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코의 지름길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3
나가시마 유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나가시마 유의 소설은 에로망가 섬의 세 사람으로 처음 접했다. 제목도 독특했지만, 다양한 소재들, 다양한 장르로 이루어진 그 단편집의 경우 작가의 실험성이라든지 이런 면이 돋보였다면, 유코의 지름길은 잔잔하고 따뜻한 이야기로 진행된다.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라고나 할까.

총 7편이 연작형식으로 수록된 유코의 지름길은 앤티크 가게 후라코코를 중심으로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처음 이 책을 몇 장 읽었을 때는 유키야 쇼지의「도쿄밴드왜건」이나 가와카미 히로미의「나카노네 古 만물상」이 생각났다. 두 편 모두 옛물건(헌책이나 고서, 혹은 사람들이 쓰던 물건)과 관련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작품과 좀 달랐던 점을 보자면 유코의 지름길은 좀더 조용하고 차분하다고 해야할까. 도쿄밴드왜건은 시끌벅적 왁자지끌 가족 중심의 이야기에 헌책과 관련한 사람들의 이야기, 나카노네 古 만물상은 고물상에 진열된 여러가지 물건들에 대한 사람들의 추억과 나카노씨를 비롯한 등장 인물들의 이런 저런 사랑 이야기로 분위기는 유코의 지름길 보다 더 발랄한 편이었다.

유코의 지름길의 목차를 보면 각 등장인물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지만 중심 인물이 그 사람일 뿐이지, 그 사람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어차피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은 겹쳐지게 마련이고, 그게 여러 형태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언뜻 모두 평범해 보이지만, 각기 다른 인생을 짊어 지고 사는 그들. 사실은 세상에는 평범한 사람이란 것 자체가 없는 게 아닐까. 개개인의 인생이 따로 있고, 가치관이나 사고방식 행동이 다 다르기에 세상엔 똑같은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작품의 화자인 <나> 역시 후라코코에서 일하면서 그곳 2층에 얹혀 사는 인물로, 긴 인생의 어느 부분에서 잠시 그곳에 머무른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것이 영원한 것은 아니다. 단지 잠시 쉬어가는 곳이랄까.

사장인 마키오씨도 늘 느긋하며 서두르는 법이 없고, 그 덕분에 앤티크점 후라코코는 그곳을 스쳐 지나가는 여러 사람들에게 편안한 휴식 공간과 숨 돌릴 틈을 제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외 유코의 지름길에 나오는 등장 인물들 대분분이 그렇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친근감을 주는 인물이지만, 그들의 인생은 나름대로 복잡하고 오묘하다. 다들 각자의 삶을 꾸려 가지만, 왠지 그들에게선 날카로운 긴장감을 느낄수는 없다. 어쩌면 작가가 의도했던 것도 그런 부분인지 모르겠다. 눈이 핑핑 돌아가는 것처럼 바쁘게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느긋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어디 한군데 쯤은 편안함과 여유로움을 제공하는 공간의 존재에 대해서.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물건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사람들과의 관계도 인스턴트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요즘, 후라코코의 손때 묻고 사연있는 그 물건들 사이에서 우리는 여유로움을 슬쩍 훔쳐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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