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 없는 세상 - 제6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고 고개가 갸웃거렸다.
동정 없는 세상이라..
우리말도 동음이의어가 많기 때문에, 이 동정이 同精인지 童貞인지 한참을 생각해 봤다. 그러다가 책 표지에 그려진 그림을 본 순간 후자란 걸 알고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책 표지를 넘기고 본문을 펼친 순간 난 또다시 웃음이 터졌다.
ㅡ 한번 하자.
ㅡ 싫어.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위의 동정 없는 세상이 무슨 뜻인지 대충 알아채셨으리라.

이 소설의 전체적인 느낌은 가볍고 발랄하면서 발칙하다.
동정을 떼고 싶은 고교 졸업반 준호를 중심으로 그의 여자 친구 서영을 비롯해, 준호의 친구 경식, 영석과 준호의 엄마인 숙경씨, 외삼촌 명호씨가 중심 인물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 캐릭터들의 포스 또한 만만치 않다.

준호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을 포기했다. 잘 생긴 얼굴이지만, 공부는 별로 잘 하지 못하는 데다가, 그 또래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얼른 동정을 떼고 어른의 영역으로 발을 들여 놓고 싶어하는 인물이 바로 준호이다.

서영은 이 책의 표현상으로는 그 집 아이, 요즘말로는 엄친아에 속하는 부류로 수시 입학 합격을 할 정도로 수재이다. 영석은 집안이 모두 서울대 출신이라 그에 대한 부담감을 안고 있다. 경식은 얼굴도 못났고, 공부도 못하는 그저그런 평범한 아이이지만, 가출을 비롯해 여러가지 아르바이트 경험도 있고, 또 유일하게 동정을 뗀 친구이기도 하다.

준호의 엄마 숙경씨는 미용실을 운영하는데, 굉장히 밝고 긍정적인 캐릭터이며, 명호씨는 준호의 외삼촌으로 서울대 법대를 나왔으나 아직도 장가도 안가고 취직도 안한 상태로 준호의 집에 얹혀 살고 있다.

이런 다양한 인물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하자로 일관하는 준호의 말을 보면 영화 몽정기가 떠오를지도 모르겠으나, 사실 동정 없는 세상은 그정도로 가볍지는 않다. 물론 이야기 자체가 고교생들의 성에 관한 문제를 주로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엔 조금 다른 의미가 들어가 있다고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동정을 뗀다. 여기에선 비유적 의미로 쓰이지만, 그것은 바로 아이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이다. 열 아홉과 스물의 간극은 사실 엄청나게 크다. 고교 졸업 전까지는 언제나 부모의 품안에서 보호받으며 살다가 고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자유를 보장받는 대신 어른의 책임을 지게 될 나이가 되기 때문이다.

수능이 끝난 후,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고민하는 친구도 있고, 대학을 포기하고 자신의 적성을 찾아 혹은 적성에 맞지 않더라도 밥벌이를 하기 위해 직업 훈련을 하는 친구들도 있다. 다를 나름대로의 방향성이 갖춰져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혼란스러운 나이가 바로 이때이다. 그리고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자만하고 우쭐해지기 시작하는 나이도 바로 이때 즈음이기도 하다. 

가벼운 어조에 실어 묵직한 내용을 전달하고 있는 동정 없는 세상. 
청소년들의 성에 대한 의식과 아이와 어른 사이에서 당황하는 아이들의 모습들을 잘 묘사해 즐겁게 읽었던 반면, 아쉬웠던 것은 엄마 숙경씨와 삼촌 명호씨의 너무 무른 태도라고나 할까.

세상은 가혹하다란 사실을 부러 느끼게 해 줄 필요는 없지만, 아직 어린애나 다름없는 준호에게 모든 판단을 맡기는 건 여전히 준호의 어리광을 받아주는 것으로만 보인다. 하지만, 그런 엄마, 삼촌이 있기에 준호는 바르고 명랑하고 긍정적으로 자라난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가벼워 보여도 가볍지 않고, 즐겁게 읽으면서도 한가지 화두를 던져주는 동정없는 세상은 이제껏 읽었던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 중 가장 편안한 느낌으로 읽었던 책이기도 하다. 또한 지난 고교 시절, 수능이 끝난 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 책이기도 했다. 물론 난 준호와는 다른 성별이라 노는 방법은 좀 달랐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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