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모든 순간들 - 서로 다른 두 남녀의 1년 같은 시간, 다른 기억
최갑수.장연정 지음 / 인디고(글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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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모든 순간들

 

내가 참 좋아하는 작가인 최갑수님. 신작이 나왔다기에 두 번 보지 않고 바로 신청했더랬다. 알고 보니 장연정이라는 작가님과 함께 쓴 책인데, 몰랐던 작가라 설레임마저 생겼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모든 순간들에 대해 말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순간 순간 사물을 본 기록들. 남 녀가, 두 작가가 같은 시간을 보내며, 같은 물건을 보며 생각한 것들이 책에 담겨있다.

 

더 좋았던 것은 사진들이었다. 여행 작가인 두 분의 사진과 글 들이 너무 빠르게만 살았던 '순간'을, '현재'를 보게 하는 것 같다. 달리기에 지쳐 말라가는 나에게 "조금은 천천히, 때로는 멈춰서 주위를 한 번 둘러봐. 순간을 누려봐."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 남자는 조금은 센치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며, 그 시간을 여행하며, 살아가며 잡은 순간들. 그리고 사물들.

 

그 남자의 봄은 꽃을 보는, 꽃이 피는, 꽃이 지는 계절이고, 그 남자의 여름은 여행하기 위한 계절이다.

그 남자의 가을은 돌아와 휴식하는 계절이며, 그 남자의 겨울은 깨닫고 배우는 시기-

 


 

여행을 통해- 그리고 인생이란 여행을 하면서 그는 어떤 순간들을 붙잡았을까?

 

내가 있는 곳은 평일의 오전 11시다.
파주, 런던, 프라하, 하노이, 도쿄, 상파울루,
베르겐, 시애틀이 아닌
평일의 오전 11시.


브람스가 흘러나오는
커피향이 증발하는
바람이 잠시 멈췄다 가는
베란다 너머 적란운이 점점 두터워지는
섭씨 29도, 고기압의 가장 자리에 위치한
평일의 오전 11시.


여행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는 풍경들……


우리는장소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 존재한다네.

나는 그의 말들에서 일상을, 순간을 붙잡으라는 말이 와 닿았다.

그는 일상이 훌륭한 여행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 같다.

우리는 얼마나 멋진 여행들을 순간순간 놓치고 있는지....!

 

그 남자와 그 여자는 같은 사계절 속에 있었고, 같은 사물들을 바라본다.

신발, 냉장고, 스웨터... 기타 등등.

 나는 책을 보면서 냉정과 열정 사이를 보는 듯 했고,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보는 듯 했다. 같고도 다른 시각에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같은 1년 사계절인데, 그 남자와 그 여자의 달력이 다르다. 그 여자는 월은 걸어가고, 그 남자는 년은 흘러간다.

 

 

하루는 정말 스물네 시간이 맞을까.
가만히 앉아 흘러가는 초침을 바라보고 있으면,
뚜벅뚜벅 시간이 걸어가는 소리와 함께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살아 있고, 시간은 흘러간다.
초침이 예순 번을 걸어가면 1분. 그렇게 다시 예순 번.
그렇게 다시 스물네 번.
이렇게 까마득한데, 이렇게 긴데,
왜 그렇게 눈 깜작할 새 지나갈 수 있는 걸까.
나의 하루는.

 

그의 일상도, 그녀의 일상도, 나의 일상도 그렇게나 빠르다. 시간은 긴데..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오늘도 총알처럼 시간을 흘러가고 있는데, 내가 붙잡은 일상은 얼마나 되는지 반성이 됐다.

 

생각해보면 일상이란
내가 발견해가는 만큼 변한다는 생각이 든다.
색칠해 나갈수록 예쁘게 완성되는 그림처럼.

 

일상이란 여행 속으로 걸어들어가

오늘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발견해 봐야 겠다.

퍼즐조각을 모아 인생이란 커다란 그림을 아름답게 그려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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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신은
한스 라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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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은 얘기나 하자고 말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래 어느 날 갑자기 라는 단어가 어울릴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그에게 '신'이 나타났다.

모든 사건은 순식간에, 그리고 정신 없이 나타났다.

