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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선인
이토야마 아키코 지음, 김경인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우리는 때로 그건 나의 판타지야, 혹은 나의 로망이야란 말을 한다. 어린 시절에는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이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못하는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엉뚱한 꿈이며 이상이라 절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일도 있겠지만, 때로는 현실적이면서도 각각의 사정에 따라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해변이 아름다운 츠루가의 한 마을. 그곳에 사는 코우노는 조용하게 혼자만의 삶을 영위해 간다. 그러던 그의 앞에 판타지가 나타난다. 스스로 신이라 이야기하지만, 왠지 미덥지 못한 신. 판타지는 코우노의 식객으로 함께 생활해 나간다.
판타지는 도대체 무엇이지? 게다가 신의 이름이 판타지라니..
책을 읽는 내내 판타지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봐도 답은 내려지지 않았다. 판타지가 뭐라도 해주면 판타지의 특징을 잡아 무엇무엇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도 있겠는데, 판타지는 스스로 신이라고 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다만, 코우노에게 카린이 운명의 상대란 이야기만을 해줄뿐.
책 분량 자체는 무척이나 적은 편이라 술술 읽힌다. 코우노의 삶, 사랑, 그리고 이별과 슬픔, 사랑하는 이의 죽음 등 모든 것은 코우노와 관련되어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 인간들의 삶도 이렇지 않을까 싶다. 비록 코우노처럼 벼락을 두 번이나 맞는 일은 없겠지만.
카린 - 코우노 - 카타기리 - 사와다.
카린과 코우노는 사랑하는 사이지만, 카타기리는 코우노를 사랑하고 있고, 코우노는 카타기리의 마음에 답해줄 수 없다. 사와다는 카타기리를 사랑하지만 카타기리는 사와다의 마음에 답해줄 수 없다. 결국 카린이 죽고 난 후 코우노는 혼자 남게 되겠지만, 카타기리는 그 자리를 대신해 줄 수 없을 것이다. 그게 코우노가 짊어진 고독의 무게.
우리 인간들의 삶은 여러가지 다양한 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한 것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수도 있고 희망을 가져다 줄수도 있고 구원도 가져다 줄수도 있지만, 반대로 불행과 슬픔, 좌절과 절망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판타지는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존재가 아니라고 딱잘라 말한다. 구원은 스스로가 하는 것이라고. 판타지는 어쩌면 우리가 잊고 지냈던 작은 희망이 불씨를 떠올리게 해주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간결하면서도 산뜻하게 그러면서도 인간의 삶과 그 안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것들을 코우노라는 사람의 인생으로 정리해 보여주는 듯한 <바다의 선인>. 우리에게 판타지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아니라, 잊고 살았던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상황의 나로서는 나만의 판타지가 내 눈앞에 나타난다해도 알아 차리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언젠가 내 눈앞에 나타난 판타지를 꼭 알아챌 수 있기를... 꼭 만나게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