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마녀>를 읽은 후 난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만화가 그려 내는 세계의 매력에 푹 빠져 들었다. 작화는 비록 거친듯 하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심오함은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만화였다는 느낌이었다. <마녀>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한 여자의 이야기나, 토착 신앙과 현대 문명의 대립,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써 눈에 보인다는 교훈을 준 이야기, 예로부터 내려온 자연에 대한 믿음과 그걸 부정하는 종교등 꽤나 묵직한 주제를 다룬 책이었다.

단편집인 <영혼> 역시 다소 기묘하고 기괴한 등장 인물과 설정은 그로테스크함을 느끼게 하는 면도 있지만, 그런 것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작품을 바라볼 때의 호불호를 결정짓게 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러한 면이 이가라시 다이스케다운 면이라고 강하게 느낄 뿐.

<영혼>은 총 6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만큼 보여주는 세계도 다양하다. 다소 기괴한 세계를 보여주는 단편도 있지만 따스한 인간의 체온을 느끼게 해주는 단편도 실려 있어 한 권의 책에서 여러 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

향토신은 올컬러로 되어 있지만 분량은 매우 적다. 왠지 우리 나라 전래 동화를 떠올리게 한 작품이었달까. 위험에 빠진 곰인지 호랑이인지를 구해준 청년에게 보답하는 동물이 떠올랐다. 물론 여기서는 위험에 빠진 향토신을 구해주는 설정은 아니지만, 그 고장의 토산품이 어떻게 유래되었나를 재미있게 보여준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단편이자 표제작인 영혼은 빙의란 것을 소재로 삼고 있다. 아버지를 잃은 한 소녀가 어느 날 무심코 부엉이 새끼를 밟아 죽인 후 머리에 깃털이 생겨난다는 이야기인데, 실제로 영혼이 빙의되어 자신을 잃고 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린 쉽게 들을 수 있다. 다만 그 형태가 보이지 않는 것 뿐이지만, 영혼에서는 빙의된 영혼으로 변화된 사람의 모습을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게 구현해 놓았다. 딸을 남기고 죽었던 아버지의 마음이 딸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버지를 보내야하는 걸 알고 있는 딸의 마음이 무척이나 기특하고 안타까웠던 단편이었다.

곰잡이 신도둑 타로의 눈물은 제목을 보고선 고개가 살짝 갸웃거려졌다. 신도둑?? 신이 처음엔 신발을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신(神)을 뜻하는 것인지 헷갈렸는데, 내용을 보니 후자의 신(神)이었다. 어느 한 마을의 신앙을 지키려는 노력으로 바쳐지는 소녀의 인신 공양과 비록 신력(神力)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생명을 해치는 것밖에 할 수 없는 타로의 힘. 타로는 소녀를 구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소녀는 인신 공양의 제물이 되고 타로는 기억을 잃게 된다. 누군가를 구하는 데 힘을 쓰고 싶었던 소년 타로의 눈물. 어린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자신에게 지워진 짐이 너무도 무거웠다.

모래여자는 처음으로 학교를 땡땡이 친 소녀가 만난 화가와 몸에서 모래가 나오는 여자와의 따스한 생활을 그리고 있다. 몸에서 모래가 나오는 특이 체질. 그러한 체질때문에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낳고 반년도 안되어 죽어 버렸다. 그러한 자신의 체질에 두려움과 역겨움을 가진 그녀였지만 그녀의 특이 체질은 사고로 죽을 뻔한 이토를 구하게 된다. 모래 자체로는 쓸모가 없지만, 아름다운 유리의 재료가 되는 것도 또한 모래. 생각하기 나름에 따라 그녀에게 저주였다고 생각한 것이 행복을 가져오게 되었을지도...

 le pain et le chat는 이 단편집 중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자신을 버리고 집을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는 소녀는 외눈박이 새끼 고양이를 기르고 있다. 비록 도둑질을 하면서 살아갈지만 그 집에서 어머니가 돌아 오기를 기다리는 소녀와 제빵일을 하지만 어느 새 삶의 보람을 잃어버린 베이커리 기술자의 만남. 비록 어리지만 작은 생명을 소중히 하는 소녀를 보면서, 그리고 자신의 빵이 맛있다고 하는 소녀를 보면서 그는 예전에 가졌던 자신의 꿈을 다시 떠올린다. 소중한 건 늘 가까이 있고, 소중한 것은 자신이 직접 지켜야 한다는 느낌이었달까.

여전히 겨울은 겨울산에 봄이 오는 과정을 다소 독특한 표현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사오히메란 여성이 등장하는데, 아마도 이건 일본 특유의 이야기인듯. 특히 동물들이나 식물들이 굉장히 섬세하게 표현이 되어 있다.

거친 듯 하면서도 섬세하고, 그로테스크한 듯 하면서도 따스하다. 여기에 실린 단편 6개는 절망이나 슬픔 같은 부정적인 감정과 동시에 희망이나 행복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동시에 담고 있다. 또한 죽음과 삶은 동전의 양면이 아니라 뫼비우스의 띠처럼 영원히 하나의 길에 놓여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영혼은 마녀에 비해서는 좀더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인데, 한 작가가 다양한 성향의 작품을 보여주는 것은 틀림없이 작가의 재능이 뛰어나다는 것임을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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