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사라지고 있습니다
마쓰오 유미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비가 오는 날에만 나타나는 그녀.
처음엔 그녀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지만,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 시로와 토라의 이상한 행동으로 그녀의 존재를 눈치채게 된 남자.
그녀는 스스로를 유령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존재감은 전혀 없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와 소파에 앉을때 살짝 꺼지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처음에 책 표지와 책 띠지를 보면서 문득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떠올랐다. 장마때 비가 몹시도 쏟아지기 시작할 무렵 돌아온 죽은 아내와의 행복하고도 애틋한 나날을 그린 그 소설이. 하지만 조금더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흐름이 급격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유령인 치나미는 자살했다고 보도되었지만, 실제로 그녀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고 한다. 처음엔 유령의 존재가 두려웠던 누마노 와타루는 그녀와의 이야기에서 호기심을 느끼기도 하고, 또한 그녀를 얼른 성불시키고 싶다는 생각에서 그녀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기로 한다.

처음엔 평범한 이야기처럼 시작하지만 곧이어 유령이 등장하고, 그 유령은 자신이 살해되었다고 하면서 이야기는 미스터리로 흘러간다. 그날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비가 오지 않는 날은 나타나지도 않고, 비가 오는 날이라도 맨션의 거실 공간을 한정해서 움직임이 가능한 치나미는 와타루 이외에는 부탁할 사람이 없었다. 하긴 유령이 거실에 나타난다면 누구든 혼비백산하지 않을까. 하지만 와타루의 경우, 공포보다는 호기심이 앞선지라 그녀의 말을 찬찬히 들어 준다.

와타루는 그녀의 고백을 토대로 당시 사건에 관련있던 사람들을 하나씩 만나 그날의 일에 대해 조사를 시작한다. 유력한 용의자부터 시작해 그녀와 관련있던 사람들까지. 하지만 껍질을 벗겨도 벗겨도 게속 내용물이 나오는 양파처럼 계속해서 새로운 진실들이 드러난다. 그리고 하나의 의혹이 사라질 때마다 그녀도 변신을 한다.

처음엔 무릎 아래쪽의 두 다리가, 두번째는 허리 아래의 하반신이, 그리고 세번째는 목이 없는 전체 모습이.....
솔직히 말해서 첫번째로 그녀의 모습이 드러난 순간, 난 기겁을 했다. 세상에 거실에 다리만이 돌아다니고 있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심 그녀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길 바랐다.

와타루도 처음엔 나와 같은 반응을 보이나 그녀의 죽음에 관한 진실이 드러날 수록 그녀의 전체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의혹이 하나씩 해결될 수록 오히려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애시당초 그녀를 죽이고 싶은 인물이 있었을까. 그녀 주위의 인물들은 오히려 결백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과는 또 반대로 와타루는 유령인 치나미에게 끌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살아 있던 동안에도 무척이나 외로웠을 그녀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는 생각때문에 성불하지도 못하고 이승을 떠돌고 있다. 죽어서는 유령이 되어 사람들에게 더욱더 두려움을 주는 존재가 되었을테니, 그 외로움은 더욱더 커졌으리라.

의혹의 해명과 더불어 조금씩 윤곽을 갖추어가는 치나미의 모습은 와타루에 대한 마음의 성장과 상당 부분 통하지 않을까.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자신을 대신해서 자신의 일을 조사해주는 그에게 고마움과 더불어 사랑이 자라지 않았을까. 

마지막 진실이 밝혀진 후, 완전한 모습으로 나타난 치나미. 
치나미는 마지막 밤을 와타루와 함께 보낸 후 영원히 피안의 땅으로 사라졌다.
마지막 몇 페이지에 묘사된 그들의 마지막은 무척이나 가슴이 저렸다. 아마도 와타루는 그녀를 붙잡을 수 없었으리라. 그녀가 죽으면서 남긴 미련이나 의혹이 모두 사라진 상태이니 그녀가 성불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와타루. 그리고 그녀의 존재를 알려 주고, 그녀와의 접점을 만들어준 두마리의 고양이 시로와 토라 역시도 그녀가 떠나는 것을 따뜻한 눈으로 배웅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 

책 내용에서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치나미의 모습이 조금씩 조금씩 드러나는 것, 결국 그것은 떠나기 위한 준비였는지도 모르겠다. 의혹이 풀릴 때마다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는 대신 그녀의 몸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그건 준비된 이별의 순서였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여주고 떠나게 된다는 것. 아마도 와타루는 그녀의 얼굴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비가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렸다면 치나미는 와타루의 곁에 계속 있을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도 잠시 해봤지만, 역시 이승에 둔 미련이 사라진 지금은 그녀가 사라질 수 밖에 없었을 거란 생각이 크다. 비가 내려준 기적. 한 사람은 사랑을 안고 떠났고, 한 사람은 사랑을 가슴에 품은채로 남았다. 하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모두 예고되어 있던 일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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