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지다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오유리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내게 있어 빠지다란 동사에서 연상되는 의미는 부정적인 것들이다.
이를테면, 술독에 빠지다, 도박에 빠지다, 물에 빠지다 등등.
물론 사랑에 빠지다란 말도 있지만, 그것조차도 비극적인 사랑에 빠지다로 연상되어 버린다.
오히려 사랑에 빠지다라는 표현보다는 사랑을 하다란 표현이 내겐 긍정적 의미로 다가온다. 그러하기에 가와카미 히로미의 빠지다는 틀림없이 내겐 부정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가와카미 히로미의 책은 나카노네 古만물상을 처음으로 접했다. 그 책은 만물상을 중심으로 그곳에 있는 물건들과 그 물건을 소유했던 사람들의 사연, 그리고 그곳에 일하는 사람들의 여러가지 모습을 담아낸 따스한 느낌의 소설이었다. 나이 많은 주인장은 철모르는 사랑에 늘 빠져들고, 그 주인의 여동생은 저릿하지만 따스한 사랑을 한다. 그곳에서 일하는 여사원과 남자 직원 역시 풋내나는 사랑을 하는 등, 빠지다에 나오는 이야기에 비해서는 따스하고 밝은 느낌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던 기억이 난다.

솔직히 말해, 빠지다를 읽으면서 위화감이 많이 들었다. 내가 머리가 나쁜 것일까, 문장은 평이한 단어로, 평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왜 이렇게 공허하지...란 생각이 내내 들었다. 서평을 쓰다보면 첫문장 하나로 쓱쓱 써나가는 서평도 있지만, 이 책은 읽으면서 이건 서평쓰기 힘들겠다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왜 이렇게 위화감이 느껴지는지.
여기에 나오는 사랑들은 어찌보면 참 구차하고, 어찌보면 참 바보스럽다.
총 8편의 단편에 나오는 사랑이란 단어가 주는 행복함, 즐거움, 기쁨이란 감정보다는 걱정, 의심, 불안함 등이 주를 이루는 감정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물론 책 표지를 보면서 밝은 분위기의 소설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줄은 몰랐다.

물론 나도 바보는 아니다.
사랑이란 감정이 늘 밝고 긍정적인 부분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건 이제까지의 경험을 통해 뼈져리게 느끼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등장 인물들을 보면서 어쩌면 하나같이 구차한 일에 매달릴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넘치는 요즘 소설과는 달리 사랑의 다른 면을 전면으로 내세운 이 책은 색다른 시도를 했다고 볼 수가 있다.

하지만,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워지고, 마지막 장을 덮은 순간까지 서늘하고 음습한 기운을 전해주는 이 소설에 좋은 감정은 생기지 않는다. 물론 이런 자신이 어린애같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사랑이란 게 얼마나 많은 얼굴을 갖고 있는지를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는 자신에게.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 사람들은 각각 다른 방식의 사랑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중에서 이 책은 몇 몇의 어둡고 음습한 사랑을 그려낸 단편집이라 생각하면 그 정도는 납득이 될 것 같지만, 역시 책에는 그 사람나름의 취향이 있는지라, 내겐 잘 안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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