이혼한 아내의 현 남자에게 코를 맞아 코뼈가 부러져 간 병원에서 만난 한 광대가 돈을 내밀며 심리 상담사인 야콥에게 상담을 요청한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누가 나에게 와서 "내가 신이오!"라고 말하면 어떻게 반응할 지 생각해 봤다. 음, 그가 심리 상담가라서 일까 아니면 내가 일반 사람이라서 일까? 나는 야콥과는 좀 달리 반응했을 것 같다.

 

"이제는 신도 세상의 모든 걸 유머러스하게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다른 할 일이 없소." 그의 미소가 서서히 우수 어린 표정으로 변해 간다. 그는 묵묵히 바닥을 내려다본다. "이건 진실이오, 야코비 박사. 나는 정말 그렇단 말이오." 그가 몸을 내밀더니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난 신이오. 우리끼리 얘기지만 난 많이 망가졌소. 당신이 날 도와주면 좋겠소. 야코비 박사."

 

"전지전능한 절대자?" 바우만이 이렇게 반복하고는 이 말을 음미한다. "안타깝지만 그건 오래전 이야기요. 나는 더이상 전지전능하지 않소. 지금도 그렇다면 내가 여기 이렇게 앉아 있겠소?"

 

"신이 노름꾼이라고요? 거참 흥미롭네요. 예전에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했죠.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고."
"나도 알아요. 아인슈타인은 낄 데 안 낄 데를 모르고 아는 척하기 좋아하는 인간이죠. 신은 주사위를 던질 뿐 아니라 룰렛도 아주 좋아해요. 블랙잭은 물론이고. 심지어 가끔 포커도 쳐요. 생각해 봐요. 도박꾼이 아니라면 어떻게 인간 같은 족속을 만들 생각을 했겠소?"

 

졸지에 자칭 '신'이며, 타칭 '사칭가'인 아벨의 심리 상담가가 된 야콥은 아벨에 대한 상담을 하기 위해 아벨과 함께 하는 여행을 떠난다. 아벨은 야콥을 천천히, 그리고 완전히 뒤흔든다.

아벨은 전지전능하지도 않고 완벽하지도 않고, 실수투성이며, 심지어 인간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신'으로 나온다. '신'에 대한 많은 관념들이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유머있는 표현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신'이라 주장하는 아벨은 너무나 '인간적'으로 보인다.

 

"게다가 나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여러번 던졌어. 선은 뭐지? 악은 뭐지?" 아벨은 피곤하게 위스키를 홀짝거린다. "이 술도 어떤 상황에서는 약이 되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사람을 개망난이로 만들기도 해. 돈도 그렇지 않아? 사람들은 돈으로 진짜 슬기로운 물건들을 많이 구입하지만, 돈은 지구상의 모든 나라를 혼란 속에 빠뜨릴 수도 있어. 아무리 아름답고 고결한 일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추악하고 비열한 것으로 바꿀 방법이 있다고." 아벨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그래. 내 상황이 그래. 나는 세계사를 인간과 함께 건너오면서 모든 걸 더 나은 쪽으로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결과는 어떻게 됐어? 헛수고였어.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어! 결국 나는 완전히 실패했어. 세계를 둘러봐! 어디에서건 굶주림과 전쟁, 자연 재앙, 탄압, 불의, 환경 파괴가 판을 치고 있잖아. 또 뭐가 있지?"
 나는 침대 위에서 피곤한 몸을 간신히 버틴다. "아벨, 이 세상이 꿀처럼 달콤하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것까지 설명해 줄 필요는 없어. 어쨌든 이 행성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럼에도 인생을 그리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
 아벨이 나를 바라본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내가 이런 어리석은 망상을 버리면 아주 잘 살 수 있다는 뜻이군."
 "뭐.... 생각해 봐. 불행한 신으로 사는 것보다 행복한 서커스 광대로 사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지 않겠어?" 내가 약간 목소리를 높인다.
 "불행하더라도 난 신이야. 신으로 살 수밖에 없어.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하나고?" 내가 되묻는다. "신도 돕지 못하는 일을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돕겠어?"
 아벨이 몸을 내민다. "야콥, 인간들 없이는 내가 뭐겠어? 인간이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냐. 나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을 때만 움직일 수 있어. 아무도 선에 관심이 없다면 나는 힘을 쓸 수 없다고. 그게 바로 내 문제야.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무기력증은 믿음을 잃어 가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날수록 점점 커지고 있어. 이해하겠어? 나의 탈진은 곧 세상의 탈진이고, 나의 의욕상실은 곧 세상의 의욕 상실이야!"
 침묵. 나는 생각한다. 아벨이 아주 근사한 이론을 짜 맞추어냈어다고. "내가 자네를 위해 정확히 뭘 해줬으면 하고 바라는 거야?"
 "내가 뭔가 실수를 한 게 분명해. 인간들이 다시 나를 믿을 수 있도록 그 실수가 뭔지 찾아낼 수 있게 도와줘." 그가 절박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 전에 자네가 나를 먼저 믿어 줬으면 좋겠어. 내 심리 치료사조차 나를 미치광이로 여기는 마당에 내가 어떻게 인류에게 나를 믿으로라고 할 수 있겠어?"
 나는 아벨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그러나 입을 열지도 않는다. 내가 그의 망상을 진실로 받아들여야만 그를 치료할 수 있다는 논리는 정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영리한 노림수다.
 그가 웃는다. "잘 생각해 보게, 야콥. 나는 자네 생각을 읽을 수 있어."
 "잘됐군.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까."

