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세계평화 VivaVivo (비바비보) 21
모리스 글레이츠먼 지음, 최설희 옮김 / 뜨인돌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내 꿈은 세계평화"

 

이 책의 주인공은 이제 14살인 소년 벤이다. 큰 정육점을 4개나 하는 아버지  덕에 잘 먹고 잘 살고,

별 부족함 없이 큰 남자 아이이다. 벤은 어느 날 엄청난 걸 깨닫게 된다.

왜 하필 나지? 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뚫어져라 보았다. 어째서 다른 애들이 아니고 나야? 혹시 다른 애들한테도 일어났는데 아직 모르고 있는 거 아닐까? 벤은 늘 관찰력이 좋다고 자부해 왔는데 일이 이렇게 되도록 알아채지 못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빠에게 물려받은 남다른 관찰력으로 여태 몰랐다니. 정말 말도 안 된다. 

 

벤은 어느 날 놀라운 사실을 깨닫고 그 일에 대해 고찰 한다. 헐벗은 여자가 나온 잡지를 보고, 화장실에 들어가 한 동안 나오지 않으며 자신을 보기도 한다. 그에게는 어마어마한 고민이 있었다.


론은 두려웠다. 이런 느낌이 처음은 아니었다. 늘 타이밍이 엇나가는 느낌이다. 슈퍼마켓에서 카레 재료를 잔뜩 사가지고 나오면 그가 나오자마자 세일이 시작됐다. 급히 대출을 막고 나면 대출 금리가 폭락했다. 집에 돌아오면 가족들이 맛있는 건 모두 먹어치우고 맛없는 빵만 남겨 놓았다. 론은 차고 앞에 늘어선 자신의 값나가는 물건들 우울하게 쳐다보았다. 
"몇 마디면 돼. 하기 싫은 일도 해야지. 그게 인생이잖아."

 

그의 부모는 그가 사춘기가 왔다고 생각헸다. 엄마인 다이는 아빠인 론에게 벤의 성교육을 부탁한다.

론은 자신이 없다.


줄곧 따라다녔던 묘한 느낌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제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벤은 높게 쌓아 올린 잡지더미를 가리켰다. "세상에 이렇게 끔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우린 어떻게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거죠?"

그렇다. 아빠가 얘기하고 싶었던 건 섹스뿐이었던 거다. 세상에는 이렇게 심각한 일이 잔뜩 일어나고 있는데도 말이다. 

묻고 싶은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답답했다. 하지만 벤은 알고 있었다. 답을 알게 된 후에도 힘들고 괴로울 거라는 사실을. 

 

사춘기 소년의 성에 관한 질문을 상상하며 벤의 방에 들어간 론은 더 어려운 질문에 처했다.

타임지의 기아에 대한 기사는 식수의 부족으로 깡마른 헐벗은 원주민의 사진 옆에 있었다.

벤은 한 편으론 성에 대한 질문이 나오지 않은 걸로 안심하며 얼버무리고 자리를 떴다.

벤에게는 답이 없는 질문만 남았다.

론과 다이는 충격에 휩싸여 아들을 쳐다보았다. 얼룩덜룩한 갈색 피부, 사타구니를 감싸고 있는 새하얀 식탁보, 빛을 받아 반짝이는 빡빡머리까지. 이건 정말 서프라이즈 파티, 아니 대형사고다. 

"제 몸은 단단히 묶을 수 있지만, 마음까지 묶을 수는 없을 걸요."

 

아빠, 엄마, 누나 가족들에게 세계평화에 대해 물었지만, 그들은 대답을 주지 않았고..관심도 없었다.

벤은 어느 날 식탁에서 론의 농담과 그 농담에 웃는 가족들을 보며 큰 충격을 받고

가족들이 세계평화에 신경 쓸 수 있도록 충격요법을 강행하기로 한다.

 

첫 번 째는 파티에 선탠크림을 바르고 안경을 쓰고, 식탁보로 옷을 입고, 머리를 미는 것이다.

이 묘사에 떠오른 건 간디였다. 벤은 간디 코스프레를 하려고 했던 것일까?

가족들은 충격을 받고 그를 어떻게 해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그는 그 이후에도 많은 사고를 친다.

아버지의 계약에 나타나 계약이 깨질 뻔 하기도 한다.

