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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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4회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
작가의 이름은 장은진.
책 제목은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이상이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가진 기본 정보였다.
아무런 정보가 없다는 것은 아무런 선입관이 없다는 뜻이고, 그마만큼 이 책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란 뜻이리라.

그 판단은 정확했다.
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메마른 땅이 촉촉한 단비를 탐욕스럽게 흡수하듯 책에 몰두해 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왜 이 책을 진작에 읽지 않았을까 하고 스스로를 원망하기도 했다.

이 소설의 독특함

소설의 형식은 독특하다.
행간 띄움마다 번호가 붙어 있고 그것은 1에서 152번까지의 숫자이다.
그래서 난 소설을 읽는 내내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번호를 보면서 영화의 한 씬마다 붙어 있는 번호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난 자연히 두 사람과 한 마리를 따라 내내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문장에서도 독특한 점을 찾아볼 수 있다.
그건 현재형의 문장과 과거형의 문장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현재형과 과거형이 뒤죽박죽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나(지훈)이 여행을 하다가 751을 만나면서 그들의 여정 자체가 모두 현재형으로 표기된다.
여행의 시작, 친구와의 일, 가족간에 있었던 일, 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모두 과거형으로 서술된다.
현재형 문장은 아직 우리에게 좀 낯설긴 하지만, 현실감이 있다.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란 생각을 해주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을 이야기하다

소설의 화자인 나(지훈)은 벌써 3년째 여행중이다.
여행 동지는 전직 안내견이자 지금은 맹인견이 된 와조.

나(지훈)와 와조는 3년간 여행을 다니며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 사람들의 주소를 받아 그 사람들에게 편지를 쓴다.
그리고 매일매일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을 하지만 편지는 오지 않았다.

나(지훈)는 왜 집을 떠나 여행을 하게 되었을까.
집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곳이요, 가장 따뜻한 곳이 되어야 함이 틀림없는 사실이나, 나(지훈)에게 집은 발작을 일으키는 장소이다.
그래서 나(지훈)는 나에게 편지가 도착하면 발작 증세도 없어질 것 같아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여전히 편지는 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철에서 만난 소설가 여자.
(본문에서는 여자 혹은 751이라고 나온다)
우연히 여행에 그녀와 동행하게 된 나(지훈).
나(지훈)는 여전히 편지를 쓰고, 751는 소설을 쓴다.

나(지훈)와 여자의 공통점.
나(지훈)는 와조라는 개를 데리고 여행을 하고, mp3와 소설을 가방에 넣고 여행을 한다.
여자는 소설을 쓰는 직업을 가졌다.
그렇다.
둘 다 사람들과의 소통을 어려워 한다.

나(지훈)는 어릴적 말 더듬는 버릇때문에 남들 앞에 나서는 것에 극도의 두려움을 가졌고, 여자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일에 거부감을 가진다. 그게 무엇이든. 시나리오 작가로도 잠시 활동했던 여자는 결국 공동작업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소설을 쓰게 된 것이다.

대인관계에 극히 서툴렀던 나(지훈)와 소설가 751.
둘은 여행을 함께 하면서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도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나 역시 대인관계가 서툴고 특히 초등학교때는 발표 시간이 죽도록 싫었다.
그래서 문명이 발달한 지금 세상이 참 살기 편하다는 생각을 한다.
휴대전화로 메세지를 보내거나, 이메일을 주고 받고, 웹상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사귄다.
나 자신에 대해 많이 알릴 필요도 없다.
적당한 선의 나의 정보로 그리고 상대의 정보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

앞에 앉아 있는 사람보다는 보이지 않는 인터넷선으로 연결된 관계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인터넷으로 해결한다. 물론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지만 조만간 집에서 버튼 하나로 모든 것을 대체할 순간이 오겠지.

그런 시대에 편지라는 소재를 들고 나온 소설이 있다.
바로 이 책.
편지, 특히 손으로 쓴 편지는 이제 보기 드물다.
우편함에 꽂혀 있는 건 대부분 세금 고지서일 뿐.
고등학교 아니 대학시절까지도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 받았던 기억이 나지만 지금은 휴대 전화 문자 메세지나 이메일로 대체되었다.
오히려 말보다 글씨가 더 편안함을 주지만, 정성을 기울이는 편지의 존재는 어느새 퇴물이 되어 버렸다.

현대인들의 고독은 더 깊어진다.
고도로 발달된 문명 세계에서 인간들은 북적이는 대도시에 살아도 다른 사람을 쳐다보지 않는다.
오직 자신을 향해 있고, 자신만을 쳐다 본다.

소설의 주인공 나(지훈) 역시 책을 읽고, mp3들 듣는다.
완벽히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나(지훈)는 편지를 쓴다.
편지는 상대가 있어야 쓸 수 있는 것이다.
딱 하나 나(지훈)가 사람들과 소통의 길을 열어 놓은 것, 그것이 바로 편지인 것이다.
그러나 편지는 오지 않았다.

행복한 눈물

나(지훈)이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대부분이 외로운 사람들이다.
불륜을 저지르는 엄마를 둔 여고생, 자살 시도를 하려던 남자, 남이 버린 껌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 20년전 사고로 친구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남자, 고시원에서 사는 남자, 편의점을 좋아하는 남자 등등은 어떻게 보면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외로운 사람이다.

본문의 내용처럼 사람이 외롭다고 느끼는 것은 혼자이기에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여러 사람중에서 자신이 혼자 동떨어진 존재라고 느끼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한 외로움은 현대 사회의 풍요로움이 만들어낸 결락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듯 하다.

왠지 고독하고 외롭고 슬픈 사람들 이야기만 나오는 것 같은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하지만. 이 소설은 마지막에 가서 큰 반전을 가져온다.

나는 주인공 나(지훈)가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발작의 원인을 떠올리는 장면을 보며 크게 숨을 들이 쉬어야 했다. 그제서야 왜 나(지훈)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여행을 했어야 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또한 그 부분에서야 나(지훈)이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 편지는 나(지훈)가 가족과 함께 있을 때 소통하지 못했던 마음이었던 것이었다.

와조의 죽음에서는 눈물이 방울져 떨어져 내렸다.
나(지훈)의 완벽한 여행의 동지이자 동반자였던 와조의 역할은 나(지훈)을 집에 데려다 주는 것으로 끝을 맺었기 때문이다. 와조가 없었더라면 나(지훈)은 여행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을까. 와조를 정원에 묻고, 나(지훈)이 와조를 보내는 장면에서 끝내 나는 펑펑 울고 말았다.

그리고, 난 그 다음에 연이은 눈물 폭탄 세례에 또다시 펑펑 울어 버렸다.
옆집 아줌마가 가져다 준 택배 박스.
그 내용물의 정체를 알게 되고 난 나 자신이 주인공 지훈이 된 것처럼 기뻤고, 행복했다.
행복한 눈물을 펑펑 쏟아내게 되었다.

외로운 사람들의 슬프지만 따뜻하고 행복한 이야기.
추운 겨울 바람이 부는 저녁, 내 가슴속은 따뜻한 봄바람으로 넘쳐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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