 

어쩜 이리 인간적인 질문인지. 나는 이 단락에서 너무나 인간적인 아벨의 모습과 작가의 고민을 볼 수 있었다. 저자의 신은 어떤 존재일까? 아벨만 보자면, 무기력하지만 인간을 위해 뭔가 해주고자 노력하는 모습일 것 같다. 더불어 유머있고, 도움을 청할 줄 아는, 그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겨우 20년 갖고 뭘 그래? 물고기 한 마리가 용기를 내어 뭍으로 올라오기까지도 수억 년이 걸렸어. 게다가 난 할 일도 무척 많았어."

 

"코미디" 아벨이 밝게 대답한다. "영화에서는 인생의 수수께끼가 다 해경 되잖아. 이거 누가 한 말인지 알아?"
"모르겠는데."
"그랜드 캐니언의 스티브 마틴이 한 말이야."
"그래서? 자네는 인생의 모든 수수께끼를 풀었나?"

 

아벨의 몸 안에 갇힌 '신'은 '아벨'이 되어버린 듯 했다. 세상에, 죽기가 두려운 '신'이라니... 정말 웃을 수밖에 없다. 작가의 상상력과 유머력에 읽으면서 계속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보면 유머가 있을 뿐 아니라, 그 안에 고민과 생각이 있고, 철학이 있으며 성찰이 있었다. 둘 다 잡기가 쉽지 않은데... 아벨이 '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이 '멋진' 것은 사실이다.

 

나도 따라 웃을 수밖에 없다. 크리스마스이브의 늦은 오후다. 이젠 깨끗한 속옷도 가져왔고, 집에 가면 와인과 미식가의 식탁도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함께 만찬을 즐길 사람도 있다. 그것도 자기가 신이라고 주장하는 남자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지만 아름다운 상상인 건 분명하다.

 

"아니, 그럼 그것 말고 믿을 게 뭐가 있소? 감정만큼 구체적이고 생생한 건 없소. 그래서 사람들이 지식이 아닌 사랑과 행복, 우정 같은 걸 동경하는 거 아니겠소?"

 

나는 방금 깨달은 게 있었다. 아벨 바우만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은 광대든 신이든 원칙적으로 아무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다. 또한 아벨이 내게 보여 준 것이 진짜 기적이든 눈속임 마술이든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아벨의 체험이 나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신이 있다고 해도 더 이상은 신에게 요구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야콥은 아벨의 과거를 되짚으면서 그 자신에 대한 것들도 생각해 보게 된다. 삼촌에게 받은 거액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자신과 이혼한 아내, 매일 술을 드시던,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와 명예를 중시하고 가족이 함께 살던 집을 지키는 은행가가 된 동생을 예뻐하며 가난한 심리 상담가인 야콥에게 잔소리를 하는 어머니, 훌륭한 은행가로 성공한 듯 하지만 결국 범죄자가 되어 쫒기게 된 동생.

