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윤수 옮김 / 들녘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은 당신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모두 진실이라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중에서 몇 퍼센트가 진실이라 생각하는가.

난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내가 보는 모든 것이 과연 진실일까, 난 편견과 선입관에 사로 잡혀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오싹해졌다.

이 작품은 일단 화자가 어린 소년으로 등장하지만, 첫 페이지에 나와 있듯이 그 당시 소년이었던 미치오가 어른이 되어 회상하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따라서, 그것을 생각해 보면, 소년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사건이 아니라 어른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이야기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왜 이이야기를 먼저 하냐면, 이 소설은 읽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기묘한 위화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때 고작 세 살이었던 미카(미치오의 여동생)의 발언이 너무나도 어른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어른이 된 미치오가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이런 위화감은 금방 사그라 들 것이다. 하지만, 책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그런 위화감은 싸그리 사라진다.

여름 방학을 앞둔 종업식날, S의 집에 들렀다가 S가 목을 매고 죽은 사실을 발견한 미치오. 미치오는 학교로 달려가 선생님께 이 사실을 알리지만, 선생님과 경찰이 도착했을때 이미 S군의 사체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그후, 일주일이 지나 S는 거미로 환생해 미치오의 앞에 나타난다.
과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갑자기 S의 환생체가 등장하면서 난 당연히 혼란에 빠졌다.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판타지가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적잖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일단 도입부이다 보니, 그냥 궁금증을 꾹 참고 읽기로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답은 후반부에 나오니 안달할 필요는 없다.

S의 등장은 묘한 전환점을 가져다 주었다. S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자살이 아니며, 살해당한 것이고 범인은 I라고 한다. (일부러 이니셜로 작성했습니다) 자신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밝혀달라고 하는 S의 부탁에 미치오는 여동생 미카와 함께 진실을 추적해 나간다. 

아직은 범인에 대한 정황 증거밖에 없는 상태, 미치오는 I를 미행하고 그의 집을 뒤지는 등 여러모로 진상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의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던 중, 사건과 관련된 사람인 다이조와의 만남은 점점 더 I가 범인이라는 확신을 준다.

S의 죽음과 아홉구의 동물 사체에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정황는 점점 범인을 I로 몰아가지만, 뭔가 찜찜하다.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수수께끼가 풀리기는 커녕, 점점 복잡해져 간다. 도대체 진범은 누구인가. 

추리소설이나 미스터리 소설을 읽을 때, 누구나 하는 것이 있다. 그건 사건의 진상과 범인에 대해 추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나 역시 미치오의 뒤에서 미치오가 보는 것을, 듣는 것을 느끼는 것을 고스란히 받아 들이며, 범인을 추적해 나갔다. 하지만, 어딘가 계속 위화감이 생긴다. 틀림 없이 무언가를 놓친 게 있지만, 그것을 찾아내기가 힘들다. 도대체 어디서 부터 길을 잘못 든 것일까.

마치 미노타우로스가 살고 있는 라비린토스(미궁)에 빠진 듯한 느낌이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단서를 제공하고, 작가는 적절한 복선들을 배치해 두었다. 그러나 그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앞의 암흑은 더욱더 깊어졌다. 도대체 이 위화감은 무엇이지. 하지만 결국 스스로 알아내지는 못했다.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속에 있잖아요"라는 미치오의 이야기.
그것 하나로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미카의 존재도, 도코 할머니의 존재도, 스미다의 존재도. 
미치오의 세계를 엿본 순간 난 모든 것에 경악했다.
그리고 이젠 뭘 믿어야 할지 모르는 공황상태에 빠져버렸다.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내 팔에 소름이 돋아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왠만한 책으로는 충격을 잘 받지 않았던 나였지만, 이 책은 날 진정한 두려움으로 몰아넣었다.
결국 진실이란 믿는 자에 따라서 그 모양을 바꾸어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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