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박영난 옮김 / 시아출판사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현대 사회는 고도 자본주의 사회로 우리는 물질적으로 아주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정신적으로는 매우 빈곤한 삶을 살고 있다. 돈이 많은 사람을 부러워 하고, 돈을 많이 버는 일명 빵빵한 직장을 다니는 사람을 보고 부러워한다. 돈만 있으면 사람의 영혼빼고는 다 살 수 있는 사회, 그것이 바로 현대 사회이다.
또한 현대 사회는 돈이 있어야 비로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이기도 하다. 모든 것은 금전이란 것으로 거래되며, 심지어 결혼 상대도 적어도 자신과 비슷한 급, 희망은 자신보다 부유하게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한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돈이 없으면 생존 자체가 어려운 세상이니까.

그렇다 보니 자신과 주변을 비교하게 되고, 자신보다 잘난 사람,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직장에 사는 사람이 부러워지게 마련이다. 그럴때 일시적인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얇은 플라스틱에 마그네틱 선이 부착된 신용 카드.
신용 카드는 비록 당장 현금이 없어도 모든 계산을 가능하게 해준다. 비록 개개인마다의 한도 차이는 있지만, 당장 필요한 것을 구입하기엔(현금이 없다 해도) 더없이 적절하다. 

나도 신용 카드를 발급받고 사용한지 거의 10년 정도가 되었다. 내가 처음 발급받을 당시만 해도 거리에서 회원 모집을 하는 등 신용 카드 발급받는 건 거리에 떨어진 동전 줍기보다 훨 씬 쉬웠다. 요즘은 카드 발급 기준이 좀 까다로워진 면은 있지만 여전히 신용 카드 발급 받기는 쉬운 편이라 생각한다.

처음엔 신용카드를 발급받고도 사용하진 않았지만, 조금씩 쓰게 되면서 그 재미가 생겨났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던 때라 다음달 결제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러다가 독립을 하게 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문제에 부딪혔다. 첫직장인데, 월급이 안나오는 것이었다. 일단은 필요한 것은 카드로 계산하며 근근히 버텼지만, 몇달치 월급이 밀리니 갚을 길이 없었다. 첫직장에다 중소도시에서 자란 나였기에 월급 달란 말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다가 까딱하면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릴뻔 한 기억이 있다. 물론 나중에 노동부에 신고해서 밀린 월급을 다 받긴 했지만.

그후, 신용 카드는 규모를 정해 놓고 그 기준안에서 쓰는 편이다. 아무래도 현금보다 지니기 쉽고, 외국에 나갈 때도 편리하게 쓸 수 있었던 점, 그리고 대부분의 쇼핑을 인터넷으로 하는 편이라 신용 카드는 내게 무한의 편의성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차는 바로 이러한 신용 카드와 대출이란 문제가 인간을 얼마나 나락으로 몰아가느냐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는 비단 일본의 문제 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문제이기도 하고 대서양 건너 있는 미국의 문제이기도 하다.

신용 카드는 무한의 편의성을 제공하지만 그건 공짜가 아니다. 반드시 갚아야 할 돈인 것이다. 그러나 쓸 때만큼은 공짜란 생각이 먼저 들어 일단 물건을 구입해 놓고 나중에 그 돈을 갚지 못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홈리스가 되는 사람을 우린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때로는 사채에까지 손을 대 폭력을 당하고, 가정은 풍비박산이 난다.

화차에 나오는 여성 둘. 그 여성들이 겪은 일이 바로 그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리셋하고 싶었던 여자 신조 교쿄. 그녀는 세키네 쇼코란 여성이 되어 새로운 삶을 준비하려 하지만, 세키네 쇼코가 개인 파산을 신청한 것을 알게 된 후 사라진다.
신조 교코는 아버지가 새 집을 마련하면서 빌어 쓴 돈때문에 가정이 풍비박산이 났고, 세키네 쇼코는 신용 카드 빚으로 궁지에 몰려 개인파산 신청을 한 경력이 있다.

그녀들이 겪어야만 했던 수많은 일들, 특히 사채와 관련된 경우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특히 신조 교코는 자신의 아버지때문에 인생이 망가진 경우이니 그 고통은 얼마나 심했을까. 사실 우리나라도 모기지론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이 많다. 경기가 좋을때는 장기간 돈을 갚아나가는 것이 가능하지만 불경기로 경기가 돌아서고 직장을 잃게 되면 모기지론은 그야말로 목줄을 죄어 오는 것이다.

신용 사회. 신용으로 이루어진 사회.
이것은 이상일 뿐일지도 모른다. 신용 카드란 것에는 물론 어두운 면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소설을 읽거나, 내가 겪었던 일을 생각해보면 신용카드란 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언제까지나 자신을 쫓아오는 사채업자를 피해 자신의 인생을 리셋하고 싶었던 여자 신조 교쿄. 그녀가 저지른 짓은 비록 천벌을 받을만한 것이었다 해도, 그녀의 인생을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안타깝다. 피해자인 세키네 쇼코도 마찬가지이다. 그녀 역시 개인 파산 신청후 새로운 삶을 준비하려 했지만 채 결실도 맺기 전에 죽임을 당했다.

세키네 쇼코란 여성의 행방 불명이란 것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미스터리 추리 형식을 띄고 있으나 사회 고발 소설이라 봐도 무관할 것이다. 세키네 쇼코란 여성을 추적하면서 밝혀지게 되는 사실들. 그리고 그것에 감춰져 있던 비밀들과 아픈 사연들. 그녀들이 구제받을 수 있었던 길은 과연 없었을까.

웃으면서 돈을 빌려주고 빌려준 돈을 돌려 받을 때는 칼을 드는 신용 사회. 우리는 양날의 검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서글픈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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