 흥미로웠던 건, '만약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이었다. 야콥은 아벨에게 그가 신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이 없었더라면... 세상이 어떻게 되었을지 보여달라고 했다. 내가 없었더라면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 더 좋아졌을까 더 나빠졌을까? 만약은 만약이기에 나는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이 장면에서 솔직히 스쿠르지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스쿠르지는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봤지만 야콥은 자신이 없는 현재를 봤다는 게 좀 다르달까?

 이 책이 흥미로운 또 하나의 이유는 신의 죽음을 다뤘다는 것이다. 신이 죽다니... 신이 과연 죽을 수 있을까? 죽는 존재를 전지전능하다고 말할 수있을까? 죽을 수 있는 존재가 신이라고 불리기에 합당한가? 죽음이 두렵다고 했던 아벨은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솔직히 너무나 갑작스런 전개였다. 그렇게 아벨은 나타난 듯 사라졌다.

 

나는 물 속으로 잠수하는 그의 뒷 모습을 보며 생각을 정리해 보려 한다. 그러나 정리가 쉽지 않다. 다만 침몰하는 호화 유람선 안에서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을 구하려고 목숨을 걸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묘한 행복감을 느낀다.

 

"하늘이여, 저희를 도와주소서!" 라이터가 고개를 들고 외친다.
"당연히 도와주겠죠!"
나는 차가운 물 속으로 뛰어든다.


 

인용구 중에 "아벨 바우만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은 광대든 신이든 원칙적으로 아무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다. 또한 아벨이 내게 보여 준 것이 진짜 기적이든 눈속임 마술이든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아벨의 체험이 나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하는 문장이 참 맘에 든다. 광대든 신이든 원칙적으로 아무 차이가 없다. 그가 신인지 미치광인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과연 야콥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다. 신의 윙크인 호화 크루져 여행에서 타이타닉처럼 극단적인 사고가 일어 난다.

 

과연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신은 불완전하다는 것일까? 아니면 신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진리일까?

나는 신은 물론 알 수 없고, 작가의 생각마저 알기 어렵지만,

한 가지는 안다.

이 책이 재밌다는 것 말이다.

 

나도 다시 차창으로 고개를 돌려 미친 듯이 휘날리는 눈송이를 지켜본다. 우리가 이렇게 대화하는 동안에도 수백 킬로미터씩 우주 공간을 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묘한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다. 우리 인간은 무언가를 알고 있다고 믿기에 그것을 믿는다는 것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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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문 인 파리
조조 모예스 지음, 이정임 옮김 / 살림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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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문 인 파리


허니문 인 파리는 ' 조조 모예스의 신작으로 책이 발간 되기 전부터 기대가 되었던 책이다. 과연 파리의 허니문은 어떤 모습일지, '그' 조조 모예스가 어떻게 그렸을지 말이다.


이 책에는 두 커플이 나온다 1912년도의 커플과 2002년도의 커플. 파리에서 허니문을 보내는 이 시대를 뛰어넘는 두 커플의 연결은 에두아르의 '화가 난 아내'라는 작품이다. 이 그림이 궁금해져 열심히 찾아봤지만, 찾지 못했다. 다만 에두아르 르페브르는 에두아르 마네를 차용한 인물이 아닌가 싶다.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매장을 사진들이었다. 파리의, 그리고 연인들의, 부부의 사진들이 글의 한쪽 면을 차지 하고 있었다. 개중엔 여백에 책 안의 글을 적어 놓은 부분도 꽤 눈에 뛰어 좋았다. 책의 좋은 구절들을 써 놓아서 좋았다.

 


1912년의 커플의 상황과 2002년도의 커플의 상황은 꽤나 다르다. 12년의 커플은 가난한 화가남편과 점원이었던 아내가 있고, 2002년에는 신혼여행보단 사업가와의 미팅이 중요한 남편과 그런 남편에게 실망하고 애정을 갈구하는 아내가 있다. 


"당신이 내 그림을 그리고, 또 아무도 나를 당신처럼 바라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나는 당신 사람이었어요. 당신은 나의 가장 좋은 면만을 보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내가 아주 근사한 사람이 된 것 같았어요."

