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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2008년 5월 한강에서 한 남자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보다 앞선 2008년 2월 한 아이가 실종되었다.
죽은 자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살아 남은 자는 아무런 기억이 없었다.
남겨진 자들은 진실에서 눈을 돌렸다.
얼핏 보기엔 무관할 것 같은 두 개의 사건.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은 아주 나중에야 알려진다.
정이현 작가의 <너는 모른다>의 책 표지를 보면 참 예쁘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지만, 한편으로는 섬뜩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 온다. 따뜻한 붉은 색조가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여 주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푸른빛이 도는 스타킹과 회색 벽은 차가움을 느끼게 한다. 그것도 섬뜩할 정도의 차가움을..
책 띠지와 책 표지, 그리고 작가 소개와 작가의 말을 주욱 읽고, 목차를 훑었다. 이건 내가 늘 책을 읽을 때 나오는 습관중의 하나이다. 그러면서 먼저 책의 내용에 대한 상상을 해 본다. 그리고 난 책을 펼쳤다.
이 책은 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총 다섯명의.
그러나 이 가족은 겉으로 보기에 부유하고 행복한 것 처럼 보여도 무엇인가 크게 어긋나 있다.
전처와 이혼 후 대만 여성과 결혼해 다시 딸 하나를 둔 부부. 그리고 이복 형제.
물론 이런 집이 다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평범한 가정에서도 언제든지 문제는 있을수 있고, 솔직히 말해 문제없는 집은 없으니까.
그러나, 이런 평범함과 행복함으로 가장된 집이 무너진 건 한 순간이었다.
그것은 바로 딸 유지의 실종으로 인해 장마 때 둑이 터지듯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다.
중국과 무역업을 하는 아버지, 김 상호.
대만 출신 화교인 어머니, 진 옥영.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그에 대한 애정 결핍을 가진 큰 딸 은성.
겉으론 조용하고 무덤덤하며, 세상에 초월한 듯한 눈빛을 가진 아들 혜성.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막내딸 유지.
겉으로 보기엔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를 받은 아이들 외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던 것 같았다.
유지가 실종되기 전까지는.
유지의 실종과 더불어 비밀에 싸여있던 가족사가 파헤쳐진다.
아버지가 실제로 하는 일, 엄마와 대만 남자 밍의 관계, 은성의 자기 파괴적 연애와 사랑, 혜성의 방화 충동, 그리고 늘 얌전하기만 했던 유지가 자신의 엄마가 중국계란 것에 대해 받은 상처와 음악에 대해 갖고 있었던 고민들.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고, 인물 하나 하나를 중심 인물로 교차 부각시킴으로서 그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려준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지레 복잡한 흐름을 가질 거야라고 편견을 갖기 쉽지만, 오히려 각 인물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소설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는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되며, 화자는 아무런 감정없이 등장 인물들의 행동과 감정을 우리에게 전달해 준다. 그렇다 보니, 등장 인물 하나하나의 캐릭터가 분명한 편이고, 또한 굉장히 자세하다. 즉 이 소설엔 주인공들만 존재하지, 조연 캐릭터는 하나도 없을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작가가 섬세하게 설정한 복선들, 그것이 점차 아귀를 맞춰가면서 우리는 큰 당혹감을 느낀다. 그러면서 평범한 게 사실은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깨달아 간다.
가족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적어도 가족 사이에는 비밀따위는 존재하지 않은다고 당신은 자만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가족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다고 당신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난 책을 읽으면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그저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알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던 게 아닌가 하고.
왠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눈을 돌렸던 게 아닌가 하고.
이 소설은 한 가족이 가진 끔찍하고 두려운 비밀을 파헤치는 동시에,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문제도 함께 다루고 있다.
장기 밀매 브로커 조직, 소아성애자, 차량 방화, 사체 유기, 불륜, 가족의 해체, 그리고 자신의 일이 아니면 눈을 돌려 버리는 무책임한 사람들의 모습까지. 또한 실제로 있었던 아동 유괴 살해 사건이나 무차별적 살해 사건들도 간간히 언급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내가 너무 부풀려 생각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가정이란 것은 사회의 가장 기초가 되는 단위이기 때문에 이것이 망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외형과는 다르게 여러 가지 사회 문제까지 심도 있게 다루는 작가의 필력이 놀랍다고 느꼈다.
읽는 내내 착잡한 기분이었다.
물론 내 가족이 이런 비밀을 갖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족이라고 해서 24시간 365일 행동을 같이 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도 어느 정도 성장하면 부모에게서 독립을 하고,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 보다는 친구, 연인, 사회의 동료들과 더 많은 시간을 공유하게 된다. 따라서 자연히 모르게 되는 게 더 많아진다.
내가 모르는 부모님의 이야기는 어떤 것이 있을까.
또한 부모님께서 모르는 나의 이야기는 어떤 것이 있을까.
우리는 가족이기에 만만하게 생각하고, 가족이기에 그냥 믿어 버리고,가족이기에 모르는 척 하면서 살아가는 동안 소중한 것을 잃어 버리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는 건 아닌지.
현대적 가족의 새로운 해석과 그 속에 담긴 비밀을 이야기 한 <너는 모른다>.
이 소설은 한동안 내 가슴속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