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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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사쿠라이 미카케는 어릴적 부모를 잃고 조부모에게 키워지나,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후 할머니와 살았으나 며칠전 할머니마저 돌아가셨다. 장례식이 끝난 후 이사를 가려고 생각하던 중 뜻밖의 손님이 찾아 왔다. 그는 미카게보다 한살 어린 다나베 유이치라는 청년으로 할머니가 자주 가시던 꽃집의 아르바이트생이었다. 그는 미카게에게 집에 오라는 말과 함께 주소가 적힌 쪽지를 주고 갔다.
그날밤 미카게는 유이치의 집으로 가서 유이치의 엄마(사실은 아빠)를 만나게 되고, 다나베가에서 살게 된다.

「나도 혼자서 유이치를 기르면서 깨닫게 되었지. 힘들고 괴로운 일도 아주 아주 많았어. 정말 홀로서기를 하고 싶은 사람은, 뭘 기르는게 좋아. 아이든가 화분이든가. 그러면 자신의 한계를 알 수 있게 되지. 거기서 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여러가지로 힘든 일이 많았나 봐요.」
「뭐 다 그렇지. 하지만 인생이란 정말 한번은 절망해 봐야 알아. 그래서 정말 버릴 수 없는 게 뭔지를 알지 못하면, 재미란 걸 모르고 어른이 돼버려. 난 그나마 다행이었지」
라고 그녀는 말했다.
싫은 일은 썩어날 정도로 많고, 길은 눈길을 돌리고 싶을 만큼 험하다……고 생각되는 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사랑조차 모든 것을 구원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황혼녘의 햇살을 받으며 가느다란 손으로 초목에 물을 주고 있다. 투명한 물의 흐름으로 무지개가 뜰 것처럼 반짝이는 달큰한 빛 속에서.

                                           -본문 中 -

만월
미카게는 6개월정도 다나베의 집에서 살면서 자신의 상처를 보듬으며 지내다가 취직을 해 다나베의 집을 나왔다. 어느날 유이치에게서 걸려온 전화, 다나베 에리코가 죽었다는 전화였다. 이번엔 유이치가 혼자 남은 것. 미카게는 혼자인 유이치와 자주 함께 지내면서 에리코의 이야기도 하고 서로를 보듬어 준다.
어느날 미카게는 일때문에 며칠간 도쿄를 떠나게 되고, 마침 그때 유이치도 도쿄를 떠나 여행을 시작한다. 미카게는 에리코의 가게에서 일하던 치카로부터 유이치의 행방을 듣게 되고
미카게는 그날 밤 유이치를 만나러 낯선 도시로 갔다.

사람들은 모두, 여러가지 길이 있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택하는 순간을 꿈꾼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지금 알았다. 말로서 분명하게 알았다. 길은 항상 정해져 있다. 그러나 결코 운명론적인 의미는 아니다. 나날의 호흡이, 눈길이,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자연히 정하는 것이다. 

                                              -본문 中 -

미카게는 유이치에게 사라지지 말고 돌아오란 말을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났고, 미카게가 도쿄로 돌아오는 날 미카게가 묵고 있는 여관으로 유이치의 전화가 왔다. 도쿄라고. 내일 마중을 나온다고...

달빛 그림자
사츠키는 두달전 사랑하는 히토시를 잃었다. 4년동안 곱게곱게 쌓아온 사랑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하느님 바보, 나는 히토시를 죽도록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사츠키는 그날부터 조깅을 시작했다. 새벽,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에서 사츠키는 우라라라는 여자를 만났다. 묘한 느낌의 여자였다.
사츠키의 히토시에게는 히라기라는 남동생이 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인 유미코와 사랑하는 형 히토시를 함께 잃었다. 그리고 그날 부터 히라기는 유미코의 유품인 교복을 입고 다녔다.
사츠키는 조깅이란 것으로, 히라기는 유미코의 교복으로 슬픔을 대신하고 있었다.
지워지지 않는 상처. 잊고 싶지 않은 사람들...

사츠키는 그후 우라라와 다시 만났다. 그리고 우라라는 어느날 몇시에 꼭 다리로 나오라고 했다. 백년만의 우연이 겹치는 순간이 온다고.
사츠키는 그날 새벽 다리를 가운데 두고, 히토시를 만났다. 환하게 웃음지으며 손을 흔들고 가는 히토시를... 그리고 그날 히라기가 찾아왔다. 꿈속에서 유미코를 만났다고. 미소를 지으며 교복을 가지고 갔고, 그후로 교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오랜 시간, 강바닥을 헤매는 고통보다는, 손에 쥔 한줌 사금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히토시.
나는 이제 이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시시각각 걸음을 서두른다. 시간의 흐름은 막을 수 없으나, 어쩔 수 없다. 나는 갑니다.
한차례 여행이 끝나고,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된다. 다시 만나는 사람이 있고,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나도 모르게 사라지는 사람, 스쳐 지나가는 사람, 나는 인사를 나누며 점점 투명해지는 기분입니다. 흐르는 강을 바라보면서, 살지 않으면 안됩니다. 
저 어린 시절의 흔적만이, 항상 당신 곁에 있기를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손을 흔들어주어서, 고마워요, 몇 번이나 몇 번이나, 흔들어준 손, 고마워요.

                                        -본문 中 -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은 내가 참 좋아하는 책이다. 사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이라곤 읽은게 달랑 세권이 다이지만, 그중에 제일 좋아하는 책이다.

키친은 세가지 이야기다.
혼자가 된 미카게 이야기. 혼자가 된 유이치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츠키와 히라기이야기.
세가지 이야기 이지만, 두가지 이야기이다.

뭐, 그런게 중요한 건 아니고..

키친이라는 책이 담고 있는 건 치유다.
치유(治癒)...

이 책 역시 모든 주인공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란 걸 접했다.
그것도 아주 젊은 나이에.
분명 보통 그 또래라면 거의 겪지 않을 슬픔이고 상실이다.
그런 아픔과 상실을 가진 이들이 그 상실과 아픔을 어떻게 극복해나가는지.
그리고 어떤 삶을 선택하는지...

뭐랄까..
이 이상은 말로서 설명하긴 힘들다.
원래 치유라는 개념이 말로서는 설명되기 힘든 부분이 아닌가.

어쨌거나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저렸고, 콧날은 시큰거렸고, 결국 못난 눈물 한 방울이 찔금 나왔다.

이렇게 뼈마디가 시리도록 아니 마음속까지 시리도록 차가운 겨울 바람이 부는 추운 날..
키친은 내게 봄바람을 가져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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