 

"사랑스러운 내 아내. 당신은 이것만 기억하면 돼. 당신을 알고 나서야 나는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


2002년의 아내는 신혼여행지에서조차 혼자인 자신이 싫고, 1912년의 아내는 남편이 못난 자신을 내두고 매력적인 모델들과 전처럼 무분별한 생활을 할까봐 하는 걱정으로 화가 난다. 연도도, 처지도, 사람도 다른 두 커플은 시간이 지나도 우리의 관심은 여전히 사랑이며, 사랑은 언제나 쉽지 않지만 사랑만큼 쉬운 것도 없다는 걸 보여준다.


'어쨌든 이런 게 결혼생활이다. 양보와 타협의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적응하는 게 힘들어요. 내가 결혼생활에 잘 맞는다고 생각 했었어요. 지금은, 정말 모르겠어요. 그것에 도전할 만한 기질이 있는지 확신이 없어요."


양보와 타협의 기술이 필요한, 적응이 필요한 일... 나는 아직 결혼을 해 보지 않았고, 그러므로 신혼여행을 가본 적이 없으며, 심지어 파리도 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런 게 결혼이라면 신중히 고려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부인의 결혼생활에서 가장 큰 위험 요인은 부인 남편이 아니에요. 부인이, 그리고 부인 남편이 걱정해야 하는 것은 소위 이 의논 상대의 조언이에요."


친구라고 소개해 준 사람보다 나은 집시 여자의 말이다. 의논 상대를 잘 골라야 한다는 충고의 말. 전에 화가 남편이 모델로 삼았던 친구로 지내라는 여자가 심어놓은 의심의 씨앗이 둘 사이를 갈라 놓았듯, 똑같이 모델을 했던 집시 여인의 말은 밤거리를 떠돌았던 아내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 두 커플의 공통점은 앞서 말했듯이 '화가 난 아내'들이다. 어떤 그림인지 정말 궁금하다. 1912년에 그려진 그림이 2002년도의 한 커플에게 어떻게 적용이 되는지, 스토리텔링이 잘 된 것 같다. 아쉽고도 좋은 점은 책이 짧아서 후루룩 봤다는 점 정도? 어떤 가슴을 울리는 글이 나올까 기대했는데, 이번엔 막 결혼한 신혼부부들과 그들의 불안과 그리고 희망을 그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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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오스트로 백작부인 - 최신 원전 완역본 아르센 뤼팽 전집 12
모리스 르블랑 지음, 바른번역 옮김, 장경현.나혁진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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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오스트로 백작부인


이 글은 아르센 뤼팽은 스무살의 기록이고 동시에 첫 모험의 기록이며, 첫 사랑의 기록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처음 든 생각은 뤼팽의 모험이 놀랍다거나 칼리오스트로 백작부인에 대한 감상이 아닌, 사랑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고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뤼팽은 '과거'가 있는 남자였다. '아르센 뤼팽'은 숨겨진 이름이었고, '라울 당드레지'로 살아가고 있었다.


"....라울 당드레지... 아르센 뤼팽... 한 조각상의 두 얼굴! 이 중 어떤 것이 살아 있는 자들의 태양으로, 영광으로 빛을 발할까?"


뤼팽, 아니 아직은 라울인 '그'는 나쁜 남자였다. 클라리스의 마음을 훔치고 나서 조세핀을 만나고 그를 책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라울 당드래지는(훗날 아르센 뤼팽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지겠지만 일단 이렇게 부르기로 하자) 이제껏 한 번도 사랑을 해본 적이 없었다. 사실, 기회가 없었다기보다 시간이 없었다. 야망에 불타기는 했으나 명예와 재산과 권력에 대한 꿈을 어느 분야에서 어떤 방법으로 이뤄야 할지 알지 못했던 라울은 언제든지 운명의 부름에 응할 준비가 되어 있도록 모든 방면에서 전력을 다했다. 지성, 재치, 의지력, 신체적 민첩함, 근력, 유연성, 끈기 등 갖고 있는 모든 재능을 최대한 계발했으며 노력하면 할수록 그 한계가 물러나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도 놀라고 있었다.


한 여자의 마음을 빼앗은 남자는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뺏기며 자신의 사랑을 열렬함을 고백한다. 처음 보는 아름다운 신비한 여인인 칼리오스트로 백작부인. 아니 그 부인의 딸, 조제핀 발사모, 아니 조진. 그리고 남자는 이 사랑이 첫 사랑이며 영원할 것이라 말한다.

