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던보이 -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 제5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이지민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평점 :
모던 보이는 영화의 원작이 되어 유명해진 소설이다. 사실 난 이 영화 개봉소식을 들었을때도 설마 원작이 소설인줄은 꿈에도 몰랐다. 영화는 벌써 한참전에 개봉했고, 보지도 않아서 영화에 대해 말하라면 난 입 꾹 다물고 있을 수 밖에...
어쨌거나, 영화를 미리 보지 않았다는 건, 원작 소설을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또 영화가 얼마나 원작에 충실했는지 그 여부도 모르기 때문에, 영화와 원작을 따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는 이점도 있다. 왠지 영화를 안본 것에 대한 변명같은 말들이긴 하지만.
1930년대 말, 경성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가.
1930년대 말이라고 하면 일제 식민 통치가 더욱더 조선을 압박해오던 시기이다. 그래서 그런지 독립군 혹은 친일파 두 갈래의 길을 걷는 사람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역시나 그 시대의 가장 두드러진 성향이 그런 것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모던 보이(원제는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는 그러한 우리의 통념을 싸그리 뒤엎어 놓는 소설이다.
주인공인 이 해명, 조 난실을 비롯해 주요 등장 인물인 신스케와 유키코는 크게 나누자면 조선인과 일본인, 그리고 남자와 여자이다. (너무 단순한 분류란건 인정한다)
이 해명은 조선총독부에 근무하고 있지만, 스스로는 친일도 아니고 독립을 위해 싸우는 혁명전사도 아니란 걸 알고 있다. 다만 근대의 낭만적 사나이쯤으로 자신을 미화하고 있는 인물이랄까.
조 난실은 수수께끼의 여자이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건 홍길동 저리 가라이고, 그녀의 이미지란건 괴도 이십면상처럼 이리저리 바뀌는 변신의 귀재이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혁명적 여전사로 보이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양장점에서 근무하고, 밤이 되면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여러 명의 애인을 거느렸던 그런 여자이다.
신스케는 일본인으로 이 해명의 친구이며, 일본에 아내를 두고 있지만, 시마국장의 아내 유키코와 불륜 관계이다.
등장인물을 살펴본 것만으로 이거 좀 이상한데...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난색을 표할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조금 돌려서 생각해보면, 아무리 식민통치하의 시대적 배경을 가진다 해도, 모든 사람이 독립군이나 친일파라는 테두리에 묶여 분류될 수는 없다는 것을 떠올려 본다면, 작가가 이런 인물들을 창조해 낸 것도 무리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힘들고 험악했던 시기지만 나름대로 유행도 있고, 낭만도 있었던 시기의 남녀 관계와 사랑, 증오, 질투, 배신등이 이 소설의 맛깔나게 배치되어 있다.
1930년대라는 근대를 시기적 배경으로 삼고 있기에, 인력거꾼이나 무슨무슨 구락부, 요진보같은 그 시대에만 쓰이던 용어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카페 스타벅스같은 현대물에나 나올법한 용어가 튀어나오는 걸 보면, 이건 완전한 픽션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읽다보면, 이 책의 주된 내용은 그 시대의 암울함이나 어두운 현실을 차치하고, 사랑에 눈 먼 한 청년의 몸살로도 보인다. 조난실이란 여자를 사랑하지만, 그녀의 비밀은 알면 알 수록 더 깊어지고, 게다가 절교 선언까지!
하지만 좀 아쉬웠던 부분은 조난실이란 인물의 정체이다. 실제로 그녀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끝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그녀가 진짜 조선의 독립을 위해 움직이던 여자였는지, 아니면 테러 박의 존재가 거짓이었던 것처럼 그녀의 행동도 모두 거짓이었는지는 여전히 판단이 안된다. 그리고 그녀가 그런 거짓말을 일삼았던 이유도 모두 설명되지 않아 궁금증이 커졌다.
이 해명이란 인물은 너무 빤해서 속이 투명한 물고기같았다. 그의 생각, 행동, 사랑, 질투, 증오 등등은 일제시대에도 등 따시고 배 부르게 살았던 반 도련님같은 이미지였고, 결국, 마지막 장에서 조선총독부로 향하지 않고, 반대편으로 가는 전차를 타고 도망가는 모습은 서글펐다. 결국 그는 사랑을 선택하지도, 그녀가 바라는 대로 해주지도 못한채, 스스로의 낭만에 겨워 혼자 몸살을 앓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유쾌하고 코믹한 부분을 잘 살려가면서 낭만적 모던 보이의 어설프로 서글픈 사랑을 그려낸 경성활극 <모던 보이>. 비록 역사적 사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로 일관되었으나,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했던, 혹은 알 수 없었던 그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이야기일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