 

결국 론과 다이는 벤을 혼내기 대신 무시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편해요?" 벤이 직원을 내려다 보았다. "하루에 4만 명이나 되는 어린애들이 굶어 죽어 가는 현실이 편하냐고요? 아저씨는 그게 편해요?" 주위에서 쑥덕거리던 여자들의 입이 순간 얼었다. 점원은 샌들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는 소년의 엄마를 보았다. 이 여자는 어떻게 이토록 침착할 수 있는 걸까. 벤도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이 문제 많은 세상 속에서 어떻게 이토록 침착할 수가 있는 걸까. 

그래, 물론 엄마 아빠는 가끔 섹스도 해야 하고, 일도 하고, 테니스도 치러 가고 바쁜 건 안다. 하지만 그런 걸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일 년 내내 하고 사는 사람은 없다. 부모님이 세계의 불행을 무시하면서 흘려보내는 시간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엄마 아빠가 세계의 불행에 관심을 보이게 할 방법이 정말 없는 걸까?

 

몸에 하얀 식탁보 하나 걸친 선탠크림을 발라 얼룩덜룩한 갈색피부의 박박머리 소년과 신발을 사러 나왔다?

생각만 해도 '세상에 이런 일이'출연감이다.

다이는 부끄럽고 부끄럽고 부끄러웠지만, 그 상황을 무시하며 태연을 가장한다.

 

그러나 결국 벤의 계속된 저항(?)에 무너지고 만다.

"벤, 집에 돌아가도 네가 할 수 있는 좋은 일들은 충분히 많아."

정말 아무것도 없이 살 수 있을까? 소나무틀 침대와 카펫, 전신 거울이 붙은 옷장, 노란 상판의 책상, 휴대폰, 컴퓨터, 손으로 직접 무늬를 그려 넣은 커튼, 최신식 삼파장 스탠드, 불이 들어오는 지구본까지.....정말 이런 것들 없이 살 수 있을까. 불가능 할 것 같았다. 그 말은 내가 세계를 걱정하지 않는다는 뜻일까? 

 

벤은 그러다 '동지'를 만난다. 모피코트 반대시위를 하며, 닭장에서 닭을 풀어주는 여자를 만난다.

결국 그녀의 집으로 가출 나온 벤은 그녀가 사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식사는 가장 저렴한 캔으로 그것도 돈 걱정을 하면서 먹고,

집은 바깥과 별반 다르지 않은 그녀.

 

결국 벤의 가출은 하루를 못 넘기고 집으로 돌아 오게 된다.

 

벤은 또 한 번의 사고를 치게 된다.

대형육류마트를 열게 된 론의 기념파티에서 벤은 돼지고기 퍼포먼스(?)를 하게 되고,

충격받은 론은 심장이 멎는다.


일주일 전에 중환자실 앞에서 간절히 바라던 소망이 이루어졌다. 일주일간 집중 관리를 받은 덕에 아빠는 깨어났다. 그리고 세계의 다른 곳에서는 수백만 명의 사람이 죽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희생으로 아빠가 깨어난 게 아니라는 걸 벤은 알고 있었기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그건 바로 오글거리게도, 행복이었다. 그녀는 자신과 클레어 사이에 앉아 기지개를 켜고 있는 남편을 보았다. 건강하게 그을린 론은 행복해보였다. 다이는 론에게 다가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마침내, 평범한 한 가족이 평범한 휴가를 오게 되었노라!"

 

론이 살아나긴 하지만, 그는 여전히 워커홀릭이다.

벤은 여전히 세계를 걱정하고 세계평화를 추구하지만, 가정의 평화를 깨트리진 않는다.

다이는 여전히 아이 둘에 치이지만 남편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고

누나인 클레어는 자신감을 찾았다.

 

그건 '오글거리게도' 행복이었다.

 

소년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시위를 한다는 건

새롭게 다가왔고, 흥미로웠다.

소년이 벌이는 일은 외국에서 많이 하는 시위 같았다.

 

이 책을 보면서 소년의 질문은 어느새 나의 질문이 되었다.

세상에 못 먹고, 못 입고, 못 마시고, 못 배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참 잘 살고 있구나.

제 삶에 대해서도, 사회 문제에 대한 저의 관심도도 반성이 되었다.

 

내 꿈은 세계평화는 아니다.

그러나. 세계평화를 바라지 않는 것은 더욱더 아니다.

