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메로스 - 모리미 도미히코의 미도리의 책장 7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시작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모리미 도미히코의 달려라 메로스는 다자이 오사무를 비롯하여 나카지마 아쓰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사카구치 안고, 모리 오가이의 소설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재해석에서 끝나지 않고 또다른 하나의 소설로 창조한 것이란 표현이 더욱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일단 일본 원서의 제목을 살펴 보면, 확실히 잘 알 수가 있다. 우리나라에 나온 두 권의 책은 제목이 <달려라 메로스>로 똑같지만..
일본 원서 제목은 新釈 走れメロス 他四篇인데, 이걸 우리말로 옮겨 보자면 새로운 해석, 달려라 메로스 외 4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제목에서부터 아 이 소설의 원작이 따로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난 다자이 오사무의 <달려라 메로스>와 모리미 도미히코의 <달려라 메로스> 두 권을 동시에 구입했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책에 대해서는 아무런 사전 정보없이 구입했으므로, 책 제목만 보고는 아,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만이 있겠구나 싶었는데, 그외에도 4명의 원작 소설이 따로 있었다.
(본인 1 : 그러게, 책 정보쯤은 확인하지 그랬니?)
(본인 2 : 뭐, 아무런 정보 없이 사서 의외의 것을 발견하는 수확도 하나의 기쁨이지)

하여간, 일단 원작인 다자이 오사무의 <달려라 메로스>를 먼저 읽고, 모리미 도미히코의 <달려라 메로스>를 읽었다. 모리미 도미히코가 쓴 다른 4편의 소설의 원작은 아직 읽어 본 적이 없어서 좀 아쉽다. <달려라 메로스>의 경우 원작의 어떤 부분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했는지를 비교해 볼 수 있었으나 다른 4편의 경우 아무런 지식이 없어서... (苦笑)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사카구치 안고의 경우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이름을 따 아쿠타가와 상이 만들어 졌으니 두 말 하면 잔소리. 사카구치 안고는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 사막에서 잠시 언급이 된다. 

어쨌거나, 일본 문학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담당해왔던 작가들의 작품을 새로운 방식으로 창조해낸다. 이런 방식은 <겐지와 겐이치로 A, B>와 비슷하다. 겐지와 겐이치로 같은 경우는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를 재해석해 포스트 모더니즘 소설로 만든 것이지만...  

모리미 도미히코의 <달려라 메로스>는 시종일관 폭소를 터뜨리게 만들었다.
특히.. 분홍색 팬티에선 완전히 자지러지게 웃고 말았다.
원작은 메로스가 돌아오지 않으면 세리눈티우스를 처형한다는 것인데, 이게 현재의 교토로 무대가 바뀌고 대학 캠퍼스로 무대가 바뀌면서 그 설정이 이렇게 바뀌게 된 것이다.
처형이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의 반주에 맞춰 분홍색 팬티를 입고 춤을 춘다라는 설정으로.

물론 가장 중요한 우정에 대해 역설하는 부분은 같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우정을 보여주는 방식을 통쾌하게 뒤집는다.
다자이 오자무의 달려라 메로스는 메로스가 세리눈티우스의 처형을 막기 위해 성으로 돌아오지만, 모리미 도미히코의 달려라 메로스는 우정을 위해 도망을 간다. 잡히지 않고 무사히 도망을 치는 게 두 사람의 우정의 증거인 것이다.

"약속을 지키고 지키지 아니하고는 문제가 아니다. 신뢰하고 하지 아니하고도 문제가 아니야. 누를 끼쳐도 돼. 배신해도 상관없다. 서로 돕고 싶으면 그래도 되고,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저 같은 것을 목표로 하기만 하면 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둘도 없는 벗인 것이다."

책 본문에서 발췌한 부분을 보면 이 둘의 우정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즉, 두 사람의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 보여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우정은 여러가지 모습으로 보여지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함부로 판단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새로운 우정에 대한 해석이다.

<덤불속>의 경우는 유지니아을 읽으면서 느낀 점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아! 그렇다고 이게 미스터리물은 아니다. 접근 방식이 유지니아와 비슷하다는 것이지.
어떤 영화에 대해 각기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인터뷰하는 형식이 유지니아의 사건 인터뷰 방식과 닮았단 말이다. (온다 리쿠의 유지니아를 읽으신 분이면 공감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하나의 영화를 두고 이야기되는 각기 다른 사람들의 생각.
어떤 사실에 대한 입장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똑같은 것을 보고도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해나가고 있다. 사실은 하나지만, 그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각기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느낀 것만을 진실이라 생각하는 것이니까.

<산월기>도 읽으면서 계속 키득키득 거린 작품중 하나이다. 사이토 슈타로라는 정말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그의 궤변에 미친듯이 웃을수 밖에 없었다. 사실 여기에 나오는 주인공들 중 시노 메로(달려라 메로스)와 세리나(달려라 메로스)도 정말이지 괴상한 캐릭터이다. 괴상한 캐릭터들이 늘어놓는 궤변이 마음에 와닿는 건, 비록 그것이 궤변일지라도 진심을 담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 눈에는 이상하게 보여도, 이상하게 설득력이 있는 말.
그건 아마도 진심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해 배척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 주인공들도 마찬가지다. 배척을 하기도 하고 배척을 당하기도 하지만, 늘 한결같이 꿋꿋한 모습이다. 세상은 큰 무리를 중심으로 굴러가는 것만도 아니란 것을 보여 준다.

<벚나무 숲 만발한 벚꽃아래>와 <햐쿠모노가타리>는 왠지 원작이 공포소설일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벚나무 아래에는 시체가 잠들어 있어. 벚나무는 그 시체를 양분으로 아름다운 꽃을 피우지...
라는 괴담이 갑자기 생각난 것은, 아마도 그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벚나무에 대해 사람들은 경외심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햐쿠모노가타리>의 경우, 일종의 이야기 놀이인데, 마지막 100번째 촛불을 끄기 전에 이야기는 끝난다. 100번째 촛불이 꺼지면 마물이 나올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 이야기에는 세상사람들 눈에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는 인물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인물이 실제로 있는지는 결국 모르고 끝났지만... 한여름밤에 왠지 일어날 것 같은 그런 이야기였다.

전체적으로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원작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났다.
원작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난다는 것은 책이 꽤나 잘 쓰여졌다는 걸 의미할지도 모른다.
재해석하고 재창조된 글이 재미없다면 당연히 원작에 대해 관심이 가지 않게 되므로.

유쾌 발랄 상쾌 통쾌한 명작 다시 읽기.
이 책은 나처럼 <달려라 메로스> 딱 한 작품을 읽은 사람이라도, 원작을 모두 읽어본 사람이라도, 이 책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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