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 - 야수들의 밤 밀리언셀러 클럽 80
오시이 마모루 지음, 황상훈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오시이 마모루의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는 몇 년전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처음 접했다. 지금은 잔체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세일러복을 입은 소녀 사야가 검을 휘두른 순간 온 화면이 붉게 물들 정도로 피가 산산히 흩어지는 그런 장면들은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아마도 어린 소녀가 그런 가공할 힘을 가지고 일본도로 미지의 생물을 베는 장면은 꽤나 자극적이었기 때문이이라.

그러다가 작년 일본에서 방영된 TV판 애니메이션 블러드 플러스를 보게 되었다.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후속작이라고는 하지만, 작화도 내용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블러드 플러스는 흡혈을 하며 날아다니는 생명체를 익수(翼獸)라 불렀다. 기본적인 내용은 사야가 익수들을 처리한다는 내용이지만,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와는 달리, 블러드 플러스의 사야는 익수들의 여왕이며, 쌍둥이 여동생과는 극과 극의 피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내용도 확대되었지만, 엔터테인먼트적 성향이 강했던 블러드 플러스는 익수와 익수에게서 인간을 보호하려는 인간의 싸움이라는 구도로 진행되었다.

따라서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를 읽으면서 난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설정 자체가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극장판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더라면 덜 당황스러웠을까.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는 1960년대 말의 일본을 무대로 하고 있다. 따라서 그 시대 상황에 대해서도 조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0년대가 학생운동의 부흥기였다면, 일본은 1960년대가 바로 그러한 시대였다. 전학련 투쟁을 비롯해 일본 도처에서 일어난 학생운동은 일본 전역을 휩쓸었다. 신좌파운동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전학련 투쟁은 캠퍼스의 민주화뿐만 아니라 반전 시위까지 벌이는 폭녋은 학생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그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왜 오시이 마모루가 그 시대를 배경으로 이 소설을 쓰고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것까지는 이유를 확실히 알기 어렵다. 당시 학생 운동은 처음엔 조용하게 시작되었지만 결국 유혈사태까지 빚으면서 확대되었고, 그후 급속히 사그라들었다. 그만큼 어지러운 시기를 택했던 것은 만약평화로운 시기에 흡혈귀들의 존재가 나타난다면, 분명히 모든 사람이 그 존재에 대해 알게 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얕은 짐작도 해본다.

본문의 설정상 흡혈 생물인 그들은 인간에 비해 그 수가 극도로 적으며, 번식의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인간을 먹이로 삼았을 뿐,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전 지구를 대상으로 본다면 아주 작은 나라이다. 분명히 흡혈 생물들의 존재는 일본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진데, 왜 하필이면 그때가 되어서야 그 존재를 드러내었을까. 만약 사야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흡혈 생물들은 그 존재를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지는 않았을까. 인간을 먹이로 삼을 뿐, 그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존재들 - 즉 그들은 인간을 죽일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 을 처리하기 위해 인간들이 사야를 만들어 낸 것은 단 하나의 흡혈 생물도 용납할 수 없다는 즉, 인간의 천적은 하나라도 허용할 수 없다는 인간의 생각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제목은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이지만, 사실 뱀파이어(혹은 흡혈귀)가 등장하는 장면이나 사야가 그들을 처리하는 장면은 거의 찾아 보기 힘들다. 오히려 당시의 학생 운동의 상황과 시대적 혼란을 담아낸 부분이 크다. 따라서 엔터테인먼트 소설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자칫 지겨울 수도 있다.
특히 사야의 존재와 더불어 인간과 인간을 주식으로 삼는 흡혈 생물의 존재에 대한 부분에서는 인류학, 철학, 생물학 등등 꽤나 복잡하고 어려운 용어나 이론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인간과 더불어 진화를 해 온 생명체, 그들이 갑자기 그 존재를 드러냈던 이유와 사야의 존재 이유. 여기에서는 사야가 흡혈 생물과 인간의 혼혈로 등장한다. 인간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 사야.

비록 이 책이 가상의 생명체인 흡혈 생물과 그에 맞서는 사야라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비단 그런 것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인류는 자신과 다른 종류의 생명체들을 짓밟으며 진화해 왔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얼마나 오만하고 교만한 존재인가, 인류란. 지금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 수많이 생명들이 사라지고 멸종한다. 이 책은 인간 위주의 사고 방식의 오만함을 경고라도 하는 듯 하다. 만약 본문 처럼 미지의 존재가 인류와 함께 진화해 왔고,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을 뿐 이라는 가정은 소름이 끼친다. 그때는 인류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는 뱀파이어 이야기를 다룬 엔터테인먼트 소설이 아니다. 이것은 바로 인간의 정체성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그리고 동시에 인류가 저질러왔던 과오에 대해서 심도있게 그려낸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흥미위주의 뱀파이어 이야기를 생각하고 이 책을 집어 드는 과오는 범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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