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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문 안에서 - 나쓰메 소세키 최후의 산문집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숙 옮김 / 문학의숲 / 2008년 3월
평점 :
나쓰메 소세키의 <유리문 안에서>는 1915년 1~2월에 걸쳐 아사히 신문에 연재된 그의 수필을 묶어서 간행한 것이다.
이제껏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으로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와 <도련님>, 딱 두권을 읽은 나로서는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이 어떻다는 말은 감히 할 수 없다. 두 권의 책에 대한 느낌은 참 달랐고, 각각의 책에 대해 다른 감상과 재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그의 수필집을 처음 대했을때의 느낌이란 참 남달랐다. 소설속에서 보이는 나쓰메 소세키의 이미지는 소설을 통해 투영되어 어떤 이미지에 가려있었지만, 수필은 나쓰메 소세키의 내면을 고스란히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유리문 안에서>는 작가가 만년을 보내던 서재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이 글을 쓴 1년후 사망했다. 그렇기에 왠지 작가가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이라도 하고 있는 듯한 표현들이 많이 눈에 띄기도 했다.
유리문은 자신의 서재와 세상을 가로막고 있는 한쪽 면이다. 유리문 안의 좁은 공간에서 병마와 싸우고 있는 나쓰메 소세키와 1910년대 눈이 핑핑 돌아갈 만큼 어지러운 일본 국내외 정세는 참으로 묘한 대조를 이룬다. 마치 유리문안쪽은 조용조용하게 또한 느릿느릿하게 가는 시계가 있다면 유리문 밖은 정신없이 어지러이 돌아가는 시계가 있는 듯한 느낌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메이지 시대가 시작되기 1년전인 1867년에 태어났고, 이 수필은 다이쇼 시대에 쓰여졌다. 메이지 시대라고 하면 일본의 개국과 함께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시 시작한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다이쇼시대는 메이지 유신이후 급속하게 진행된 일본 근대화의 물살이 일본을 크게 변화시키던 시기이기도 하다. 쌀파동문제라든지 간토 대지진이 일어나던 시기이지만, 간토 대지진은 나쓰메 소세키 사후에 일어난 사건이므로 쌀값 파동문제만이 이 책에 언급되어 있다.
게다가 이 수필이 쓰여지던 시기는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시기이기도 하니 일본 국내외적으로 굉장히 어수선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진다. 자신의 현재 생활을 그리고 있는 부분과 과거를 회상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생활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현재 자신이 만나고 있는 사람과 관련한 이야기들이라든지 자신의 투병 생활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더 흥미로운건 작가 자신의 과거사이다. 현재에서 가까운 과거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어 점점 더 먼 과거로 결국은 자신이 태어나 자란 이야기까지 등장한다. 태어나자 마자 고물상에 수양아들로 보내지게 되었다가 누나가 데리고 온 사연, 다시 시오바라가의 양자로 갔다가 양부모에게 문제가 생겨 생가로 돌아오게 된 사연까지 저자가 이전까지 굳이 밝히지 않았던 자신의 과거사까지 나온다.
이런 부분을 보면서 왠지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괜시리 짠해지기도 했었다.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생각할때 과거를 돌아보곤 하니까.
그러다 보니 메이지 시대에서 다이쇼 시대를 거치는 일본의 변화상이라든지, 자신의 성장 과정, 형제들 이야기 등등 우리가 몰랐던 나쓰메 소세키의 삶의 이야기가 뚝뚝 묻어 나온다. 소설로 접한 그의 이미지와 수필로 접한 그의 이미지에서 받은 느낌이 참 다르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또한 이 수필에 나오는 고양이 이야기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겹쳐 보이고, 그가 잠시 했던 교사 생활은 <도련님>의 소재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나오는 주인공이 나쓰메 자신을 모델로 썼다고도 한다.
수필은 소설과는 달리 꾸밈이 없다. 자기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는 수필을 난 참 좋아한다. 특히 소설을 쓰는 작가들의 수필을 좋아하는데, 그건 소설속에서 살짝살짝 드러나는 작가의 이미지와 수필에서 드러내는 작가의 이미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오히려 수필을 접함으로써 그 작가에게 한층 더 가까이 가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일본 근대화의 격동기에 살았던 나쓰메 소세키의 삶과 작품, 그리고 그의 가치관이나 그가 좋아했던 문화 생활, 일본 사회의 변화 모습등을 시종일관 담담하면서도 서정적으로 그려낸 <유리문 안에서>는 나쓰메 소세키의 팬이라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