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가무연구소
니노미야 토모코 글, 고현진 옮김 / 애니북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이 작가가 <노다메 칸타빌레>를 그린 그 작가 맞아????
첫페이지를 넘기면서부터 뒷통수를 세게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작화로 봐서는 노다메의 작가가 맞는데 말이지....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사실 충격적일만큼 재미있었다가 맞는 표현일지도.

작가 자신을 모델로 술주정뱅이들의 생태를 거침없이 그려낸 음주가무연구소는 20대때의 내 모습을 여러 가지로 떠올리게 했다. 물론 작가처럼 그정도로 술을 많이 마신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술을 많이 마셨던 시기가 20대였던 만큼 웃지 못할 사건도 많은 건 사실이다.

한달을 30일로 기준으로 잡았을 때 25일을 술을 마시던 때였으니, 기억 몇 개쯤은 우주로 사라졌고, 물건 몇 개쯤은 행방이 묘연한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처음 술을 맛본 건 고교시절이었다. 수능 1세대라는 부담감이 백배 작용해서란 건 거짓말이고, 다들 백일주니 88주니 7땡주니 하면서 酒님, 酒님을 부르짖던 때라 호기심에 마셔본 것이 술과의 첫만남이다.

그후 대학에 들어가니, 완전 자유로운 생활에 그 여유를 주체하지 못하고 미친듯이 술을 탐했다. 난 역사 전공이었는데, 사악했다 정말로... 사학을 공부한 게 아니라 사악을 배웠다. 게다가 동아리 활동은 풍물 및 마당극과 탈춤을 배우는 곳이었으니, 풍류를 즐기며 또 술잔을 기울이고.... 대학 다니는 내내 술과 친구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술만 마시면 사람을 기억 못하는 통에, 술을 즐겁게 마시고 다음날 만나면 사람을 알아 보지 못해 당황스러움을 겪은 일도 한두번이 아니요, 심하게 많이 마신 날은 말그대로 블랙 아웃(필름이 끊김)이 되어 이틀동안 기절한 적도 있고, 병원에 실려간 적도 있으니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뭐... 그렇게 살았던 인생의 10년을 반추해 보니, 이 책의 내용이 공감백배로 다가오는 건 당연하다. 내가 보기에 작가가 이 책을 펴낸 의도는 술을 적당히 마십시다라는 의도로는 절대로 안보인다. 작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술에 관한 에피소드 일색, 그것도 어디에 내놔도 절대 꿀리지 않을 만한 포스를 갖고 있는지라, 그저 킥킥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해도 벅차더이다.

술이란게 사실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울 조상님들의 말씀으론 술이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사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즐겁게 마시고 즐겁게 취하면 그 이상의 천국도 없지만, 자칫 잘못했다가는 위장의 내용물을 다 확인해야할 지경에 이를수도 있고, 까딱하다가는 병원에 실려갈 수도 있고, 괜히 다른 사람들과 분란을 일으킬 소지도 주는 것이 바로 술이니까.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씌어진 에피소드를 보자면 늘 술을 마시고 후회를 해도 또 술을 마시는 건, 술이 주는 즐거움이 더 컸기에 그런게 아닐까. 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자신의 입장에 맞춰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적당한 음주와 가무는 생활에 활력을 주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술을 절제하지 못하고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술이 사람을 마시기 시작하면 그건 벌써 종점을 향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찬란했던 20대를 보내고 20대말 즈음 들어 운전을 시작하면서 술을 딱 끊었는데, 운전도 운전이지만, 술 먹고 주사가 심한 인간 한 둘을 상대하다 보니 술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게 된 것도 사실이다. 지금도 술만 보면 정신 못차리는 인간들을 보면 한심하단 소리가 먼저 나오긴 하지만, 나도 한때는 그런 시절을 보낸지라 대놓고 욕은 못한다. 그냥 슬며시 피할뿐.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 통쾌 상쾌, 더불어 미친듯이 웃고 자지러지게 웃고 쓰러지게 웃었다. 하지만, 왠지 술을 잘 못마시거나 술에 대한 황당한 경험이 없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해 혹은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라 재미없을 수도 있겠지만, 나도 한때는 주당의 한사람으로 이름을 날렸던 적이 있는지라 무척 즐겁게 읽었다.

후반부에 수록된 <한 잔 하러가자>는 엘리트 직원들의 술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파트로 이 부분은 작가의 순수 창작이다. 아무래도 직장인들의 로망을 그려놓은 만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이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생활하다가는 사회에 발 붙일 곳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픽션과 논픽션이 절묘하게 이루어져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술과 술주정뱅이들의 묘한 상관관계를 폭소로 그려낸 유쾌한 만화 음주가무연구소는 우울하거나 기분나쁜 일이 생길 때 하나씩 읽으면 바로 웃음이 터질 것 같다.

하지만, 지금도 술이라면 떠오르는 생각 한 꼭지는, 덮어 놓고 마시다가는 인간의 탈을 벗게 될 수도 있으니 술마실때는 최소한의 자제는 필요하단 거다.   
색다른 만화를 즐기고 싶은 분, 한때 주당으로 이름을 날린 기억이 있는 분께 강추하는 만화, 음주가무연구소. 이 책을 읽다 보면, 분명 자신의 경험과 싱크로되는 부분 몇 개는 찾을 수 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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