 

 

누구나 능력껏 살아가는 법이다. 상황에 따라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기적이란, 이해되지 않는 일을 일컫는 말이지. 예를 들어, 우리가 80킬로미터를 하루 만에 주파했다고 쳐.... 당신은 기적이라고 감탄하지. 하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그 거리를 뛴 것이 두 마리 말이 아닌 네 마리 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거야...."


여기서 양면적인 인물들이 몇 나온다. 라울과 뤼팽이란 두 이름을 가진 남자와 보마냥이라는 신부이지만 욕망 넘치는 남자, 그리고 여러 이름을 가진 성모와 같은 얼굴을 한 냉정한 여자 조진. 그녀에게 많은 이름이 있지만 난 조진이라는 이름이 제일 '그녀'스럽다고 생각한다. 칼리오스트로 백작부인보다 말이다.

책을 읽으며 처음엔 나쁜 남자 라울을 보았고, 그보다 지나서는 조진의 매력에 빠지고 말았다. 얼굴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여자의 지적 매력에 말이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나쁜 남자 라울의 매력을 보았다.


마음 속 깊이 라울은 자문하고 있었다, 자신의 가장 냉혹한 적은 자기가 그토록 열렬히 사랑하고 있으며 또한 자기를 열렬히 사랑하는 이 온화한 얼굴의 여인이 아닐까 하고.


이 여자는 적인가? 도둑? 어쩌면 살인범인가? 아니었다. 그저 여자, 무엇보다 여자일 뿐이었다. 하지만 얼마나 대단한 여자란 말인가!


조진과 라울의 관계는 무어라 말하기 어렵다. 둘은 연인이며, 라이벌이며, 적이다.


실제로 아르센 뤼팽의 첫 모험이라기 보다는 뤼팽이 되기 전 '라울'의 첫 모험이랄까? 두 이름을 가진 자신만만하며 실제로도 능력있는 한 젊은이의 사랑에서 시작된 엄청난 모함이랄까? 이 글은 인간의 양면적인 모습이 잘 드러나 있는 것 같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고 흥미로웠던 것은 책의 말미에 있는 에필로그였다. 그 짧은 글은 다음 내용의 예고편이었으며, 뤼팽의 일생을 말해주는 듯했다. 그 에필로그로 인해 나는 다음 권에서도 뤼팽을 만나게 되고, 다시 한 번 그의 매력에, 모험에 빠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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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의 시계 종소리 - 최신 원전 완역본 아르센 뤼팽 전집 11
모리스 르블랑 지음, 바른번역 옮김, 장경현.나혁진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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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센 뤼팽 전집 11-여덟 번의 시계 종소리

 

난 추리 소설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다. 셜록 시리즈는 말할 것도 없고, 유명한 괴도 아르센 뤼팽은 과연 어떤 인물인지 어떤 모험을 할지 기대가 부풀었다. 나는 뤼팽이 괴도로 유명하기 때문에, 어릴 적 티비 애니메이션이 보여주는 괴도 처럼 이상한 가면을 쓰고 망토를 휘날리며 뭔가를 훔치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여덟 번의 시계 종소리'는 '레닌공작'의 모험담이다. 갑자기 왠 레닌 공작?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뤼팽과 레닌 공작이 동일 인물이라고 암시하는 글이 글의 시작 전에, 그리고 글 중간에 있다.

 이 글은 물건을 훔치는 괴도 뤼팽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가 반하게 된 한 여인의 심장을 훔치는 8번의 모험담이며 로맨스이다. 그리고 물건을 훔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이다. 


"……첫번째 연결고리를 찾았으면 좋든 싫든 마지막 연결 고리까지 찾아야 하겠지요. 이보다 재미있는 일도 없을 겁니다."


"우리가 볼 줄 알고 추구할 줄 안다면 삶이란 그런 것입니다. 모험은 곳곳에 있지요.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 안에 있는 가장 현명한 사람의 가면 뒤에 말입니다. 우리가 원한다면 마음을 흔들어놓고 선행을 하고 희생자를 구하고 부당함을 제대로 잡아줄 기회가 있는 겁니다."


여기서 뤼팽은 뭔가 신비하고, 지혜롭고, 모험적일 뿐 아니라 매력적이다. 자신의 호기심 충족을 위해 또는 새로운 모험을 찾아 헤메는 것 같아 보이는 이 남자는, 동시에 동정을 느끼고 자비를 베풀고, 선행을 하는 여자를 흔들어 놓는 '매력적인' 남자다.

