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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실 ㅣ 기담문학 고딕총서 7
이즈미 교카 지음, 심정명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이즈미 교카의 외과실은 총 네 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 소설집이다. 표제작인 외과실과 띠가 난 들판은 단편이며, 고야성과 눈썹 없는 혼령은 중편 정도로 보면 되지 않나 싶다. 귀신이나 유령등을 소재로 한 환상 문학을 주로 쓴 이즈미 교카는 300편여편의 소설을 발표했다고 하지만, 아쉽게도 국내에서 번역 발간된 작품은 딱 이것 하나이다.
작가의 이름을 딴 이즈미 교카상을 받은 작가로는 요시모토 바나나, 유미리, 기리노 나쓰오 등이 있지만, 이들 작가의 작품이 다수 번역 발간되는데 반해, 정작 상의 이름의 주인공인 이즈미 교카의 작품은 딱 한 권 밖에 번역 발간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아이러니로 느껴질 정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척이나 난감했던 부분은 근대에 씌어진 작품이라 그런지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문체랄까, 혹은 작가의 독특한 문장 서술 방식이랄까. 뭐 그런 것이었다. 한 번 읽은 것으로는 도저히 감이 안와서 며칠 텀을 두고 두 번을 읽었는데, 두 번째에 이르러서야 문장들이 제대로 눈에 들어 왔다. 원래 문장이 알기 어렵게 씌어졌는지 아니면 번역상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앞뒤 연결구조가 잘 들어 맞지 않은 문장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안그래도 익숙치 않은 문장들인데 그런 식으로 서술되어 있으니 더욱더 읽기 힘든 건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그래도 비슷한 시기에 저술 활동을 한 나쓰메 소세키는 그다지 읽기 힘들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이즈미 교카는 은근히 읽기가 까다로웠다.
각설하고 책 본문에 대해 잠깐 살펴 보자.
<고야성>은 우연히 동행을 하게 된 승려의 옛날 이야기를 주인공이 듣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이야기 안에 이야기가 들어 있는 구조로, 중간중간 현재 이야기가 들어가면서 조금 헷갈렸던 부분이 생기기도 했다.
마쓰모토로 가는 길에 만난 약장수가 지금은 쓰이지 않는 지름길로 향하자 승려도 그의 뒤를 좇아 지름길로 향한다. 그곳으로 들어가자 마자 기이한 일들이 발생하지만, 일단 그 길로 들어섰기에 계속 나아가기로 한다. 풀밭을 지나자 어두컴컴한 숲이 나오는데, 그곳이 또한 기겁할 정도로 무서운 곳이었다. 하늘에서 거머리가 비처럼 떨어지는 숲. 생각만 해도 소름이 쫘악 끼치는 기분이랄까. 먹잇감이 오기를 기다리는 거머리들의 무리라니... 한 마리만 있어도 신경이 바짝 오그라들 정도인데 말이다. 힘들게 숲을 빠져 나가니 산중의 외딴 집이 보인다. 그곳에서 만난 건 한 남자와 한 여자, 그리고 한 사람의 영감.
하룻밤 묵어가자는 승려의 말에 흔쾌히 그것을 허락하는 여자. 그리하여 승려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청하게 된다.
그곳에서 벌어진 일, 그리고 또 그곳에 있었던 과거의 일, 고야성은 이야기 안에 이야기가 또 나오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연 그 여인의 비밀은 무엇일까. 일명 '마신님'이라 불리는 그녀는 신통력을 가지고 있던 존재였다. 굳이 드러내놓고 이야기 하지는 않아도 그녀는 왠지 사람들에게 배척받는 동시에 경외시되었던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과학보다 미신이 더 뿌리 깊게 내려졌던 사회에서 그녀의 존재는 이질적이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복수랄까, 그런 것이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외과실>은 표제작인데도 분량은 굉장히 짧았다. 백작 부인과 의사 사이에 감춰져 있던 비밀. 그것은 수술하던 날 조심스레 드러난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미루어 짐작해 봤을 때, 화족이란 신분과 일반인의 신분은 감히 섞이지 못할 존재였을 것이다. 죽음을 통해 이룬 사랑이랄까, 굉장히 안타깝게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눈썹 없는 혼령>은 말 그대로 유령 이야기이다. 나라이의 한 여관에서 묵게 된 사카이가 경험한 이야기를 화자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형식인데, 이 역시 이야기안에 몇 개의 이야기가 동시 서술된다.
이 이야기는 특히나 그 시대 상황 속의 여인들의 사회적 위치를 잘 보여 준다. 지금보다 더 가부장적인 현실 아래 고통받고 신음하는 여자들이 등장한다. 특히 지고지순한 며느리나 상대 집안의 의혹을 풀어주기 위해 그 곳을 찾아가는 기생과 며느리를 잡아 먹으려는 시어머니나 바람 핀 걸 들킨 후 본처의 치맛폭에 숨어버린 남자들의 대조는 쓴웃음만이 지어진다. 불의의 죽음으로 여전히 그곳을 떠돌고 있는 오츠야님은 여전히 초롱을 들고 그곳을 배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띠가 난 들판>은 어느 여름날 밤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게 된 남녀의 이야기이다. 이 둘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 여인이 겪었던 일에 대한 일이 나오는데, 그 부분을 보면서 왠지 우부메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출산을 하지 못하고 죽은 여인의 요괴가 바로 우부메이다. 기본적인 우부메의 모습과는 다르지만 여인이 출산을 하던 당시 보였던 여인의 모습은 저승사자 같기도 하고, 우부메처럼 슬픈 요괴인것 같기도 하다. 출산과 관련되어서 그런 것일까. 그런 생각이 문득 떠오른 단편이었다.
읽는 건 좀 난해한 편이었지만, 이즈미 교카의 소설을 이렇게 책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에 행운을 느꼈던 작품집이었다. 게다가 중간중간 들어가 있는 우키요에가 이 책의 맛을 더욱더 잘 살려주었다고나 할까. 작가의 다른 작품도 우리나라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