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되면 그녀는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3
다구치 란디 지음, 김난주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처음 읽었을 땐, 도대체 이 여자들 뭐야!! 라는 생각에 화가 났다. 사랑이 밥 먹여줘? 사랑만 있으면 모든 게 해결 돼? 왜 이렇게 사랑에 목숨걸고 바보 같은 짓만 하니..... 란 생각에..
하지만, 책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너도 그랬지 않느냐..하고.
그랬다.
나도 한때는 사랑에 목숨 걸고, 이 사람이 아니면 안돼..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그 사람의 한 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고, 행여나 내가 잘못해서 헤어지잔 소리가 나올까 전전긍긍했다.

사랑이란 건 참 미묘해서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도 하고 슬프게도 한다. 행복, 기쁨, 웃음을 주던 존재는 그 빛이 바래면서 질투, 원망, 아픔, 슬픔, 비참함으로 이전된다.
바로 사랑이란 감정이 갖는 양면성이다.
아름다우면서도 추한 것이 사랑이랄까.

다구치 란디의 <4월이 되면 그녀는>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사랑때문에 흔들리고 괴로워하고 아파한다. 난 이 여자들이 겪은 일을 모두 겪은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경험이 있기에 첨엔 화가 났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바보 같아서 지난 일을 금세 까먹는다. 나도 이 주인공들처럼 바보같은 사랑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몇년이 지난 지금은 다 잊어버렸다. 아니 잊으려고 애썼고, 그래서 희미한 기억만이 남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도 그녀들 같았다는 것이다. 쓴 웃음이 나오는 건 자명하다.

솔직히 말해 그런 바보같았던 시절을 기억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나 역시 그랬던 것이기에 강한 반발과 강한 거부감을 가지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잊기 위해, 혹은 누군가를 떠올리기 싫어 술을 마시고 한 번쯤 사랑했던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정말 바보같은 짓인줄 알면서도 손은 수화기를 향해 뻗는다. 술이 깨고 나면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심정이 되겠지만, 술김에 용기를 내어본다. 아니 치기일까.

그런가 하면, 오지도 않을 전화를 기다린 적도 많다. 분명히 이젠 전화가 오지 않을 상대인데도 불구하고. 이제나 저제나 전화가 올까 싶어 전화 앞을 떠나지 않지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엉뚱한 전화만 와서 전화를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 적도 있더랬다.

너까짓 것 잊어 주마. 내게 남은 건 일이야 일...
이라고 혼자 자위하면서 미친듯이 일에 매달린적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참 바보같은 짓이었지만, 어차피 한 번은 건너가야 할 과정이 아닐까. 지금도 난 나의 짝을 못만나 혼자 있지만, 예전처럼 사랑을 하고 싶다거나, 이성을 만나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은 별로 안든다. 솔직히 말해서 서른이 넘으니 새로 무언가를 시작해야하는 게 귀찮아졌다. 누군가의 소개를 받든, 아니면 우연히 만나든 간에 처음부터 연애를 시작해야하는 것. 어휴.. 이 나이가 되서 그짓을 또 반복해야돼? 이런 자문이 들기도 한다. 

우리말 속담에 짚신도 짝이 있다고 하지만, 그 짝을 만나는 일이 쉽지가 않다. 
평생의 반려(半侶)를 만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자신의 짝을 만난 사람을 보면 심술이 생긴다. 난 아직도 이러고 있는데, 넌 참 쉽게도 만났구나 하는 어린애같은 질투가 난다. 하긴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것이고, 남들이 하면 쉬운 일 처럼 보여도 당사자들은 역시나 힘들었을 텐데 말이다. 

이 소설의 여자 주인공들은 아직 자신만의 사람을 못만났다. 그래서 그렇게 방황하고 힘들어 하고 외로워한다. 사람의 인연이란 억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시간은 가고, 나이는 점점 먹으니 억지로라도 인연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아직까지 이 사회는 혼자 사는 여자, 혹은 나이를 먹고도 결혼하지 않는 여자에 대한 편견이 많아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녀들은 자신의 짝을 만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게 언제쯤이고, 그동안 또 얼마나 많은 아픔과 외로움과 괴로움을 견뎌야할까. 한명이라도 짝을 만났다면 왠지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째 한사람도 제 짝을 못만났다. 지금 나에게 짝이 있다면 좀만 더 견뎌 봐, 틀림없이 너도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야.. 라고 말해줄 테지만, 본인 코가 석자다 보니,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든다. 그래도 다부지게 자신을 믿고 미래를 믿는 그녀들을 보면서 나도 작은 희망을 가져 본다.

그래, 내가 너희보다는 늦었지만 진짜 내 짝을 꼭 만날테다!
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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