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가 내리는 여관 - 위니북스-A003
미즈하라 토오루 지음, 박정현 옮김 / 위니북스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겨울비가 내리는 여관이라는 다소 시적인 제목과 카라꽃을 들고 있는 슬픈 표정의 남자. 그리고 비 내리는 하늘을 배경으로 옆모습만을 보이는 안타까운 표정의 남자. 일단 이 책은 표지에 반해 구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즈하라 토오루의 작품은 아직 <슬픈 눈물은 필요없어>란 책만을 읽어 보았기에 이 작가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좋다. 요번엔 어떤 이야기일까라는 궁금증과 설렘으로 책 뒷표지를 보면서 이번 작품의 주인공도 슬픈 사연을 가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랜 시간 연인이었던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받고 1년이 지난 후, 연인의 남동생이 찾아 왔다. 그의 입에서 나온 건 충격적인 사실.
연인이었던 유우지는 뇌종양으로 사망했고, 그걸 알고 이별을 고한 것이 아니냐는 유우지의 동생 슈지의 말에 요시후미는 당혹감과 슬픔을 감추지 못한다. 거기에다 슈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요시후미를 일방적으로 몰아 부친다.

슈지가 요시후미에게 육체관게를 요구해 들어오는 장면에서 난 어이없게도 "형사취수(兄死取嫂)"란 단어를 떠올렸다. 설정 자체가 그렇다보니 이런 말이 떠오른 것도 무리는 아닌 듯하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좀더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었지만 말이다.

일방적이며 다분히 폭력성이 있는 관게를 요구당하면서도 슈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요시후미를 보면서 '이런 바보, 사실대로 말하면 좋잖아'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유우지의 죽음에 대한 속죄의 의미 혹은 죄책감이 깊어 슈지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나 하는 마음에 안타까움이 컸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도 점차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져 버리는 것일까. 처음엔 슈지를 보면서 유우지를 떠올렸던 요시후미도 어느새 슈지를 받아 들이게 된다. 요시후미는 처음부터 슈지를 벗어날 방법이 없었던 것일까.

사실 사회 생활을 하는 어른의 입장에서는 직장을 그만두고 이사를 해버리는 등의 방법으로 자신에게 닥쳐온 일을 피할 수는 없다. 물론 요시후미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슈지에게서 도망치고자 했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요시후미의 성격상 그렇게 하기도 어려웠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슈지의 모습에서 죽은 연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고, 일방적으로 몰아 부쳐진 관계일지라도 육체 관계를 맺는데서 오는 두려움과 죄책감은 얼마나 컸을까. 어쩌면 죽고 싶을 만큼 괴롭고 죽은 연인에게 미안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슈지를 통해 죽은 연인의 모습을 떠올리는 일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난 그런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요시후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럴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만이 문득 들 뿐.

세상에는 영원한 것은 없다.
비록 영원의 맹세를 했더라도.
난 사랑도 역시 영원한 것은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에 요시후미의 감정 변화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것이 사회적인 입장으로 보기엔 눈살이 찌푸려질 일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죄는 아니니까. 

겨울비처럼 무겁고 울적해지는 이야기이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애틋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겨울비가 내리는 여관. 힘든 관계이지만 차가운 겨울비 속에서도 맞잡은 손의 온기를 잊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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