세계평화가 당연해지는 그 날까지.... 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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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 던지기 직전 꼭 읽어야 할 상사 후배 동료 내편으로 만드는 51가지 - 관계의 신 전미옥이 알려주는 직위 맞춤형 대인관계 실전편 일잘 시리즈 1
전미옥 지음 / 마일스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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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 던지기 직전 꼭 읽어야 할 상사 동료 후배 내 편으로 만드는 51가지"

 

현재는 이직이 잦은 시대이다. 사표 던지기 직전 꼭 읽어봐야 한다는 제목에 끌려 보게 되었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사람이 가장 힘들다는 표지의 문구를 절실히 느끼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걸 어떻게 장담해? 그러다가 또 상사가 맘에 안 들면 회사 옮기려고? 잘 한 번 생각해봐. 어딜 가든 마음에 안 드는 상사, 이상한 상사는 있게 마련이야. 사람의 개성과 성품은 모두 다르지만 상사의 생리는 사실 비슷하거든. 너는 지금 이 산을 넘어야 해. 이 산을 돌아가거나 피하면 또 비슷한 상사를 만나 스트레스 받을 거야. 이직이 최고의 해결책은 아니란 말이지. 그래서 말인데, 너 상사랑 커뮤니케이션은 잘 하고 있냐?"

 

후배 입장에서, 부하 직원 입장에서 1장은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상사와의 커뮤니케이션이라....

나는 전혀 되고 있지 않았던 것 같아서 많은 반성을 하게 했다.

 
상사가 그 자리에 있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상사에게 관리 당하지 않으려면 이처럼 상사를 관리해야 한다. 
상사에게 대드는 당신의 모습을 후배들이 보고 배울 수도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후배에게 대접받고 싶은대로 상사를 대하는 것이 가장 좋다. 
칭찬받고 싶어하는 부하들이상으로 칭찬과 인정에 목말라 있는 사람들이 상사다. 상사도 사람이다.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칭찬받을 기회는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부하나 후배의 칭찬은 생각보다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결코 자제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 쉽게 하는 말로 더럽고 치사해도 인내심으로 버텨야 한다. 상사는 '갑'이기 때문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하면 당신의 눈과 이를 잃을 수 있다. 
기억하자. 당신도 언젠가 상사가 된다는 것을.....부서원이나 팀원을 아우르며 조직의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상사의 자리가 이렇게 스트레스가 많고 부담스러운 자리인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는 것이다. 당신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상사가 상사인 데는 이유가 있고, 상사의 입장에서 볼 때 상사를 이해 할 수 있다. 분명히 당신도 언젠가 누군가의 상사가 된다. 당신이 대접받고 싶은데로 상사를 대접하라.....마음에 확확 와 닿는 말들이다.

이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당신의 칭찬 하나가 상사를 춤추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하는 상사가 어렵고, 상사는 부하가 맘에 안 든다.

이 책은 계속해서 이해를 말한다.

타인을 만족스럽게 하는 방법이 꼭 크고 대단한 것은 아니다. 사소한 태도로 가능하다. 평소에 좀 더 따뜻한 눈빛과 인사말, 친근한 말투, 예의 바른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면 도움이 된다. 

 

말 한 마디, 인사말, 말투, 태도 이런 것 하나로 타인을 만족스럽게 할 수 있다니...

나도 직장에서 많이 써먹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부하직원의 편에서, 상사의 편에서, 동기의 편에서, 여자의 편에서, 남자의 편에서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서로 이해하라고 계속 말하는 것 같다.

처음엔 내 편을 들어 주는 가 싶더니,

 이해할 수 없는 상대의 속마음으로 보여주면서

'야~ 이런 건 네가 이해해야지. 재가 이래서 그래. 이해 못해? 너 손해야. 이해 좀 해줘~'

라고 말하는 것 같다.

동기가 우리가 되고, 상사에게 인정받는 부하보다 부하직원에게 인정받는 상사가 진짜다.

 

'여기, 자기보다 훌륭하고, 덕이 높고, 잘난 사람. 그러한 사람들을 곁에 모아둘 줄 아는 사람 잠들다."

 

멋진 묘비명 아닌가?

후반부엔 남자와 여자의 문제가 나오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문제가 나온다.

남자는 여자 상사에게, 여자는 남자 상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대할 것인가.

