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가 사랑한 수식. 언뜻 제목만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 나도 첨엔 그랬다. 그리고 읽으면서 점점 당황스러워졌다. 수학공식들이 줄줄이 쏟아져나와서.. 솔직히 말하자면 난 정직한 문과계통이다. 고등학교시절 문과를 선택하면서 수학은 아예 포기... 수능시험을 볼때도 수리탐구영역은 거의 포기... 대신 언어영역과 외국어 영역을 집중 공략했던 기억이... ^^ 그런 내게...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쏟아져 나오는 수학 공식과 수학에 대한 정의는 당혹감 그자체였다. 그러나 읽으면서 숫자에 담긴, 수학공식에 담긴 의미들을 알게 되면서 이 책의 매력에 푹빠져버렸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4명이다. 그러나 전부 이름이 없다. 등장인물을 우선 살펴보자. 나 : 루트의 엄마이자 박사네 파출부 박사 : 수학박사였으나 1975년에 당한 교통사고로 인해 뇌의 기억담당부분을 크게 다쳐 기억은 1975년에서 멈춰 있고, 그 이후의 기억은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루트 : 나의 아들. 현재 10세. 초등학생 미망인 : 박사의 형수이자 박사가 젊은 시절 사랑했던 N 소설의 시점은 1인칭 이고, 과거의 일을 회상하는 식으로 서술되어진다. 자신의 기억이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는 걸 매 80분마다 뼈져리게 느끼며 살아가는 박사. 실제로 80분밖에 자신의 기억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박사는 자기 나름대로 기억하기 위해 온몸에 수없이 많은 메모지를 붙여놓았다. 새로운 파출부 + 루트(그의 아들) 그리고 그림... 이런 식으로 사람을 기억하고 해야할 일을 기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트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는 박사. 꼭 껴안아 주거나, 머리를 쓰다듬어주거나.. 루트가 말을 걸면 생각중일때도 친절하게 루트의 일을 먼저 보살펴준다. 그리고 루트가 손가락이 다쳤을때 루트를 업고 동네 병원까지 뛰어가기도 하고, 야구장에서 파울볼이 날아왔을때 루트를 감싸 안고 보호하기도 했다. 이런 면면들이 참으로 가슴 따뜻하게 파고드는 부분이었다. 이런 식으로 기억장애를 가진 노수학자와 어린 소년은 서로를 이해해가며 친구가 되어간다. 마음의 친구. 나이를 뛰어넘는 진정한 마음의 친구가 된 것이다. 책마지막 부분 즈음 둘이서 풀밭에서 공을 주고 받는 모습을 떠올리자 가슴 한 쪽이 따뜻해져왔다. 에나쓰의 야구카드를 소중하게 자신의 목에 걸고 있는 박사와 박사에게 선물로 받은 낡은 글러브를 들고 있는 루트... 작가는 담담한 필체로 서술해나갔지만, 참으로 따뜻한 느낌의 책이었다. 수학이란 이례적인 소재를 소설에 접합시킨 작가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잔잔하면서도 따뜻한 책을 읽고 싶으시다면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강력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