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지 이야기 1~10 세트 - 전10권
야마토 와키 지음, 이길진 옮김, 무라사키 시키부 원작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작년 겨울 일본에서 겐지이야기(원제 : 源氏物語天年記) 애니메이션 방송을 한다는 소식에 무척 설렜다. 그리고 그 애니메이션을 봤을 때의 느낌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다. 헤이안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겐지이야기는 그림체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물론 배경이 되는 풍경이나 건물 등도 아름다웠지만 역시 그 시대의 의상이 제일 눈길을 사로잡았다고 할까. 고귀한 집안의 여성들이 입는다는 8겹의 옷. 그 색감이 어찌나 고운지 눈을 뗄 수 없었다. 하지만 총 11화로 종방되었기에 그 방대한 분량의 이야기가 축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겐지가 스마로 유배가는 이야기까지만이 수록되어 있어 그 후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리하여 구입하게 된 겐지이야기. 
만화책이라고 하기엔 다소 비싼 금액이었지만, 그 정도의 가치는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한다. 모든 페이지가 컬러는 아니지만, 컬러 페이지가 수록이 많이 되어 있어 그 아름다움을 배가 시켰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작화. 배경이나 소품하나까지도 세밀하게 그려져 있어 작가가 얼마나 공을 들인 작품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총 10권으로 구성된 겐지이야기 중 8권까지는 겐지의 탄생에서 성장, 사랑과 이별, 그리고 겐지의 죽음까지를 담고 있는 부분이며, 9권과 10권은 겐지의 아들과 손자의 이야기인 우지 10첩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겐지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는 뭐 이런 불한당같은 사람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여성 편력이라고 해야하나, 하여간 현대를 사는 내가 보기엔 그의 사랑이란 것도, 그 시대 여인들의 사고 방식도 이해하기 힘든 점이 있었다. 게다가 그가 사랑했던 여인들이 두 손을 꼽아도 모자랄 정도였기 때문이다.
 
황자로 태어났지만 권력 다툼의 피해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 겐지라는 성을 받고 신하라는 신분이 된 겐지 히카루.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릉 여의었다. 그런만큼 어머니의 사랑이 그리웠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어머니와 꼭닮은 후지츠보노미야를 보고 사랑을 느끼게 된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그후에도 후지츠보노미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수많은 여성들과의 염문을 뿌린 겐지 히카루. 비록 정실 부인은 있었지만 그녀는 겐지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러하기에 더더욱 다른 여성들을 찾았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황족으로 태어났지만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겐지 히카루. 그리고 그가 처음으로 사랑한 건 의붓어머니이자 아버지의 아내였다. 모성애에 대한 갈구, 첫사랑의 아픈 기억과 더불어 황자란 신분은 그를 더욱더 외롭게 만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주변에서 아무리 그를 칭송한다고 해도 그건 육친의 사랑에는 미치지 못할 법이니까. 게다가 권력 암투의 장인 황궁에서의 삶은 순조롭지 않았을 것이 당연하다.

겐지의 여인들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로쿠죠노미야스도코로, 유가오, 무라사키노우에, 스마에 유배되었을 당시 만난 아카시노우에 등이다. 특히 로쿠죠노미야스도코로는 학문과 재색을 겸비한 미녀로 이전 동궁의 아내였다. 그녀는 겐지에 대한 사랑과 집착이 도를 넘어선 나머지 생령으로까지 등장한다. 후지츠보노미야같은 경우는 의붓어머니지만 그 사이에 아들을 하나 두었고, 그는 레이제이천황이 된다. 스마에서 마난 아카시노우에와의 사이에서 난 딸은 황후가 되고, 정실이었던 아오이노우에와의 사이에선 유기리란 아들이 있었고, 나중에 재상자리에 오르게 된다. 무라사키노우에와의 사이에서는 비록 아이는 없었지만, 무라사키노우에는 겐지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이었다.
수많은 여인이 있었지만 정작 아이는 셋. 그러나 하나는 황제가, 하나는 황후가, 하나는 재상의 자리에 올랐으니 모두 훌륭하게 장성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겐지이야기의 주된 테마는 겐지의 사랑이야기이겠지만, 겐지이야기는 겐지의 사랑이야기만으로 봐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비록 잠시 언급되긴 해도 히카루 겐지의 이복형의 어머니 고키덴뇨고가 겐지를 황궁에서 밀어 내기 위해 온갖 수를 다쓰는 일이나, 좌의정과 우의정파로 나뉜 정치, 그리고 겐지의 아버지가 동궁(겐지의 형)에게 황위를 물리고 난 후 외척들이 권력을 잡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당시 궁궐내에서 벌어지는 권력 문제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또 하나 더 신경써서 봐야 할 것은 역시 그 시대를 살아 가던 여인들의 모습이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혹은 새장안의 새처럼 집에 갇혀 정해준 남성과 결혼을 해야 했던 여성들. 게다가 그 시대에는 일부 다처제가 허용이 되었고, 귀족 신분 이상의 사람들은 자신이 마음에 둔 여성을 강간이라는 형태를 통해 아내로 취하는 일도 많았다. 원치 않은 상대에게 받는 수모. 그러나 그 여성들은 그것을 묵묵히 감수했다. 하긴 집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그 시대 귀족 여성들이었다면 어쩔수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현대 시대처럼 남녀가 결혼을 한 후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여성의 집으로 찾아가는 것이었기에 당연히 여성들은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을 찾아오기만을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남자들이 마음만 먹고 꺾으려고 하면 꺾이는 꽃. 그게 바로 그 시대 여성들이었다. 

황자의 신분으로 태어나 여러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또한 사랑하면서 살아갔던 히카루 겐지. 그러나 묘한 것은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어느 형태로든 그의 곁을 하나둘씩 떠나게 된다. 첫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여인은 아버지의 아내였고, 정실 부인 아오이는 아들 유가오를 출산한 후 불귀의 객이 되었다. 로쿠죠노미야스도코로는 생령이 되어 나타날 정도로 겐지를 사랑했지만 결국 이세의 신궁으로 떠났고, 첫사랑이자 자신의 아들 레이제이 황제의 어머니였던 후지츠보노미야는 선황의 붕어 이후 비구니가 되었다. 게다가 정말 사랑했던 유가오는 너무나 일찌감치 죽어버렸다. 

사랑을 하고 손에 넣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모두 겐지 히카루의 곁을 떠났다. 그러한 것이 겐지 히카루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점점 더 사랑을 찾고 사랑을 갈구하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처음엔 그의 여성 편력에 혀를 내두르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지만, 그가 뼛속까지 외로웠던 사람이란 걸 생각해 보니 그런 점이 수긍이 가고 이해가 간다.  

일본의 역사를 통틀어 봐도 가장 평안하고 부유했던 헤이안 시대.
그 시대상과 그 시대 사람들의 사랑을 잘 담아내고 있는 겐지이야기. 비록 등장 인물은 너무 많고, 또한 이름도 별명이나 관직명으로 불려 헷갈리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지만, 그러한 부분은 책뒤에 수록된 주요 인물 계보와 등장 인물 소개를 통해서 어느 정도 해소가 된다.

1,000년이란 세월동안 그  빛은 전혀 바래지 않았고, 여전히 최고의 로맨스로 생각되어지는 겐지이야기. 일생을 사랑받고 사랑하며 살았던 한 남자, 겐지 히카루의 이야기는 지금도 우리를 설레게 하고 매혹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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