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여자
오정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나는 내게 서른이란 나이가 오지않을줄 알았다.
10대때는 당연히 그랬고, 20대때도 그랬다.
한해 한해 나이를 먹으면서도 스물 아홉이 될때도 서른이란 나이는 여전히 나와 상관없을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서른도 더 넘어 서른 중반의 나이에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풋하고 난다.
왜 그랬을까.
당연히 한해가 지나고 두해가 지나면 서른이 되는 건 당연한 건데.

아마도 서른이란 나이가 주는 이미지는 아줌마, 결혼, 그리고 늙었다 라는 그런 이미지가 먼저 떠올라서가 아닐까.
지금은 아직도 난 젊어라고 혼자 주문을 외듯 스스로를 세뇌하고 있지만, 그래도 나이는 착실히 먹고 있다.

가을 여자는 주로 30대가 넘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자들의 이야기도, 남자들의 이야기도 했지만, 공통된 것은 서른을 넘어선 나이에 문득 깨닫게 되는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한 것이랄까.

지금보다 나이가 어렸을 서른이 넘으면 연애도 못한다고 생각을 했고, 사랑이란 건 더더욱 물건너 간 이야기라 생각했다. 서른이 되기 전에 결혼을 할 거라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인생은 자기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다. 난 아직 결혼도 안했고, 연애도 안하고 있고, 결혼할 생각조차 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주위 친구들 반정도는 결혼을 한지라, 결혼 생활이 어떤지는 대충 안다. 물론 내 어머니를 통해서도 결혼 생활이 어떤 것이란 건 잘 알고 있다. 여자로서의 인생을 포기하고, 자식 양육과 남편 뒷바라지, 시댁 봉양까지 한국 여성들의 삶은 대체로 결혼과 동시에 비슷해진다. 물론 직장 여성의 경우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집에 돌아가는 순간부터는 아이들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 그리고 한 집안의 며느리가 되어 버린다.

가을 여자는 그런 여자들의 모습을 잘 담아내고 있다. 거기에다 머리카 컸다고 벌써 자기 주장을 하는 아이들, 어느샌가 연애시절의 달콤함은 날아가고 데면데면해진 부부, 불편한 고부 관계등 결혼한 후 몇 년이 지나 어느샌가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그러나 너무나도 그 현실들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여성들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지금이 그렇다고 예전까지 그랬으랴. 꽃피고 새우는 봄날엔 벚꽃길을 따라 데이트를 하고, 무더운 여름엔 바닷가 바람과 파도를 보며 낭만을 꽃피우고, 붉게 물든 단풍이 산자락을 물들일땐 고독과 낭만을 곱씹고,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엔 그 눈을 보며 러브 스토리의 한 장면을 찍어보지 않았던 청춘이 어디 있으랴.

삶이 팍팍해지고 삶에 쫓기면서 그런 여유를 잊어 버렸겠지만, 당연히 청춘의 기억은 한해 한해 늘어가는 주름살에 곱게곱게 묻혀있던 것일뿐.
아마도 이 소설을 20대에 읽었더라면 에잇.. 구질구질해..
결혼 따위 절대로 안할테다. 이런 말이 먼저 나왔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도 어느덧 서른 중반이란 나이가 되고 보니, 이런 저런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일들이 남의 일 같지 않다. 물론 결혼 생활에서 오는 염증이나 힘듦은 내가 이해를 잘 못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지난 세월의 즐거움이나 행복을 잊고 사는 건 똑같기 때문일 것이다.

청춘을 구가하는 10대, 20대들이여,
너희도 나이를 먹는다.
언젠가 너희도 내 나이가 되면 이해할 수 있으리라.
지금은 비록 구차해보이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로 보여도 그들에게도 빛나는 청춘이 있었고,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으며, 뜨겁게 사랑했던 시절이 있었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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