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의 사각 - 201호실의 여자 오리하라 이치 도착 시리즈 2
오리하라 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처음에는 제목을 보고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역시나 우리말도 동음이의어가 많기 때문이리라. 그러다가 원서 제목을 보고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 것을 알게 되었다.
도착은 到着(목적지에 다다름)이 아니라 倒錯(본능 감정 및 덕성의 이상으로 사회도덕에 어그러진 행동을 보이는 일)이란 의미였고, 사각은 四角(네모)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死角(눈길이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일이나 범위)를 뜻했다.

오리하라 이치의 도착(到錯) 시리즈 두 번째 소설인 도착의 사각은 내가 처음으로 접한 오리하라 이치의 소설이다. 이게 시리즈물인줄 모르고, 일단 제목과 책 표지에 이끌려 구입했는데, 첫번째 시리즈물인 도착의 론도를 먼저 읽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내 손에 들어온 것이 이 책이므로 천천히 책을 살펴 보기 시작했다.

책 뒷표지의 큰 글씨가 먼저 들어왔다.
"그냥 속았습니다. 아주 유쾌하게...."
이 글씨를 보고 나서 든 처음 생각은 '이 책은 분명히 허를 찌르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였고, 두번째로 든 생각은 '난 절대 속지 않을 거야. 꼭 그 비밀을 내가 먼저 알아 내고야 말겠어.' 란 것이었다.
결과는?
작가가 설정한 상황 중 두 어가지는 짐작대로 였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무참한 나의 패배였다.
그러나 분하지는 않았다.
작가의 트릭은 적당한 눈속임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었으므로.

이 소설의 등장 인물은 여럿이지만, 중심 인물은 세명으로 압축된다.
알콜의존증 환자이자 번역가미며 관찰하는 남자 오사와 요시오, 관찰 당하는 여자 시미즈 마유미, 요시오와 마유미를 관찰하는 남자 소네 신키치.

요시오와 마유미의 경우 일기라는 형식을 도입해 화자는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한다. 신키치를 포함한 나머지 인물들은 3인칭 서술, 즉 작가 시점에서 서술된다. 따라서 이 소설은 액자형 소설이라고도 볼 수가 있다. 그것은 마지막 장을 읽으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여기서는 이정도로)

반년전 요시오는 자기의 맞은편 맨션에 사는 한 여자가 죽은 것을 본 후 알콜의존증에 시달리다가 결국 병원 신세를 진다. 퇴원후, 그는 다시 번역일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하지만, 또다시 그 곳에 새로운 여자가 입주한다. 그의 병적인 엿보기 취미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후 요시오의 삶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치닫는다.

요시오가 살고 있는 집 맞은편 맨션에 새로 들어온 여자 마유미, 그녀는 어느 날부터 꺼림칙한 시선을 느낀다. 눈을 들어 보니 맞은편 집에 사는 남자다. 그녀는 그를 애써 무시하고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려 하지만, 어느 날부터 꺼림칙한 일들이 자꾸만 생겨난다.

신키치는 요시오와 함께 병원 생활을 같이 했다. 천성적으로 술을 좋아하고 절도를 일삼던 그는 요시오가 마유미를 엿보는 것을 알게 된 후 그에게 적당한 복수를 하기 위해 마유미와 요시오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언뜻 봐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등장 인물들이다. 서로에 대한 관심과 반감이 교차되고 부딪히면서 주변의 상황이 꼬여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점점 어둠이 세사람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읽으면서 한 자도 빼놓지 않으려 정독했다. 책 속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작가의 트릭에 절대 속아 넘어가지 않겠다는 의지로 혼자서 추리를 하고, 상황를 판단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를 감싸는 위화감. 그러나 그게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석연치 않은 느낌이 계속 들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가 잘못된 거지?

그러다가 난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과 맞딱드렸다.
그리고 적잖이 당황했다. 
책 후반부 8장이 봉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추리 소설을 뒷쪽부터 읽는 사람은 없다. 물론 나는 결론이 궁금하고 트릭이 궁금해도 참으면서 찬찬히 읽어 가는 편이라, 막상 봉인된 부분을 만났을때 움찔했다.
도대체 얼마나 큰 비밀이 숨겨져 있기에 일부러 봉인을 했을까.
칼을 들어 천천히 한장씩 개봉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비밀이자, 이 책에 사용된 트릭의 결정적 비밀을 알게 되고, 난 아연실색했다. 물론 내가 추리한 것 중에 일치하는 것도 두어가지 있었지만, 그건 별게 아니었다. 이 봉인된 부분이야 말로 작가가 400페이지 정도의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배치해두었던 복선과 모든 수수께끼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이 이 부분을 위한 것이었던가. 난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동시에 머릿속에 번쩍하고 불이 켜지는 느낌이었다.

마지막까지 결코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책.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머리를 굴려도 작가가 궁극적으로 지켜내려 했던 트릭에는 접근 불가!
항간에 이런 말이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이 책에서는 트릭을 풀지 못하겠으면 그냥 작가의 트릭에 속아라!
정도로 바꾸면 좋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시야는 생각외로 꽤 좁다. 그래서 사각지대가 많이 발생한다.
당신은 작가가 치밀하게 계산해 놓은 트릭의 사각 지대를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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