 강하게 느끼게 된 작품이다.

흙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을 받았던 건 범인의 정체였다. 역시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을 내리면 안되겠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난 만화를 읽으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반년후에 자수하라고 하던 남자 주인공의 말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그 이유를 알고는 정말이지 섬뜩했기에...

목소리는 원작 소설과 만화가 다르다. 등장하는 인물도 그렇고... 굉장히 미묘한 설정이 있어 자칫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까닭에 많은 언급을 하진 않겠지만, 이걸 읽으면 오츠 이치의 소설들의 미묘한 함정, 그러하기에 매료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고스는 잔혹한 사건과 그 사건 뒤에 감추어진 실상을 드러내 보여주는 소설이긴 하지만, 범인 색출이란 것, 그리고 사건 해결이란 것과는 거리가 다소 있다. 주인공들인 남학생과 모리노 요루는 다만 그 사건에 감춰진 진상이 알고 싶을 뿐이다. 아니, 모리노 요루는 표면적인 관심, 남학생은 인간의 마음속에 깊이 숨겨진 암흑의 핵심에 더욱더 다가가가 싶어 한다는 점이 다르다. 그러하기에 범인을 알게 되어도 사건에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되어도 그걸 외부로 폭로하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인간들은 자신에게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건 바라지 않아도, 남에게 일어난 끔찍한 일들은 구경꾼의 기분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남의 집 불구경이나 사고 현장을 구경하는 사람의 심리가 그러한 것이랄까. 비록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니더라도 제 2차적 가해자가 될 소지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하기에 이 주인공들의 모습이 전혀 낯설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누구나가 비밀 한 두가지쯤은 가슴에 품고 사는 존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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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9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껴뒀다 이제 사볼렵니다. ㅎㅎ
리뷰 잘 읽었어요. 만화책도 같이 주문해야겠네요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