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의 구제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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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모든 것은 준비되어 있었다.
다만, 체스판에서처럼 다음 말을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그것은 또다른 구제가 될 수도 단죄가 될 수도 있었다.
남자는 마지막 수를 잘못 두었다.
타임 리미트.
체크 메이트.
왕은 쓰러졌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뭔가 추상적인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내가 성녀의 구제 마지막 장을 읽었을 때 든 생각은 이러한 것이었다.
이 책의 제목에서도 언급된 구제.
구제의 뜻은 어려운 사람을 도와준다거나 고통받는 사람을 제도(濟渡)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진정한 구제의 의미를 알았을 때는 소름이 끼칠 수 밖에 없었다.

자택에서 마시마 요시다카라는 남자가 독살된다.
사건의 용의자는 이혼을 통고받은 아내 아야네.
그러나 사건 당시 그녀는 홋카이도에 가 있었다.
도저히 사건 시간에 맞춰 도쿄 - 홋카이도를 오갈 수 없는 상태였다.
그것은 철벽같은 알리바이.

도대체 홋카이도에 가 있던 여자가 어떻게 남편을 독살할 수 있었을까.
갈릴레오 시리즈에 등장하는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는 그것을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허수해(虛數解)라 불렀다.

성녀의 구제는 앞장에서 이미 범인도 그 동기도 언급되어 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을 위한 추리소설일까.
추리 소설에서 중요시되는 세가지 요소는 범인, 동기, 그리고 트릭.
이 소설은 바로 범인이 사용한 트릭에 대한 소설이다.

사실 독살이란 것은 굉장히 어려운 살인 방식중의 하나이다.
피해자가 안심하고 독극물을 섭취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제 1 포인트기 때문이다.
만약 피해자가 범인을 의심하는 상태라면 독살은 절대로 이루어 질수가 없다.
그리고, 독살은 대부분 피해자와 가해자가 함께 있을때 발생한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독살해나가는 방법이 아니라면, 피해자와 범인이 한 장소에 있어야지만 독살은 실행된다.
그런데, 범인이 없는 곳에서 일어난 독살이라.
이 책을 읽으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난 그 방법에 대해서 아무런 추리도 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유가와의 뒤를 졸졸 쫓으며, 그가 하는 말, 그가 한 실험에 집중했다. 천재 물리학자라 불리는 유가와 마저도 쩔쩔 매게 만든 범인의 트릭은 경악 그 자체였다.

딱 한가지 내 짐작대로 답이 나온게 있다면, 범인이 사용한 마지막 트릭정도였을까. 그러나, 이건 누구나 맞출수 있을 것 같다. 범인이 쓴 마지막 트릭은, 자신이 사용한 트릭의 증거 인멸이었으니까. 남편이 독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굳이 해야만 했던 일을 떠올리면, 그 마지막 트릭은 쉽게 추측이 될 것이다.  

언뜻 보면 치정 살인 정도로 보일 수도 있으나, 사실은 이 사건은 꽤 오래전의 과거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얽히고 설킨 관계, 사랑과 배신. 그리고 단죄.
어찌보면 진부한 소재일 수도 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트릭 하나 만으로 그 판도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보면, 왠지 안타까움을 주는 주인공들이 많았다. 하지만, 성녀의 구제에 나오는 주인공만큼 무섭고 철저한 범인은 처음이다. 그녀가 그동안 해왔던 일들. 그것은 굉장한 인내심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었다. 언제든 기폭 장치만 눌러지면 바로 터져버리는 폭탄이었지만, 그것을 그 오랜시간 동안 잠재워 둔 것은 바로 범인의 냉혹함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성녀의 구제에 나오는 범인에 대한 동정은 전혀 없다. 그녀도 그것을 바라지 않을 테니까.

성녀의 구제에서는 범인도 매력적이지만, 난 여형사 우쓰미 가오루에게 반했다. 침착하고 냉정하게 그리고 모든 가능성을 두고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는 모습은 정말 최고였다. 사실 구사나기가 야마네에게 홀린 듯 한 것이 걱정이었는데, 역시 유가와의 말대로 구사나기는 뼛속까지 형사다. 덕분에 나도 범인의 마지막 트릭을 일찍 알 수 있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구제와의 의미와는 너무나도 달랐던 성녀의 구제. 범인과 동기보다는 그 트릭에 중심을 두고 풀어나가는 전개 방식은 최고였다. 

당신은 그녀의 구제의 진실한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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