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숲 호텔 1
시노하라 치에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어느 곳에나 있지만, 누구에게나 보이는 곳은 아니다.
만약 들어갈 수 있다해도 그건 인생에서 단 한 번 뿐.
안개숲 호텔은 삶에 지쳐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놓인 사람들에만 보이는 비밀의 장소이다.

처음엔 문득 후시기 공방시리즈가 떠올랐다. 인생에 찌들어 지쳤을 때,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 불현듯 나타나는 후시기 공방. 그곳에서 사람들은 이루어질 수 없는 주문을 한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이루어진다는 설정. 안개숲 호텔을 읽었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후시기 공방 시리즈의 경우, 결국 자신이 스스로 해야 하는 경우인데다가, 후시기 공방의 도움은 보일락 말락하지만, 안개숲 호텔의 경우에는 호텔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다는 설정이었다. 호텔이라서 그런지 공방보다는 서비스가 좋군.. 하는 실없는 생각도 잠시 하긴 했지만, 난 어느새 책 내용에 푹 빠져들어 버렸다.

연작 단편집인 안개숲 호텔 제 1권은 총 세 편의 단편이 실려 있으며, 호텔이 배경이 되고 호텔 근무자들이 공통으로 등장한다는 것외에 다른 등장 인물들은 겹치지 않는다. 책 표지만을 보면 굉장히 근대를 배경으로 할 것 같지만, 의외로 시대는 현대이다.

<살인의 권유>는 약혼자에게 버림받은 여인의 상처와 아픔을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어느새 집착과 미움이 혼재된 애증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게 소름끼칠 정도이다. 게다가 은근 슬쩍 자신을 버린 사람을 죽이는데 동의하는 듯한 호텔 직원들.. 여긴 도대체 어떤 호텔이지?라는 의문과 호기심이 어느새 마음속을 가득 채웠다.

여자가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던 그 시간, 묘하게도 그 여자를 버린 남자와 그 여자의 약혼녀가 그 호텔에 들어온다. 복수를 다짐하며 둘만이 있게 될 시간만을 기다리는 여자의 집념이라든지 마음 속 어둠은 서늘하게 다가왔다.

<열린 문>의 경우 안타깝기도 하면서 동시에 자업자득이 아닌가 하는 그런 느낌을 주는 단편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방황하는 여자. 그녀가 두 사람을 두고, 누굴 선택할지 고민하는 모습은 안개숲 호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동시에 두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이해불가능의 상황이나 그럴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여자가 안개숲 호텔에 들어오게 된 이유, 그리고 진실에 대해 알았을 때는 왠지 굉장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사랑이란 건 가끔, 너무나도 가혹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마지막 단편인 <미궁>은 무척이나 마음이 아팠던 작품이다. 한 소녀와 그녀의 어머니 사이에 있었던 진실. 그것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안개숲 호텔에서 다시 펼쳐진다. 어머니의 유품에 남겨진 단 한가지 진실, 그것은 남겨진 그녀에게 구원이었다. <미궁>의 전개 방식은 현재와 과거를 묘하게 겹쳐서 마치 꿈처럼 보였던 단편이기도 하다.

꿈인듯 싶으면서도 현실이고, 현실인듯 싶으면서도 꿈과 같은 안개숲 호텔은 미스터리와 로맨스가 적절하게 혼재되어 색다른 매력을 주고 있다. 로맨스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미스터리는 좋아하는 나로서는 미스터리어스 로맨스란 것이 꽤나 매력적인 아이템으로 다가 왔다. 작화는 조금 오래된 순정 만화의 작화를 떠올리게 하지만, 이야기 자체가 깔끔해서 그런지 나중엔 그림은 별로 신경을 안쓰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2권으로 완결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2권도 얼른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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