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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미트 트레인 (포켓북) - Books of Blood Best Collection 2
클라이브 바커 지음, 정탄 옮김 / 끌림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일단 피의 책으로 클라이브 바커의 소설에 입문한 나는 미드나잇 미트트레인을 읽으면서 클라이브 바커의 세계로 한걸음 더 들어 갔다.
피의 책은 잔혹하고, 유머스럽기도 하고, 왠지 안타깝기도 한 작품들이 동시에 진행되었다면, 미드나잇 미트트레인은 슬래셔 혹은 스플래터라는 장르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표제작인 미드나잇 미트트레인은 표지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완전한 슬래셔다. 제목 자체도 한밤중의 살육 열차를 의미하니 더 이상 부연 설명이 뭐가 필요하겠는가.
<미드나이 미트트레인>은 한밤중 뉴욕을 달리는 지하철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연쇄살인 사건 이야기이다. 깨끗하게 난자당해 거꾸로 매달려 있는 사체들. 과연 한밤중의 지하철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이 단편의 주인공 카우프만은 우연히 지하철에서 잠이 들었다가, 그 살육의 현장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 살육이 왜 일어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지하철에서 살해당한 사람들은 모두 어둠속의 존재들에게 바쳐지는 공양물이었던 것이다.
그 작업은 마호가니란 인물이 수행을 하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세밀하게 묘사가 되어 있어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난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영화를 보지 않아도 그 장면들이 눈에 선할 만큼 표현이 자세했다.
<피그 블러드 블루스>는 한 청소년 갱생원에서 발생하는 묘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곳에서 사라진 소년의 행방과 그곳에서 벌어지는 만행들. 여기에서도 인간이 제물이 되어 바쳐진다.
그곳에서 가장 약자로 여겨지던 소년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난 그만 소름이 쫙 끼쳤다.
<언덕에, 두 도시>는 엄밀히 말하자면 난도질로 인해 피가 튀는 장면이나 그런 것은 거의 없다. 다만, 내가 이 단편을 읽으면서 느낀 건 지옥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서로를 밧줄로 묶어 거대한 조형물을 만든 인간 탑. 그것이 두 도시의 본 모습이다. 서로의 경쟁심으로 매년매년 조금씩 더 커지는 거인 탑.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밑에 있는 사람은 압사당하고 죽은 후에도 매달린 채, 행진을 해나간다. 물론 지옥의 형벌이라고 하기엔 가벼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늘 들어 왔던 불의 지옥 같은 것에 비하면 말이다. 사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의 형벌도 이보다는 더 극형이라 생각한다. 매일매일 재생되는 간을 매일매일 독수리에게 쪼아먹혔던 프로메테우스. 그에 비하면 서로의 몸을 묶고 죽을때 까지, 아니 죽은 후에도 매달려 있어야 하는 것은 조금 덜한 정도의 형벌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의 탐욕이 그들 자신을 지옥의 가장자리로 밀어 넣은 게 아닐까.
<로헤드 렉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자비한 살육이 이어진다. 땅속에 묻혀 있던 존재인 로헤드 렉스가 지상으로 나오면서 조용했던 시골 마을은 살육의 현장으로 바뀐다. 그곳에는 먹는 자와 먹히는 자가 있을 뿐이다.
로헤드 렉스의 살육은 단지 허기를 채우기 위한 것. 그것은 사냥이며, 일말의 동정심도 찾아볼 수 없다.
난 단편을 읽으면서 이토 준지의 만화가 생각났다. 어둠의 목소리에 실린 단편인 <도깨비 집의 비밀>이란 단편에서 소이치의 아내로 나온 기골이 장대하며 입이 쩍 벌어지는 그런 여자의 모습이 왠지 로헤드 렉스와 싱크로되었다.
그 이미지가 겹쳐지자 마자, 어디선가 먹히는 자의 단말마의 비명과 으드득 거리며 사람이 먹히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총 네편의 단편이 실린 미드나잇 미트트레인.
이들 단편 속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감정은 한조각도 없다. 냉정하게 그 사실을 서술할 뿐이다. 냉정함을 넘어 냉혹한 시선으로 이 모든 일을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또한 등장 인물들도 마찬가지로 살육을 하는 쪽의 경우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다. 먹히는 자들의 공포와 절망감의 비명이 있을 뿐이다.
사냥감에게는 일말의 동정을 가지지 않는게 사냥꾼들의 룰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