 이 이야기는 여 주인공 오르탕스의 이야기로 시작이 된다. 남편은 정신병원에 갇히고, 돈은 숙부에게 다 잡혀 있는, 아무것도 아닌 남자와 도망치려는 가련한 여자. 레닌 공작은 이 여자에게 반하게 되고, 이 여성을 구한 뒤, 모험을 제안한다. 여덟 번의 모험 뒤 12월 5일 고성의 낡은 시계에서 종소리가 울릴 때, 자유를 고를지 자신을 고를지 결정하라고 말이다.


"모험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저 모험을 즐기는 사람 중 하나이지요. 삶은 타인의 모험이든 자신의 모험이든, 모험하는 그 순간에 가치 있습니다. 오늘 했던 모험이 당신을 혼란스럽게 한 이유는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을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모험도 이 못지않게 흥미진진하답니다. 시험해보겠습니까?"


레닌의 장담만큼이나 그들의 모험은 사소하지만 흥미진진했다. 테레즈와 제르멘, 영화 속 단서 같은 모험도 흥미진진했지만, 가장 재밌었던 건 장 루이 사건이었다. 두 엄마를 가진, 그래서 어머니의 성이 두 개이고, 성 없이 이름만 둘인 장 루이의 이야기는 진정 흥미로웠다.

 뤼팽, 아니 레닌 공작이 사건을 풀어가는 그 과정도 참 흥미로운데, 이 책에서 그는 천성이 사기꾼인 사람 같다. 어쩌면 그렇게 사람을 잘 떠보고, 잘 속이는지! 그러나 한 편으로 그 일이 누군가를 돕기 위함인 게 그의 매력이며 이 책의 매력인 것 같다.


"가장 최고의 모험은 바로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을 때 일어나지요. 전문가가 아닌 한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기회란, 손이 닿을 만큼 가까이 있는데도 잡으려 노력하지 않을 때 갑자기 나타납니다. 기회는 왔을 때 즉시 잡아야 하지요.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면 때는 너무 늦습니다. 기회를 잡으려면 우리에겐 특별한 감각이 있어야 하는데, 마치 뒤섞인 냄새에서 좋은 냄새를 구별하는 사냥개의 후각과도 같은 감각이 필요하죠."


책을 읽으면서 모험이란 거창한 것이 아닌 우리의 일상 가운데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느꼈다. 나는 기회를 붙잡고 있으며 좋은 냄새를 구별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 책은 앞서 말했듯이 레닌 백작과 오르탕스의 로맨스이다. 레닌 공작은 언제나 자신만만하게, 그리고 자신을 매력적으로 모험을 통해 오르탕스에게 어필했다. 보면서 흥미로웠던 것은 레닌의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하는 것이었다. 책의 초반에 그의 외모에 대한 이야기나 나오긴 하지만, 나의 상상을 자극할만 했다. 또 작가의 표현 중, 추상적인 감각과 느낌으로 판단하는 것을 볼 때, 한 번 쯤 실패할 법도 한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우리는 여덟 개의 멋진 모험이라는 책을 끝내야 합니다. 그 책에는 에너지와 논리와 인내와 어떤 미묘함과 이따금 약간의 영웅주의까지 들어 있지요. 이제 마지막 장인 여덟 번째 모험입니다. 알랭그르 성의 괘종시계가 저녁 8시를 알라는 종을 치기 전에 12월 5일에 해당하는 페이지를 완성해야 하고, 그건 당신 행동에 달렸습니다.

 

싸움은 금방 끝날 것이지만 그 결과는 당신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 그리고 성공하리라는 확신에 달려 있습니다.


이 책의 처음과 끝은 오르탕스의 모험이다. 첫째 모험은 그녀를 그녀의 권리를 지닌 채, 성에서 탈출시키는 이야기였다면, 마지막 모험은 모험을 떠나기 전에 조건을 걸었던 행운의 단추를 찾는 내용이었다.


레닌 공작은, 어쩌면 뤼팽은 천부적인 사기꾼이며 도둑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이 글에서 본 그는 신사였고, 모험가였고, 사랑꾼이었다. 다음 권도 정말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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