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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눈물은 필요 없어 - 러쉬노벨 로맨스 242
미즈하라 토오루 지음, 야마시타 토모코 그림 / 현대지능개발사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좋게 이야기해서 금융업자, 나쁘게 말하면 사채업자인 쿠니에다와 고교생인 하루카. 이들은 우연과 우연이 겹쳐져 만남을 갖게 되었다. 하루카는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후 양아버지와 함께 살아가지만, 양아버지의 학대는 날이 갈 수록 심해진다. 그러던 어느날 사채업자가 양아버지의 집에 쳐들어 오게 되고, 양아버지의 빚대신 하루카가 그들에게 잡혀가게 된다.
얼핏 도입부를 보면 "아아 또 뻔한 이야기겠군"이란 생각이 먼저 든다. 하지만 그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난 끝까지 이 책을 즐겁게 읽었다. 사실, 쿠니에다가 하루카를 빚차감 대신 데려간다고 했을때, 바로 데리고 살 줄 알았는데, 그때부터 설정이 내 예상을 빗나갔다. 그리고 뒷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시종일관 궁금해 하면서 읽었다.
냉정하다 못해 냉혹하다는 것이 맞을 정도로 자신의 일에는 한치의 양보도 없던 쿠니에다는 하루카의 표정에서 어떤 것을 읽어낸 것일까. 자신을 따르는 여자들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그가 하루카에게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이유는 나중에서야 밝혀지지만, 솔직히 그 이유를 알게 되었을때 약간 놀란 것은 사실이다.
쿠니에다가 하루카를 대할 때의 진심은 무엇인지, 좀처럼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쿠니에다를 보며 신경이 쓰여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루카를 다시 학교에 보내고, 필요한 것을 갖춰 주고, 대학까지 가도록 배려해주는 그의 모습에 담긴 진의는 무엇일까. 쿠니에다 말로는 모든 것이 빚이며, 나중에 다 갚으라고는 하지만, 하루카가 고교 졸업후 바로 취직을 한다고 해도 대학을 굳이 가라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말수도 없고, 표정 변화도 없는 쿠니에다는 책을 읽는 내내 묘하게 매력적인 캐릭터로 다가왔다.
하루카의 경우도 그렇게 심한 일을 겪었지만, 스스로를 다잡고 공부에 힘쓰며 언젠가는 쿠니에다의 빚을 다 갚겠다고 결심하는 모습이 참 기특했다. 보통 이런 경우의 수라면 질질 짜고, 매일 절망하며, 공의 언사 한마디 행동 하나에 신경쓰며 눈치를 보지만, 하루카의 경우는 눈물을 속으로 삼키면서도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 애쓰고, 미래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보통 bl물을 읽을때 공이 마음에 들면, 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작품의 경우 공수 캐릭터가 모두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수도 공같은 수가 아니라 수같은 수였는데도 말이다. (笑)
또한 주목해야 할 캐릭터가 하나 더 있는데, 그건 하루카의 친구 나오. 난 이 녀석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의 인망도 두터운 나오는 하루카에게 먼저 다가와 친구가 되어주길 바란다.
왠지 하루카에게 마음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나 딩동댕.
하지만, 고교생답게 조심스러우면서도 순수하게 다가오는 나오의 우정과 사랑사이의 감정은 꽤나 신선했다. 보통 학원물이라면 어른인척 하면서 묘하게 구는 캐릭터들이 많은데, 이건 학원물이 아니라서 그런지, 나오의 캐릭터가 꽤나 순수하다.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이다.
작가님의 말처럼 극악한 키다리 아저씨 캐릭터인 쿠니에다와 자신의 가혹한 운명을 고스란히 받아 들이면서도 평범한 삶을 꿈꾸는 소년 하루카의 이야기는 자극적인 이야기나 극적인 스토리전개가 거의 없었지만 난 오히려 그런 부분이 더 좋았다. 물론 후반부에 쿠니에다가 크게 상처를 입게 되고, 하루카가 그제서야 자신의 마음을 고백해 오는 부분은 있지만, 그것을 제외한다면 두 사람사이의 감정의 교류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만, 쿠니에다가 자신의 고향이라고 이야기하는 시설에 하루카를 데리고 갔을 때는 하루카에 대한 쿠니에다의 감정이 내게도 전해졌달까.
책을 읽으면서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장면이 몇 장면 있어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처음으로 하루카가 준비한 오므라이스를 묵묵히 먹는 쿠니에다의 모습이나, 맨션 앞에서 나오가 하루카에게 키스하는 모습을 본 후 쿠니에다의 반응이라든지, 하루카가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던 장면은 무척이나 기억에 남는다. 이 부분은 야마시타 토모코의 그림으로 잘 표현되어 있는데, 특히나 눈물을 흘리는 하루카를 뒤에서 안고 있는 쿠니에다의 모습은 이 책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일러스트였다.
그리고 마지막 일러스트. 울고 있는 하루카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어 주는 쿠니에다의 옅게 미소를 지은 얼굴은 이 책에서 유일하게 웃고 있는 쿠니에다의 모습을 담고 있기에 더욱 귀중하다.
극악한(?) 키다리 아저씨였지만 지금은 온화하고 다정한 키다리 아저씨가 된 쿠니에다와 힘든 역경을 잘 극복하고 조금씩 어른이 되어 성장해 나간 소년 하루카는 이제 앞으로 행복할 일만 남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