실제로 남성은 말의 내용 7퍼센트, 말투 38퍼세트로 상대의 의도 또는 상태를 알아차린다. 이 두 가지를 합해도 전체 판단 근거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말이 내용이나 말투를 조금만 바꿔도, 즉 돌려 말하면 이해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이다. 
또 남자들은 돌려 말하는 것을 잘 못 알아듣는 것 만큼이나 돌려 말하는 일도 거의 안 한다는 점을 염두에 되어야 한다. 
남자들은 말해주지 않으면 '누군가 자신에게 볼만이 쌓여있다'는 것을 잘 눈치 채지 못한다. 
남자는 원래 멀티태스킹이 안 된다. 
다른 일에 집중하다 보면 여자에게 맹생했던 '자기의 말'은 깨끗하게 잊어버릴 뿐 아니라 자신에게 불리했던 상황까지 잊을 수 있는 게 남자다. '기억 못 하는 척'이 아니라 '진짜 기억 못 하는 것'이다. 뭔가 깜빡하고 잊어도 그걸 왜 잊었냐고 추궁해봐야 여자들만 복장 터진다. 

 

연인들만 봐도, 부부만 봐도... 남매만 보아도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똑같은 인간인데 왜 이렇게 다르단 말인가!

남자와 여자는 다름으로 남자 상사와 여자 상사를 다루는 법이 다르고, 남자 부하직원과 여자 부하직원을 다루는 것 또한 달라야 한다. 성차별이니 역차별이니 그런 게 아니라,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의 문제가 나온다.

야구선수 류현진은 이렇게 말했다. "직구보다 변화구에서 왜 더 많은 홈런이 나오는 줄 아세요? 치기는 어렵지만 치기만 하면, 그래서 성공하기만 하면 더 많이 회전하는 변화구가 되고 그거이 힘을 받아 더 멀리 날아가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 앞에 남들보다 힘들고 어려운 변화구가 날라오고 있습니까? 축하드립니다. 당신에게 홈런을 칠 수 있는 멋진 기회가 주어졌군요."

'심플한 커뮤니케이션'에 '감성'이라는 날개를 달아 더 멀리, 더 높이 들어 올려보자. 바로 그것이 조직 생활에서 당신의 인간관계를 한층 빛나게 만들어줄 것이다. 

 

누군가에게 커뮤니케이션은 출세를 막는 장애물이고, 누군가에 사람은 스트레스이고, 누군가에겐 사표의 이유가 되지만.

류현진의 말처럼, 힘들고 어려운 그 사람이 날 더 여물게 해 줄 것이고, 홈런을 날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땅의 수많은 직딩분들(저 포함.ㅋㅋ)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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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하트 -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정아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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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모던하트" 

모던한 심장은 어떤 심장일까? 모던 하트는 헤드헌터인 '미연'의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헤드헌터인 우리 입장에서는 '안 될 가능성이 99퍼센트이니 괜히 업계에 이직쟁이라고 소문만 나지 말고 지원하지 마시라'고 말해줄 수 없었다. 헤드헌터는 가능성이 0.000000001퍼센트만 있어도 열심히 후보자를 들이밀어야 한다. 이 바닥에서는 예상을 깨고 의외의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굴 탓하겠는가. 이직이 잦은 우리들의 시대, 그것이 시대를 대표하는 그의 숙명인 것을. 

 

 

이 책은 정말 현실적이다. 헤드헌터 직업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묘사가 되어있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대해서도 적나라해서 씁쓸할 정도이다.

출신 대학은 입사때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직 할 때도 본다는 걸 알게 되었다.

환상이라는 건 밖에 있기 때문에 가질 수 있고, 현실에 환상따윈 힘들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갑자기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이 섬광처럼 펼쳐지면서 마음에 온수가 차올랐다. 예전에 다녔던 가게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이상한 안도감을 주었다. 그 시절에 나라는 존재가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라고 해야 할까. 

"네, 김미연입니다." 이름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주어 또렷하게 말했다. 순간, 공기 중을 부유하는 듯한 환상은 사라지고 내 앞에는 살아 있는 한 영원히 끝나지 않을 나의 업보-수많은 염원과 의무와 희노애락으로 채워가야 할 '현실'-가 웅장하게 펼쳐젔다

 

이 책은 우리나라 삼십대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

누구는 결혼을 하고, 누구는 직장을 갖고, 누구는 이직을 하고...

