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 열린책들 세계문학 52
A.스뜨루가쯔키 외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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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
책 제목도 생소하고, 러시아 형제 작가인 스뜨루가츠끼 형제의 이름도 낯설기만하다.
아니, 사실 러시아 문학 자체란 것이 내겐 거의 미지의 분야나 다름없다.

그렇다 보니, 너무 어려운 책이 아닐까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하며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작가에 대한 설명과 책 뒷표지을 읽고 드디어 본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차근차근 읽어가기 시작했다.

이 책은 3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며 주인공은 말랴노프라는 천문학자이다. 
250년만의 폭서(暴暑)로 인해 레닌그라드는 찜통 같은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아내와 아들은 휴가 중이고, 말랴노프는 혼자 집을 지키며 연구 논문을 쓰고 있다.

그러던 그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이상한 전화가 자꾸만 걸려와 논문 쓰기를 방해하고, 아내가 주문한 듯한 대량의 식량이 집으로 배달되어 온다. 게다가 아내의 친구라는 여자 리도츠까가 찾아와 집에 머물기를 원한다. 그리고 밤에 불쑥 찾아왔던 이웃 집의 물리학자 스네고보이는 다음날 사체로 발견된다.

이상 기온으로 무더운 날씨, 이상한 방문, 그리고 이웃집 과학자의 기묘한 죽음.
그러나 이것은 모든 일의 시작에 불과했다.
리도츠까는 언제 갔는지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고, 말랴노프는 살인범으로 의심받는다.

이런 설정만으로 본다면 이거 혹시 미스터리인가 하고 생각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미스터리적 요소도 있지만, 말랴노프, 스네고보이, 바인가르텐, 자하르, 베체로프스키 등등의 과학자들의 연구를 방해하는 우주적인 무엇이 등장하면서 SF적인 요소가 추가된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이론이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항상성 우주라는 것이다. 항상성 우주란 것은 우주가 자신의 최적화 상태를 항상 유지하려고 하는 움직임으로, 이들 과학자의 연구가 우주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에 위배되므로 우주인들 혹은 자연(우주) 자체로부터 연구를 방해받는다.

하긴, 인류는 우주의 신비를 풀기 위해 지금도 무한정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실제로 우주에 대해 아는 것은 아직 미미하다. (내가 전에 읽은 책인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는 우주의 신비가 몽땅 풀리는 것과 동시에 우주는 자연적으로 소멸하고 그 자리를 대신할 새로운 우주가 탄생한다고 나온다. 이 역시 우주의 항상성과 관계있는 것이 아닐지..)

하여간, 이들의 연구는 온 우주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방해를 받는데, 끝까지 그 위협 세력의 실체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이 소설을 풍자 소설로 보는 시각이라면 이 방해 세력은 어떤 단체나 국가로 볼 수도 있다. 어떤 연구의 영향으로 인해 사상적 사회적 근간이 흔들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어떤 시스템의 움직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거기에 정치에 지배당하는 학문과 학자들의 모습, 그리고 학문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안위와 행복과 물질적인 안락함을 위해 학문을 버릴 것인가에 대한 지극히 인간적인 고민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이 책의 등장 인물들이 모두 과학자 혹은 학자 계층이므로 자신의 학문을 지킬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고민으로 표현되었지만, 이를 크게 보자면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을 위해 살 것인가, 아니면 지배 계급에 예속되어 미래가 보장받는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고민을 이야기 하고 있다.

과연 어떤 것이 행복한 삶일까.
자신의 신념과 자유를 위해 자신에게 닥쳐올 위협을 감수하면서 사는 것이 행복할 삶일까, 아니면 그 신념과 자유를 포기하는 대신 평온하고 안락한 물질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것일까. 이 두가지는 인류 생존이래 계속 이어져 온 고민일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에는 해답이 없다.
말랴노프는 자신의 신념과 자유를 상징하는 것인 자신의 연구 논물을 베체로프스끼에게 넘겨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으로 이 책은 끝난다. 결국 모든 것은 읽는 독자에게 달린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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