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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망가 섬의 세사람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9
나가시마 유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이런 저런 신간을 검색하다가 내 눈에 확 들어온 이 책.
샛노란 표지에 독특한 그림, 그리고 정말 눈길을 끄는 제목.
내용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얼른 책을 구매했다.
사실상, 이 책을 구매하기 전에는 나가시마 유라는 작가에 대해 잘 몰랐는데, 책을 받고 저자 이력을 살펴 보다가, <사이드카에 개>라는 영화의 원작자가 이 작가란 것을 알게되었다.
아~~ 그랬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왠지 이거 흥미진진하겠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펼쳤다.
목차를 보니 총 5편이 실려 있다. 일단 에로망가 섬의 세 사람은 길이가 꽤 긴 중편이고, 나머지 네개는 단편으로 보였다. 두근대는 가슴을 안고, 에로망가 섬으로 출발~~~
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에로망가 섬이란 명칭이 작가의 상상력에서 탄생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에로망가는 실제로 남태평양의 바누아투 공화국의 열 세개 섬중의 하나라고 한다. (에로망고라고도 한다)
어쨌거나 에로망가라는 이름만으로 보면 일본어로 에로만화를 뜻하기 때문에 작가가 동음이의어를 가지고 상상력을 발휘했다고 생각했었다. 에로망가섬에서 에로망가를 본다라..
일본어로 표현하면 참 재미있는 표현이겠다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책 표제작이기도 한 <에로망가 섬의 세 사람>은 제목 자체의 느낌이 주는 가벼움이나 에로틱함과는 거리가 있다. (무턱대고 상상력을 날린 내 죄다)
오히려 이 작품은 남국의 느릿느릿하면서도 자연과 가까운 삶의 모습과 부산스럽고 인위적인 삶으로 가득한 도쿄의 모습과 그곳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배치시켜 신선한 자극과 즐거움을 준다.
왠지 책을 읽는 나 역시도 게임 잡지사의 편집장 사토, 아니메 오타쿠 구보타, 그리고 H사의 직원 히오키가 생각한 것처럼 그곳으로 도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녹음이 짙은 숲, 자연과 함께 살면서 느긋한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그곳. 지금 계절이 겨울이라 그런지, 남국에 대한 열망은 점차 더해지는 느낌이다.
<여신의 돌>은 SF냄새가 풍기는 작품이다. 언제 일어난 일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고질라의 공격으로 온 도시는 파괴되고 다섯명의 사람만이 살아 남은 상황. 그곳에서 그들은 생존하게 된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남겨진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한다. 짧으면서도 참 강렬한 인상의 작품이었다.
<알바트로스의 밤>은 알바트로스, 즉 신천옹이 살고 있는 섬이야기인가 했는데, 역시나 내 짐작은 멋지게 빗나가 버렸다. 여자친구 아버지의 반대로 도망길에 나선 남녀. 그들은 골프코스에서 골프를 치며 한 홀, 한 홀을 정복해 나간다.
한 홀을 클리어할 때마다 조명은 꺼지고 다음 홀이 나온다. 게다가 캐디는 여러가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읽으면서 고개가 갸웃해지는 작품이었는데, 작가의 말처럼 골프 게임을 하는 느낌이었다. 한 홀을 클리어하면 다음 스테이지인 다음 홀이 등장, 그리고 또다시 클리어. 그러다가 마지막은 액션 게임으로?!
묘하게 재미있는 단편이었다.
<새장, 앰플, 구토>는 관능소설이라고 하지만, 난 고개가 갸웃했다. 사실 관능소설이 뭔지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런 장르란 걸 일단 제외하고 읽으면, 이 단편은 현대 사회의 젊은이들, 특히 일회성 만남과 말초적 쾌락을 느끼기 위한 사람들간의 가벼운 교제, 그리고 컴퓨터 게임이란 것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는 그런 현대인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의 종류는 여러가지이다. 하지만 요즘 세상은 진중하고 깊은 사귐보다는 가볍고 일회성인 만남이 주류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 소설의 주인공인 쓰다의 경우는 더욱더 그정도가 심한 편이라, 온갖 방탕한 만남을 가지고, 결국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 인물이다.
역시 사람과 사람의 사귐에는 신중함과 진중함이 꼭 필요하겠지.
<청색 LED>의 경우에는 사람 이름이 이니셜로 표기된다. 감옥에서 석방된 H라는 인물이 I라는 지인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이야기속에 젤 첫 이야기였던 에로망가섬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H는 히오키였다.
그가 에로망가 섬에서 묵는 첫날밤, 사라졌던 이유가 이 단편에 잘 나와있다. 그렇다보니, 첫 소설과 마지막 맺음소설이 묘하게 연계되어 있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해야할까.
독특한 소재와 개성강한 인물, 그리고 각기 다른 장르로 쓰여진 이 단편집은 유쾌하고 즐거운 면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사회 문제와 같은 진중한 이야기도 담겨있었다.
독특한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으로 풍덩 다이브해 보자.
색다른 이야기가 주는 매력에 즐거움을 느끼게 될터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