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밀실 트릭과 심리 게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ㅣ 애거서 크리스티 추리문학 베스트 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2002년 5월

 애거서 크리스티는 셜록 홈즈의 코넌 도일, 괴도 루팡의 모리스 르블랑과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추리 작가 중 한 명이다. 초등학교때부터 추리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설이나 추석같은 명절에 용돈을 받으면 바로 서점에 가서 추리 소설을 열 권씩 사오곤 했던 기억이 있다. 또한 일주일에 한 번씩 오던 이동 도서관 역시 내가 추리 소설을 빌리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이기도 하다.

당시 왠만한 책(번역본)은 구할수 있는 대로 구해서 읽었는데, 벌써 오래전 일이 되어 버려서 그런지 띄엄띄엄 기억이 날뿐이다. 그래서 다시 애거서 크리스티를 시작했다. 워낙 많은 추리 소설을 쓴 작가라 한 권 한 권 모으는게 시간이 많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모은다는 건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이라는 제목도 있는데,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은 이 소설에 나오는 동요이자, 소품이기도 하다. 노랫말 자체가 무척이나 오싹한데, 그 노래 가사에 따라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죽어가기 때문에 더욱더 오싹하다.

인디언 섬이란 곳에 고립된 10명의 사람들. 그들에겐 남들에게 숨기고 싶은 비밀이 하나씩 있었다. 그건 자신이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 물론 과실도 있겠지만 방조나 방관으로 인한 "살인"행위도 있었다. 

이 소설은 섬이란 거대한 공간을 밀실로 만든 트릭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도 빼어난 작품이다. 끝없이 서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공간, 그리고 살해되어야만 살인귀의 혐의가 풀기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등은 독자들이 긴장을 늦출 잠깐의 여유도 주지 않는다.

사실 섬이란 건 날씨에 따라서 고립되기 쉬운 곳이다. 즉, 섬자체가 밀실이 되기도 한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섬자체를 밀실로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이런 설정은 현대 추리 소설에서도 볼 수 있는데, 무척이나 흥미로운 점이다. 
도대체 범인은 누구일까. 섬에 외부인은 정말 없는 것일까?
이 소설은 끝까지 범인을 숨겨 놓다가 마지막에 범인의 고백이 담긴 편지가 발견됨으로써 범인의 정체가 밝혀진다.

일본 소설중 아야츠지 유키토의 <십각관의 살인>이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 역시 섬을 밀실 상태로 만들어 놓고 한 사람씩 죽어 나가는 설정을 보여준다. 십각관의 살인은 치밀한 복수극이었는데, 실제로 이 책에서의 범인은 외부인이었다. 하지만, 섬을 밀실 자체로 만든 것, 그리고 병속에 담긴 편지로 인한 범행 고백등이나 섬에 불려온 사람들이 어떤 한 사건에 연관되어 있었고, 그것이 고의적 살인은 아니었지만 결국 "살인"이라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설정이었다.

또한 소년 탐정 김전일(긴다이치 하지메) 애니메이션에서도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생각나게하는 에피소드가 있다.『러시아 인형 살인 사건』이란 것이었는데, 한 사람이 죽을때 마다 악기를 든 러시아 인형이 목이 잘리는 것으로 누가 봐도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떠올릴 것이다.

추리 소설의 고전이라고는 하지만, 현대 시대에 읽어도 트릭의 깊이는 상당하다. 고립된 섬의 밀실 상태, 누가 범인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치밀하게 벌어지는 살인극. 애거서 크리스티를 이야기할 때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빼놓고 말한다는 것은 시쳇말로 앙꼬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이다.  

오랜만에 애거서 크리스티의 책을 읽으니 예전에 읽으면서 맛보았던 짜릿한 기분이 다시 떠오른다. 다음은 기차안에서 발생하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읽을 차례다. 이 책도 너무나 오랜만에 읽는 거라 세세한 기억은 안나지만 그것이 또한 큰 즐거움이다. 추리 소설은 트릭을 모르고 읽는 부분이 가장 즐겁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 책장을 빼곡히 채울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을 꿈꾸며 서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