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끽연자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8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이규원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이 단편집은 츠츠이 야스타카가 직접 선택한 자신의 단편 모음집이다.
총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그 단편들은 장르도 다양하며, 츠츠이 야스타카 특유의 블랙 유머와 그 감각들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이 책에는 SF를 기반으로 씌어진 작품도 있고, 자신을 모델로 삼아 쓴 작품도 있고,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작품도 있는 등 츠츠이 야스타카의 여러가지 작품 성향을 만끽할 수도 있는 단편집이다. 그러면서도 유머와 풍자를 빼놓지 않는다.

<급류>의 경우는 인간의 문명의 발달 과정에 따른 시간의 흐름을 묘사한 단편인데, 인류 발생 이후 느릿하게 발달해 온 인류 문명이 어느 시점을 기점으로 하여 눈부시게 성장해 왔기때문에 시간도 그에 맞춰 빠르게 가속화되지만, 인류 문명 발달은 어느 시점에서 다시 느리게 흘러가는 반면, 시간은 여전히 가속화되어 인간들이 그 시간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 이 단편의 줄거리이다.

인간은 앞만 보고 과학 기술 문명의 발달에만 집착한 나머지,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을 잊어 버렸다. 하루가 멀다하고 세워지는 고층 빌딩, 그리고 이제는 우주까지 발을 넓혀가고 있는 인간들에 맞춰진 자연의 시간은 더이상 인간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마지막 시간이 폭포처럼 떨어진다는 마지막 문장에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지만, 결국 쓴웃음이 지어졌다. 인간은 지금도 이 세상의 시계를 미친듯이 돌려대고 있지만, 의식하고 있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최후의 끽연자>는 금연합시다라는 취지에서 씌어진 글이 아니다. 이 단편은 헤비 스모커이기도 한 작가 자신을 모델로 하고 있다. 금연 파시즘으로 인해 흡연자들은 설 자리가 점점 사라지지만 이 단편의 주인공은 꿋꿋이 흡연을 하고 있다. 그러나 흡연자들에 대한 비정상적인 탄압으로 결국 마지막 끽연자가 된 주인공에게 남겨진 선택은!?

이 소설은 다수의 횡포에 억압당하는 소수를 그리고 있다. 물론 흡연이 권장할 것은 아니고, 나도 흡연자를 싫어 한다. 하지만, 그들이 어느 정도 선을 지켜주고 예의를 지켜준다면, 남들이 담배를 피든 말든, 페암으로 일찍 죽든 말든 상관은 없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든 안 피우는 사람이든 어느 쪽이 다수가 되건 간에, 단지 다수란 이유로 소수를 폭력으로 억누르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이 단편을 보고 금연을 결심해야 겠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이 소설이 말하는 바와는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 

<노경의 타잔>은 읽으면서 진짜 많이 웃었다. 나이 든 타잔이 이 단편의 주인공인데, 이젠 늙어서 변변치 못한 생활을 하는 타잔이 착한 타잔에서 나쁜 타잔으로 변신, 인생의 활력을 되찾는다는 소리다. 정글의 영웅처럼 지냈던 타잔의 변모한 모습이라..... 사람이 늙으면 심술맞아지는 사람도 있는데, 노경의 타잔은 그런 타입이 아니었을런지...

<혹천재>는 등에 벌레를 부착하고 아이큐를 두 배이상 높이는 사람들 이야기이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똑똑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방법이라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양산된 천재가 넘쳐나다 보니 천재도 더이상 천재가 아니다.

게다가 자신의 자식의 바람 따윈 무시하고 자식을 엘리트로 만들고 하는 부모의 모습. 현대 사회의 문제를 비스듬하게 찔러 대고 있는 작품이다.   

<야마자키>와 <망엔 원년의 럭비>는 시대물이다. <야마자키>같은 경우 전국시대 무장인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오다 노부나가의 죽음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어떤 처세술을 썼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음엔 역사물처럼 시작하다가 갑자기 전화가 등장하고 신칸센이 등장하는등 갑자기 기묘한 이야기의 사무라이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아마도 그때 등장한 것은 휴대 전화였던 것 같은데... 하여간,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현대 사회의 문명의 이기가 기묘하게 조합되어 있었다.

<망엔 원년의 럭비>는 사무라이 픽션이 생각났다. <야마자키>같은 경우는 확실히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작품인 것은 알겠는데, 이건 좀 애매하다. 하여간, 닌자들도 등장하고, 생뚱맞게 럭비도 등장한다. 알고 보니, 1940년대 파리 상공에서 휑하니 사라진 비행기가 이 시대의 일본에 왔다나 뭐라나. 그리고 그 비행기에는 럭비 선수들이 타고 있었다고 한다.

<상실의 날>같은 경우는 와라이라는 남자를 중심으로 그의 망상 폭주를 그린 작품이다. 24세까지 동정으로 살아온 그가 동정을 상실하는 날에 벌어진 이야기들로 혹시 모든 남자들이 이런 거 아니야~~라는 의심을 품게 한 작품이었는데, 난 와라이에게 와라이(笑い, 비웃음)를 날려줬다. (와라이라는 성과 비웃음 혹은 웃음이란 뜻의 와라이가 발음이 같다. 일종의 말장난이니 그냥 넘기시길...)

<평행세계>같은 경우는 일본의 3대  SF작가에 손꼽히는 츠츠이 야스타카의 SF적 성향이 가장 짙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평행으로 이루어져 버렸는데, 그 평행 세계에서 나는 여러 명의 나와 만난다.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평행 세계에서 미묘하게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나를 묘사한 작품이다.

만약 정말 평행 세계가 존재하고, 그 평행 세계가 맞닿아 겹쳐지면 어떤 일들이 생길까.
문득 재미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들긴 하지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결국 내가 발딛고 사는 세상이 가장 좋은 세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츠츠이 야스타카의 책은 읽을 때마다 놀라게 된다. 수없이 많은 다양한 소재와 장르를 넘나들며, 표현되는 그만의 유머 감각은 가끔은 간담을 서늘하게도 하고, 가끔은 폭소와 폭주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게다가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책에 수록된 작품이 대부분 1970년대에 씌어진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2000년대와 동시대성을 이룬다. 보통 몇 십년 전에 씌어진 작품들은 어느 정도 시대성이 떨어지게 마련이지만, 츠츠이 야스타카의 책은 항상 동시대성이란 것과 시대성 초월이란 부분을 함게 가진다. 즉 그말은 몇 십년전의 소설이지만, 현재 읽어도 재미있고, 또 몇 십년이 더 지나 읽어도 재미있을 거란 말이다. 물론 이는 개인적인 취향과 판단일 수 있겠지만, 시대를 아우른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독자가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츠츠이 야스타카라고 하면 제일 먼저 <시간을 달리는 소녀>나 <파프리카>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외의 작품 특히 단편집이나 쇼트쇼트도 꼭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그만의 표현으로 풀어내는 작가, 츠츠이 야스타카는 블랙 유머와 풍자로 세상을 조롱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독자에게 자신과 같은 시선을 가지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책을 읽는 순간 만큼은 유쾌하고 즐겁게 츠츠이 월드에 푹 빠지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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