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학이란 말과 시란 말. 이 두 단어가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적어도 난 이 두 단어가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작가 고다 요시이에는 왜 이 두 단어를 함께 사용했을까. 그 궁금중은 책을 읽으면서 자연히 풀리게 된다. 이 만화책은 4컷만화로 이루어져 있다. 간간히 5컷도 등장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4컷 만화이다. 만화라는 장르는 글과 그림을 이용해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표현해내는 장르 인만큼 그림의 역할이 꽤나 크다. 특히 단편도 중편도 장편도 아닌 겨우 4컷으로 작가의 의도를 담아 내야 하는 만큼 그림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자학의 시를 보면서 꽤나 감탄했던 부분도 그러한 것이다. 짧은 이야기와 단 4컷의 그림을 통해 한편의 이야기가 완성이 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유키에와 이사오 부부. 남편 이사오는 백수에 조금만 기분이 상하면 밥상을 들어 엎는다. 게다가 취미는 파친코와 마작과 경마. 백수인데 그런 취미를 가지고 있다 보니 그 돈이 나오는 건 결국 유키에의 주머니일 수 밖에 없다. 유키에는 음식점에서 종업원으로 일하지만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사실 저런 남편이라면 진즉에 갖다 내버릴(?)만 하지만 유키에는 팔불출로 보일 정도로 남편을 사랑한다. 뭐, 이사오도 늘 유키에에게 돈을 뜯고, 밥상을 엎고, 조금만 신경질나면 집을 나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유키에를 사랑하는 마음은 여기저기에서 드러난다. 서툴다.. 라는 그런 느낌일까. 유키에는 남편에 대한 애정 표현을 잘 하는 편이지만, 이사오는 그런 게 무척이나 서툴다. 그래서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밥상을 엎기는 하지만 유키에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게 엿보인다. 이사오라고 백수로 지내고 싶을까...그런 자신의 못난 모습이 한심해서 오히려 유키에에게 큰소리를 뻥뻥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여러가지 얼토당토 않는 이유로 밥상을 엎는 이사오의 모습이 그다지 미워 보이지는 않는다. 유키에는 아시히야의 주인장이 애정공세를 퍼부어도, 친구들이 그런 남자와는 헤어지라 해도 절대 흔들리는 법이 없다. 집을 나가라고 하는 남편의 말에 집을 뛰쳐나가면서도 밥때가 되면 밥을 챙기러 슬며시 나타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프다. 게다가 친정 아버지도 보아하니 이사오와 하등 다를 게 없었다. 어쩌면 이사오의 모습에서 유키에는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잠깐잠깐씩 나오는 유키에의 어린 시절 모습을 보면 아내에게 돈을 착취하는(?) 이사오나 딸에게 돈을 착취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묘하게 겹쳐진다. 하루도 바람잘 날 없는, 아니지, 밥상 안엎어질 날 없는 유키에와 이사오의 이야기. 2권에서는 또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무척이나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