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빙하기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양억관 옮김 / 좋은생각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오기와라 히로시의 작품은 요번이 처음이다.
책 표지의 작가 소개를 보고, <벽장 속의 치요>를 쓴 작가란 것을 알게 되었는데, 예전부터 관심있던 작가라 무척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난 그렇게 그의 신작인 <네 번째 빙하기>를 읽게 되었다.

네 번째 빙하기.
사실 지구의 네 번째 빙하기인 뷔름 빙기는 이미 1만년전에 끝났고, 지금은 네 번째 간빙기이다.
그렇다면, 제목의 네 번째 빙하기란 무엇일까?

소설의 주인공 와타루는 유전학 연구실의 조수이자 싱글맘인 엄마와 둘이서 산다.
생긴 것도 성격도 사고 방식도 그를 둘러싼 세계의 사람과 다른 와타루는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의 적대 속에 살아 간다.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데다가, 일본인처럼 생기지 않은 와타루는 속칭 '튀기'라 불리며 친구조차 없다.

어릴 때는 갑자기 비명을 지르고, 실내에 있는 것을 싫어하고, 집중을 잘 못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녀 ADHD(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장애)라는 진단을 받지만, 엄마의 긍정적 사고방식과 사랑으로 와타루는 무럭무럭 자라난다.

그러던 어느 날 와타루는 책을 보다가 크로마뇽인에 대한 자료를 보게 되고, 자신의 생김새나 행동등이 크로마뇽인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여, 자신을 크로마뇽인의 후예라 생각한다. 그리고 크로마뇽인들이 살었던 습성대로 돌도끼를 만든다거나 돌칼, 창, 낚시 바늘등을 만드는 등 점점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어간다.

얼핏 보면 엄청 황당한 내용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동에 관한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책을 차근차근 읽으면서 내 생각이 틀렸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엄마가 비밀로 부치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비밀.
그리고 자신이 누군가에 대한 의문.

아버지가 없다는 이유로,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배척 받고 손가락질 받아야 하는 입장은 와타루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크로마뇽인의 후예라 납득하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게 한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와타루는 쿠로라는 버려진 개를 만나 친구가 되고, 사치라는 여학생을 만나 사치와도 친구가 된다. 그때까지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던 와타루는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게 된다. 와타루에게도 드디어 친구가 생긴 것이다.

사치는 부모님과 살고 있지만,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에 폭력을 행사하고, 어머니가 돈을 벌고 있다. 따라서 전학생인 사치 역시 그 마을에서는 이방인이라는 존재에 불과하다.
어쩌면 이 둘이 친구가 된 건 그 이방인이란 공통점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와타루는 자기와 사치의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비슷한 아픔을 겪는 사치에게 동료의식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아버지가 없어서 고민하고 사치는 있어서 고민한다. 우리는 자신의 껍데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달팽이와 소라게 같은 존재였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소라게와 달팽이는 껍데기를 서루 바꿀 수도 없다. (148p)

와타루는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육상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와타루에게 또다른 세계를 열어 주었다. 그러면서 와타루는 조금씩 학교라는 조그마한 사회에 적응해 나간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고, 와타루는 달리기에서 창던지기라는 종목으로 변경한 후 선수로서 자신을 조금씩 조금씩 단련해 나간다.

그렇게 조금씩 친구도 생기고 자신의 능력도 인정받아 갈 무렵, 어머니가 말기암이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선고를 받는다. 그리고 그때 밝혀진 아버지의 비밀... 와타루는 자신의 진짜 아버지의 정체에 대해 듣고는 아연실색한다.

고교 졸업 전 어머니의 사망 후 와타루는 러시아로 가서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와 재회하지만, 그것은 와타루에게 실망만을 안겨주었다. 와타루에게는 차라리 크로마뇽인이 아버지라고 여기거나 아이스맨이 아버지라고 여겼던 시기가 더 좋았던 것이다.

와타루는 박물관 한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아이스맨을 훔쳐, 눈덮인 산으로 가서 그가 있어야 할 원래 자리로 되돌아 가게 한다.
이 행위는 와타루가 이제껏 품고 왔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과 결별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오기와라 히로시의 <네번째 빙하기>는 성장 소설임과 동시에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와타루가 기억하는 네 살때의 일부터 열일곱살이 될 때까지 와타루가 세상에 대해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을 때로는 유머스럽게 때로는 담담하게 서술해 나간다.

자칫하면 어둡고 우울하게 흐를 수 있는 싱글맘과 혼혈아의 이야기를 이렇게 산뜻하게 묘사해 내기란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가녀린 엄마가 와타루를 키워낸 과정은 눈물 겹지만, 오히려 와타루가 자신을 크로마뇽인의 후예라 생각하며 스스로 위안을 얻는 부분이 솔직히 더욱 가슴 아팠다. 

어린 아이에서 소년이 되어 사춘기를 겪고, 어른이 되기까지의 와타루는 참으로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 그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막상 현실과 부딪혔을 때의 와타루의 반응, 그리고 그가 내린 결론에 난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제 와타루가 살아 왔던 네 번째 빙하기는 끝났지만, 와타루의 말처럼 내일 다시 빙하기가 찾아 온다해도 와타루는 사치와 함께라면 얼마든지 다시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난 와타루뿐만이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각각의 빙하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을 견디고 해빙기를 맞이할 때까지 묵묵히 앞을 향해 걸어가야 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이라 생각한다.
모든 것은 스스로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와타루가 스스로 정답을 구하려는 노력을 했듯이.

<기억에 남는 한마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네 주제를 알아라. 그래도 좋아. 내 주제는 어른이 된 후에 알면 돼. 내가 알고 싶은 건 내가 어떤 존재인가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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