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바이올린
조셉 젤리네크 지음, 고인경 옮김 / 세계사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난 클래식음악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집에 있던 클래식 테이프들을 들었고, 고교시절에는 가끔 학교로 날아오는 티켓을 구입해서 몇 번 음악회에 가본 것이 전부일 정도이고, 그후로는 다른 음악들에 푹 빠져 클래식이란 것은 제대로 듣지 않았으니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기억나는 것은 몇몇 유명한 음악가의 몇몇 유명한 곡들 뿐이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을 선택할때 고민을 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클래식 팩션이라는 장르를 표방하는 이 책을 보면서, 내가 이 책의 내용을 얼마만큼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먼저 앞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세상을 탐사하는 기분에 설레었던 것도 사실이다.

책의 제목인 악마의 바이올린.
난 악마와 바이올린이란 단어를 보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타르티니의 악마의 트릴이라는 곡인데, 이 곡은 타르티니가 꿈속에서 악마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을 듣고 잠에서 깬 후, 그 곡을 직접 연주해보고 악보로 옮겼다고 하는 것으로 바이올리니스트 사이에서도 연주하기 까다로운 곡으로 정평이 나있다. 내가 왜 이 곡을 먼저 떠올리게 되었냐면, 사실 이 악마의 트릴은 다른 소설이나 애니메이션쪽에서 접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책에서도 악마의 트릴이 두어번 언급되긴 하지만, 실제로 이 소설의 소재가 된 것은 파가니니의 스트라디바리우스이다.
스트라디바리우스라고 하면 가장 이상적인 바이올린으로 알려져 있다. 전세계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소장하기를 꿈꾸는 바이올린이며, 그 진품의 수량은 극히 적어 천문학적인 금액을 기록하고 있는 바이올린이기도 하다.
 
파가니니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그의 기행과 뛰어난 연주 실력은 속인들에게 악마와 거래한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이미지를 주었고, 실제로 그가 죽은후 5년이 지나서야 교회에 매장되었다고 한다.

이 소설은 바로 파가니니가 소장하고 있던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관련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가 소장했던 바이올린은 그 소유자 혹은 그 바이올린을 직접 만졌던 사람들에게 차례차례 죽음이나 사고를 불러 왔다. 물론 이것이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작가의 상상력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소설은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 오디토리움의 심포니 홀에서 연주하던  아네 라라사발이라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가 살해당하는 사건으로 시작한다. 그녀의 몸에 그려진 문자는 아랍어로 "악마"를 뜻하는 문자였다. 왜 그녀는 살해당했고, 그녀가 소유하고 있던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어디로 사라졌는가에 대한 수수께끼를 푸는 것이 이 소설의 주 내용이다.

비단 클래식 음악에 대한 내용뿐만 아니라 비틀즈의 음악과 같은 팝 음악, 향수와 조향사 이야기등이 소재로 사용되어 신선한 즐거움을 준다. 특히 향수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조향사가 파트 부분이 굉장히 즐거웠다.  또한 클래식 음악과 관련한 이야기라든지, 바이올린 장인인 루티에르 이야기는 내게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즐거움을 주었다.

하지만, 추리 소설로서는 조금 아쉬운 점이 많다. 특히 오라토리움에서 갑자기 등장한 개는 도대체 어찌된 것이며, 아네 라라사발의 스트라디바리우스에 악마의 얼굴을 조각해준 루티에르 루폿의 죽음도 석연치 않다. 아네 라라사발이 연주 중 바이올린을 떨어뜨린 사건은 분명한 이유가 밝혀졌지만, 개와 루폿의 죽음은 정말 바이올린에 씌인 악마가 벌인 일일까.

소설에 등장하는 아네 라라사발이 소유한 스타라디바리우스는 책의 설명을 따르자면 지네트 느뵈가 소유했던 스타라디바리우스로 지네트 느뵈는 실존 인물로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것이 책의 주인공인 아네에게로 건너 왔다는 설정인데, 책을 읽다가 보면 어디까지가 사실에 근거한 것이고, 어디부터가 픽션의 영역인지 모호하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이 책이 주는 매력이라 생각한다.

다만, 범인의 정체와 범인을 추적할 마지막 단서인 악보에 담긴 의미가 너무나도 어이없이 드러난 게 실망스러웠다고나 할까. 후반부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지만, 결말에 다다라서 그 끈이 툭 끊어져버려 맥이 빠져버렸다.

그래도 이 책에 높은 별점을 줄 수 있는 것은 작가의 클래식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스토리텔링, 실제 있었던 사건과 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적절히 조화시켜 부드럽게 이야기를 진행시킨 것때문이리라. 실제로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에 나온 음악들을 직접 듣고 싶은 충동이 생길만큼 클래식 음악에 대한 저자의 지식은 해박하다. 실제 작가 조셉 젤리네크도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라고 하니, 왠지 질투가 날만큼 부럽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조셉 젤리네크의 첫번째 소설인 베토벤의 교향곡을 소재론 한『10번 교향곡』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악마의 바이올린』은추리 소설로는 아쉬운 점이 많지만, 클래식이란 것을 소재로하여 풍부한 이야기를 끌어내고 있다는 점에서는 무척이나 흥미진진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의 책을 다시 손에 잡을 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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