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기억 바람의 행방 - 뉴 루비코믹스 스폐셜 006
쿠니에다 사이카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첨에 책을 배송받고 꽤 놀랐다. 물론 가격이 보통 만화의 2배란 점을 감안해도 두께가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양장본에 만화책 두 권의 두께라... 사실 이건 쿠니에다 사이카의 미래의 기억과 바람의 행방을 합본한 책이다. 그래서 그런지 보통 만화의 두 배 가격이 납득이 갔다.

쿠니에다 사이카의 만화는 요번이 세번째인데, 먼저 본 것은 <한숨의 온도>와 <파수꾼>이란 책이었다. 한숨의 온도는 주인공들의 성격이 좀 어두운 면이 있었고, 파수꾼은 전체적인 분위기가 굉장히 다크해서 이 작가는 다크한 쪽으로 잘 그리나 보다 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미래의 기억 바람의 행방은 내 생각을 완전히 비껴갔다. 너무 밝아서 기분이 둥실둥실 떠다닌다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물론 몇 몇 장면에서는 코끝이 찡해지기도 하고, 마음이 숙연해지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그러한 것을 유머란 코드와 잘 섞어서 진지한 부분은 잘 간직하면서도 시종일관 날 웃게 만들었다.
 
켄토와 아키라 커플을 비롯해서 켄토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양호 선생 유키에, 아키라의 엄마, 아키라의 은사님에다가 켄토의 학생 신도까지. 개성 풀풀 넘치는 캐릭터들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더욱더 풍성해진다. 이 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어찌보면 약간 비현실적인 감을 주지만, 반면으로는 현실성 강한 이야기를 함으로써 그런 이미지를 완전히 상쇄한다. 

게다가 여름 마츠리, 온천 여행, 설날의 풍경 등 다채로운 이야기를 집어 넣음으로서 분위기는 더욱더 밝고 명랑해진다. 특히 여름 마츠리에서의 여우 가면을 쓴 아키라는 어찌나 귀엽던지.. 이런 장면을 보면 나도 여름 마츠리 기간에 맞춰 일본을 방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유카타를 입고 타코야키, 야키소바, 오코노미야키, 사과사탕, 솜사탕을 맛보고, 금붕어 뜨기나 표적 사격도 해보고, 불꽃놀이도 보고 싶다. 물론 가면도 사서 써보고 싶고. 물론 만화에서 이런 자세한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이런 일본적인 이야기를 보면 늘 일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 도중이란 에피소드도 무척 마음에 들었는데, 이건 온천 여행편이다. 갑자기 나타난 아키라의 은사님. 능글능글한 이 아저씨는 훼방꾼인가?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이 아저씨의 이야기를 통해 아키라의 예전 이야기도 잠시 등장한다. 그리고 이 은사님과 은사님의 부인을 보면서 아키라와 켄토 역시 진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성격도 성향도 다른 두사람. 게다가 남자들.
이렇다 보니 주변에 자신들이 커플이라고 밝히는 건 고사하고, 누군가에게 소개를 할 때도 망설여지는 사이다. 이러한 동성 커플의 아픈 점 힘든 점을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엄숙한 분위기가 아니라 적당한 정도의 가벼움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말랑말랑하게 이야기한다고 할까. 그러면서도 진지함을 잃지 않는다. 참 어려운 이야기인데도 쿠니에다 사이카는 그런 점을 참 잘 풀어내고 있다.

무조건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베드인~~~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때로는 싸우고 그러면서 화해하고,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하는 그런 장면이 많아서 좋았다. 그렇다고 우리 사랑 영원히 맹세해~~이런 류가 아니라 가족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쓰고,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 하고, 또한 미래에 함께 하기 위해 호적 문제까지 고려하는 모습을 보면 단순한 사랑 놀음이 아니란 것이 보인다.   

물론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원 나잇 스탠드처럼 시작했지만,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서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미래를 설계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너무 예뻤다. (사실 켄토는 빈말이라도 귀엽다라고 하긴 힘든 외모지만.. 笑) 뒷 부분에 나오는 미래의 기억 노년 편은 비록 꿈이긴 하지만 두 사람의 미래의 모습을 슬며시 엿볼수 있는 부분이었다. 물론 둘의 모습에 박장대소를 하면서 쓰러지게 웃었지만...

아마도 켄토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과 겹쳐서 그런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켄토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 책에서 아주 양념역할을 제대로 하는 캐릭터다. 사실 손자가 남자를 좋아한다는데 그걸 쌍수들고 환영할 조부모가 있을까. 하지만 유들유들하게 할아버지와 기싸움을 하는 아키라와 켄토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투쟁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뭐랄까 시종일관 웃음이 터졌다. 특히 할아버지의 표정이란.....(사실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웃으면 안되지만 할아버지만 등장하면 웃음부터 터지는 바람에....)

사랑을 한다고 늘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사랑을 한다고 해서 늘 행복한 것도 아니다.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게 사랑이다. 이성 사이의 사랑이든 동성 사이의 사랑이든 사랑의 무게는 늘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봤을때 동성 사이의 사랑이란 거의 금기시되다시피 한 것이다 보니 늘 즐거울 수만은 없다. 비록 가상의 이야기이지만 진중함과 유머스러움을 잘 혼합해 만들어낸 미래의 기억 바람의 행방은 누군가가 그리울 때, 그리고 마음이 허전해질때 읽으면 늘 내게 웃음과 따뜻함을 선사해 줄 것 같다.
 
켄토, 아키라.
켄토의 할아버지 말씀처럼 "네가 100살까지 살면 난 99살까지 사는게 목표"란 말을 꼭 이루길 바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