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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로쿠의 기묘한 병 - 히노 히데시 걸작 호러 단편 시리즈 2
히노 히데시 지음 / 시공사(만화)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히노 히데시의 작품 중 두 번째로 접하게 된 <죠로쿠의 기묘한 병>. 이 책은 앞서 내가 읽었던 <붉은 뱀>과는 달리 총 4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단편집이다. <붉은 뱀>은 인과(因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 가족의 비극을 보여주었다면, <죠로쿠의 병>에 실린 단편들은 한 작품을 제외하고는 꽤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론 호러라는 장르에 맞게 잔인한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기는 하나, <붉은 뱀>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로 보였다.
표제작이자 첫번째로 실린 죠로쿠의 기묘한 병은 죠로쿠란 이름을 가진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지능은 모자라지만 순박하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죠로쿠는 어느 날부터 종기가 생기더니 급기야 그것이 온몸에 퍼지고 만다. 마을 사람들은 죠로쿠의 병이 옮을까봐 그를 산속에 유기할 것을 죠로쿠의 가족에게 종용한다.
옛날 사람들은 조금 수상쩍게 보이는 병이 있으면 그게 전염병이 될까 싶어 두려워했고, 그건 마을 공동의 의식으로 작용하여 그 사람을 퇴출시키는 소리없는 폭력으로 이어졌다. 죠로쿠는 마을 사람들의 협박에 떠밀려 숲속 오두막에 거처하게 되는데, 그는 그곳에서도 계속 그림을 그려 나간다.
잘못된 믿음이 가져다준 한 남자의 비극.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그림은 세상 어느 것보다 아름다웠다. 우린 겉모습만 보고서 상대를 판단하고 그 판단에 따라 상대를 경멸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런 점은 예나 지금이나 그다지 변하지 않은 듯하다.
물속은 교통사고를 당한후 어머니와 함께 둘이서 살아가는 소년의 이야기이다. 사지를 모두 잃고 한쪽 눈 마저 잃은 소년은 집에 있는 수조에 사는 열대어를 보면서 살아간다. 평범했던 가정은 소년의 사고 이후 무너져 내려 버린다.
어머니는 아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보지만 여자 혼자 몸으로 감당하기는 어려운 일. 결국 그것은 아들에 대한 폭력 사태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소년이 늘 바라 보던 물속 세상. 그곳에서는 소년의 가족들이 모여 다시 한 번 행복을 꿈꿀 수 있을까.
생쥐는 우연히 기르게 된 생쥐가 점점 더 커져 가족들을 위협하고 한 가정을 무너뜨리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처음엔 이게 실제로 일어난 일일까 싶었는데, 마지막 페이지를 보면서 어쩌면 이게 이 소년의 머릿속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한 이 작품을 보면서 <펫 샵 오브 호러즈>이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었다. 수상쩍은 애완동물 이야기란 점에선 어쩌면 비슷한 점이 있을지도> (笑)
백관괴물은 도적들에게 가족들이 살해당한 후 남은 아이들이 살아 남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무척이나 안타까웠던 작품이다. 때는 전국시대쯤일까. 나라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도적떼의 습격으로 겨우 목숨만 이어갔던 사람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서로를 의지하면서 살아간다. 아키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아키는 남은 아이들의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영훤히 함께 살아갈 테니까.
전체적으로 호러라기 보다는 무척이나 잔인하지만 무척이나 슬픈 이야기였다. 물론 생쥐는 제외한 세 작품의 경우엔...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할까. 그러면서도 그들은 절망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버려졌지만 세상을 원망하지 않았다. 보통 호러 장르라면 그런 사람들은 세상을 증오하기 마련인데, 이런 점이 무척이나 독특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