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 민음사 모던 클래식 5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나에게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은 이 책말고도 한 권이 더 있다. 민음사에서 처음으로 나왔던 그 책을 여전히 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또다시 새로운 책으로 구매한 것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 중 키친을 가장 좋아하기 때문이리라. 벌써 몇 번을 읽고, 좋아하는 구절에는 포스트 잇을 붙여 놓고, 가끔 한번씩 그 부분만을 뒤적여 보기도 한다.

다시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을 때, 또다시 난 요시모토 바나나가 만들어 놓은 세상으로 푹 빠져 들어갔다. 그녀만의 감각적인 표현들, 그리고 그녀의 소설속에서 등장하는 독특한 인물들, 그리고 비일상적이면서 일상적인 일들의 세상 속으로.

이 작품집 속에는 총 3편의 단편소설이 등장한다.
키친과 만월은 연작소설이며, 달빛 그림자는 하나의 완전한 단편이다.

상실과 회복, 그리고 새로운 희망과 사랑, 키친과 만월

미카게는 어릴적 부모를 동시에 잃고 조부모밑에서 커왔다. 할아버지도 그 중간에 돌아가시고 이젠 할머니마저 돌아가셨다. 그런 그녀의 앞에 유이치란 청년이 나타났고, 미카게는 유이치와 그의 어머니(실은 아버지) 에리코씨와 함께 살게 된다.

유이치의 집에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게 되는 미카게. 그러나 그후 미카게가 그 집을 나와 직장 생활을 하던 중 에리코씨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미카게도 유이치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미카게는 부모님도 조부모님을 유이치는 어머니와 어머니이자 아버지였던 에리코씨를 잃었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싫든 좋든 이별을 하게 마련이지만, 미카게와 유이치의 경우는 부모님과 조부모님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이별을 하게 된 경우다. 자신의 언덕이자 자신을 품어주던 바다같은 존재를 상실했을때, 그 슬픔은 얼마나 크고, 그 상처는 얼마나 깊을까.

하지만 미카게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때는 유이치와 에리코씨가 미카게의 슬픔과 상처를 메워주었고, 유이치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인 에리코씨가 죽었을때는 미카게가 유이치의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세상에 혼자 남은 것 같은 순간, 누군가 의지할 사람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따뜻해지고, 등에 진 짐은 한결 가벼워진 듯한 느낌이 든다.
서로를 보듬고 쓰다듬어 주며 서로의 상처를 회복시켜주는 두사람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고 따뜻했다.

빈자리는 결국 또다른 누군가에 의해 채워지고, 상처는 그렇게 치유되어 가는 게 아닐까.

절망의 끝에 보이는 한가닥 희망, 달빛 그림자

세편의 단편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역시 달빛 그림자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내가 읽을때 마다 콧끝이 찡해지고, 결국 눈물이 방울져 흘러내리게 만든다.

고등학교때부터 곱게곱게 쌓아왔던 4년간의 사랑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사츠키는 히토시가 죽은 후 그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매일매일 조깅을 한다.
한편 히토시의 동생 히라기는 형과 여자친구를 한꺼번에 잃어 버린후 여자친구의 유품인 세라복을 입고 다니는 것으로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사람은 태어나면 죽는다. 그리고 누구나 언젠가 이별을 한다.
그러나 그 이별이 생각지도 못하게 찾아오고, 이별의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채 이별을 맞이 해야한다면 그 슬픔은 오죽할까.

사랑하는 사람과 자의든 타의든 헤어지는 것은 가슴아픈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죽음이란 것에 기인해서 생기는 이별이라면 그건 정말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의 상처와 슬픔을 줄거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라라라는 한 여성을 통해 사츠키는 히토시와의 작별인사를 완전히 끝낼수 있었다. 강과 다리를 사이에 둔 두사람.
마치 삶과 죽음이란 세상으로 양분된 듯한 그 강의 양쪽에서 마지막으로 히토시는 사츠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달빛 그림자의 시기적 배경은 겨울에서 초봄으로 넘어가는 시기이다. 히토시를 잃은 사츠키와 형과 여자친구를 한꺼번에 잃은 히라기는 그들의 죽음자체가 끝나지 않는 겨울로 들어가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먼저 떠난 사람들의 마지막 인사로 남은 사람들은 다시 삶을 향해 한발을 내디딘다.

일상속의 비일상적인 이야기, 그리고 치유되지 않는 상처는 없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읽다보면 특이한 등장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키친과 만월에서는 남자였던 에리코씨가 아내의 사후 유이치를 키우면서 여자로 살아가며, 달빛 그림자에 등장하는 우라라는 영매와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그들이 전혀 비현실적으로 보이지 않고 소설속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가는 것은 소설 자체가 가진 특유의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죽음이란 것과 거리가 멀다. 그러나 여기에 등장하는 미카게, 유이치, 사츠키, 히라기, 그리고 우라라까지 그들은 모두 누군가를 먼저 떠나보낸 아픔을 가지고 있다. 그 슬픔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힘닫는 데까지 노력을 아끼지 않지만, 혼자서는 그 상처를 치유하기는 힘들다.

누군가와의 새로운 관계, 그리고 먼저 떠나 보낸 사람들과 관련한 현실을 인정하면서 그들은 서서히 상처에서 회복되기 시작한다.

세상에는 치유되지 않는 상처는 없다.
그 기간이 그리고 그 치유방법을 사람마다 다 다를지라도... 죽을 것 만큼 힘든 일도 절대로 나을 것 같지 않던 상처도 어느새 새살이 돋고 아물어 간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은 비록 교훈을 주는 책이라거나 인생의 지침을 마련해주는 책은 아닐지 몰라도 읽고 나면 가슴 한켠이 따뜻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게 바로 바나나 효과가 아닐까.

기억에 남는 한구절>
"지금이 가장 힘들 때예요. 죽는 것보다 더 힘들지도 모르죠. 하지만 아마 더 이상은 힘들지 않을 거예요. 그 사람의 한계는 변하지 않으니까. 언젠가 또 감기 걸려서, 지금처럼 아플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본인만 건강하면 평생, 없을 거예요. 그래.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지겨워서 넌더리가 날 수도 있겠지만, 이까짓쯤 하고 생각하면 덜 힘들지 않을까?" (1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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