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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문자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1문자 살인사건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1987년작으로 그의 초기작중 하나이다. 그래서 그런지 뭐랄까, 조금 심심한 느낌이었다고 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읽었던 <회랑정 살인사건>과 <백마산장 살인사건>을 떠올렸다. 물론 내가 언급한 두 작품이 <11문자 살인사건>보다 늦게 씌어지긴 했지만, 내가 두 작품을 먼저 읽은지라 어쩔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떤 부분이 비슷할까.
과거의 사건과 현재 사건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과 그 사건의 당시 정황이 현재에 다시 반복된다는 점이 가장 크게 닮아 있다. 특히 회랑정 살인 사건과는 범인의 성별, 그리고 범행의 동기, 범인의 최후마저도 닮아 있다. 다른 점이라면 화자가 범인이냐 아니냐일 뿐.
그렇다 보니 얼마 지나지도 않아 범인이 누군지 알게 되어 버렸다. 잘 살펴 보면 범인을 추측할 수 있는 문장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무심코 보면 아무것도 아닐수 있겠지만.
만약 내가 회랑정 살인사건이나 백마산장 살인사건을 읽지 않고 이 책을 보았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임을 감안하는 것도 잊지 않아야겠지만.. 초기작이라서 그런지 등장 인물의 캐릭터가 특화되지 않고 나타났다거나 전개 과정이 조금 어설프단 점을 많이 느꼈다. 특히 화자이자 이 소설에서 범인을 찾는 주인공의 경우 무모할 정도로 계획성이 별로 없다. 그런식으로 해서 어떻게 범인의 윤곽을 추렸는지 상당히 의문스럽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에 관해서는 동의하는 바이다.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된 '최선'이란 것. 과연 세상에는 '최선'이란 것이 존재할까. 물론 개개인에게는 존재할지 몰라도 그것이 두 사람 이상의 그룹에서는 어떠한 결과로 나타날까. 절대적 최선이란 것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윤리적이나 비윤리적이냐도 마찬가지 문제일 것이다. 범인의 입장에서는 작년에 일어났던 사건은 비윤리적인 것이고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 입장에서는 다를 수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범인은 사건의 가장 핵심인 사람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주변인만 죽였다. 물론 범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그곳에 그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죄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주변인도 범인의 테두리에 속하겠지만... 그러한 것을 생각해 볼 때 역시 범인의 범행도 비윤리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지 범인에게 죄를 묻는 것을 떠나 심정적으로도 동정이 안갔다. 결국 너도 그들과 '똑같다'라는 마음이 들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