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학기 밀리언셀러 클럽 63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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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기리노 나쓰오의 책은 <아임소리마마><암보스 문도스> 에 이어 <잔학기>가 세 번째이다. <아임소리마마>의 경우 사회가 만들어 낸 극악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해 충격을 던져준 작품이었고, <암보스 문도스>는 악의로 가득찬 여러 여성상을 그려낸 단편집이었다.
<잔학기> 역시 주인공은 여성이다. 10살이란 어린 나이에 납치되어 1년 이상의 시간을 감금상태로 지낸 후 고교시절 충격적인 데뷔작으로 문단에 등단한 여류 소설가 고미 나루미의 고백을 담은 수기형식으로 진행되는 <잔학기>는 실제 일본에서 있었던 니가타 소녀 감금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라 한다.

니가타 소녀 감금사건은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인 여자아이가 30대 남성에게 납치당한후 9년이라는 시간을 감금당했던 사건으로 당시 일본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이 설정을 처음 보았을 때는 마츠다 미치코의 <여고생 납치 사육 사건>이란 책을 바탕으로 제작된 완전한 사육이란 영화가 떠올랐는데, 납치 및 감금이란 설정은 비슷하지만, 니가타 소녀 감금 사건의 경우 초등학생, 마츠다 미치코의 책과 영화의 경우는 고등학생이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실제로 있있던 일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데는 솔직히 충격이상의 경악에 가까운 감정이 든 것도 사실이다.

실제 사건의 피해자는 9년이상의 시간동안 감금당했지만, 잔학기의 주인공은 일여년의 시간을 감금당했다. 그후, 자신이 그 사건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며, 당시 일을 모티브로 하여 소설을 써낸다. 그 소설로 문단에 데뷔를 한 그녀는 그후 그저 그런 작가로 살아가지만, 자신을 납치 감금했던 범인이 풀려나면서 보낸 편지를 받은 후 <잔학기>라는 고백 형식의 수기를 나기고 사라져 버린다.

과연 그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열살짜리 소녀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녀가 고교시절 펴낸 소설은 그녀의 납치 사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을 가두었던 범인과 그 옆집에 살던 남자를 소재로 씌어진 것이었다. 사건 이후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것을 원치 않았던 소녀는 그런 식으로 마음의 빗장을 닫아 걸고 마음의 독을 키워 온다.
 
사실상 잔학기라는 수기의 내용도 그렇지만, 그녀가 데뷔했을 당시의 소설도 충격적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그 소설을 쓰는 것으로 자신이 겪었던 일을 극복하려 한 것일까, 아니면 그렇게라도 해야 그 당시 자신이 겪었던 일을 납득할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여전히 피해자라는 입장에서의 입지를 더욱 굳히고자 하는 몸부림이었을까. 아니면 범인과 자신사이에 있었던 정신적 교류를 부정하고 싶었던 것일까.

솔직히 말해, 초등학교 4학년치고는 조숙했던 그녀가 마음속에 품었던 독이라든지 악의는 거대하고 강렬했다. 도저히 어린 아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의 판단력과 냉정함. 물론 그런 큰 사건의 피해자이다 보니 당연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섬뜩함을 가져다 주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모두들 자신의 입장에서 판단을 하고, 외부의 충격을 받아 들인다. 아이가 소녀가 되고, 소녀가 어른이 되어 가면서 그녀가 부정하고 싶었던 것, 되돌리고 싶었던 것은 결국 제자리를 찾지 못한채 부유하는 공허함의 덩어리였을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니가타 소녀 감금 사건은 2000년에 발생했으니 그다지 오래된 사건은 아니다. 그런데도 굳이 그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와서 이런 소설을 써야 했던 기리오 나쓰오는 어떤 생각으로 이 소설을 썼을까 하는 것이다. 사건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이 소설로 인해 다시 한 번 큰 상처를 받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되는 것은 공연한 내 노파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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