그러나 누구는 결혼을 하지 않거나 못하고, 직장을 아직 못 잡고... 이직에 실패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눈 내리는 3월의 밤. 저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왕복 다섯 시간이 걸리는 도시로 올라와 싸락눈을 맞으며 열정적으로 몸을 놀리고 있다. 그것에서 기쁨을 느끼고 있다. 그 감정에 순수하게 빠져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갑자기 저릿한 쾌감이 몰려왔다. 흐물과 나는 지금 싸락눈처럼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날리는 우리네 인간들의 마음을 보여주는 명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김미연'이라는 이 책의 주인공이자 화자를 보면서 정말 씁쓸했다.

'흐물'을 어장관리하면서.. 자신은 '태환'에게 어장관리 당하는 그녀...

40이 다 된 나이에 차장이라는 직위를 뒤에 달았지만,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아이들에 치여 걱정하는 그녀...

여전히 결혼과 가정에 환상을 가지고 있을 뿐 노처녀인 그녀...


모르겠다. 그 장면들이 실제였는지, 혼은 만취한 밤이면 벌 떼처럼 달려드는 집요한 꿈들 중 하나였는지.

전철에 타서도 여자의 말이 계속 뇌리에 맴돌았다. 결혼해도 애도 잘 안 생길걸. 결혼해도 애도 잘 안 생길걸. 결혼이나 아이를 특별히 갈망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얘기를 들으면 덜컥 겁이 난다. 뭔가 엄청난 것을 놓친 것 같은, 대오에서 뒤쳐져 앞사람들을 영영 따라잡지 못하게 된 것 같은 느낌. 

 

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한 권의 소설 안에서 화자는 많은 일을 겪는다.

자신보다 잘난 동생의 가정생활을 보면서 제부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직장에서 정말 좋은 성과를 냈다가 최악의 결과가 오기도 하고,

자신이 좋다고 직접 고백은 안 했으나, 자신과 만나기 위해 적금도 깨고 빛까지 진 남자가 딴 여자와 결혼하고,

자신이 좋다고 만나던 남자에게 이용 당했다가 자고 나니 환상이 깨지고....


지나고 보면 이 봄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 다시 봄이 올 것이다. 이 봄과 똑같지는 않겠지만 새로 오는 봄 또한 오직 하나뿐인 향기로 눈부신 아름다움을 연출해 내리라. 물론 내게도, 가슴이 저릿할 정도로 아름다운 봄이 다시 올 것이다. 살아있기만 한다면, 그러므로 나는 돌아보지 말고 걸어가자. "세상에는 미쳐 인식하기도 전에 지나가버리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렇게 되뇌어 보았다. 그러자 굉장히 세련된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은 이렇게 끝난다. 그녀는 흐물을 사랑한 걸까? 알 수 없다.

이 책의 제목은 모던 하트이다.

모던한 심장은 어떤 심장일까?

화자가 마지막에 말한 세련된 인간...?

나는 씁쓸하고 외로운 것이 아닐까 싶다.

결국 그녀는 아직도 혼자다. 사회에서 혼자고, 가정에서 혼자고.... 집에서 혼자고.

 

나는 이 책의 결말이 열린 결말인 건 맞지만, 새드거나 해피라고 단정지을 순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이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의 끝이고 시작이 아닐까...

 

나도 그녀에게 봄이 오길 기대해 본다.

그녀와 같은 한 명의 직장인 여성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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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 씨의 행복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오유란 옮김, 베아트리체 리 그림 / 오래된미래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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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씨의 행복여행"

 

꾸뻬씨 이야기는 예전부터 많이 들었다. 워낙 유명한 책이기에 언젠간 봐야지 했었지만,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한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꾸뻬씨는 정신과 의사이다.

그는 많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동네에서 가게를 열였고,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와서 자신의 힘듦을 이야기했다.

그는 자신의 일이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맞는 말 같다. 때로 많은 때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의 말을 들어준다는 것 그 하나로 위로를 받곤 하니까.


모든 것을 갖고 있고 많은 행운을 누리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 정신과 의사가 더 많은 걸까? 이런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꾸뻬에게 도움이 되진 않았다. 꾸뻬는 자신이 불행한 사람들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꾸뻬를 만나는 것을 좋아했지만, 꾸뻬는 오히려 마음의 부담만 커질 뿐이었다.  

  

그러나 꾸뻬는 오히려 마음의 부담이 커졌고, 진정한 행복이 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꾸뻬는 결국 행복을 찾아 여행을 떠나게 된다.

 

차는 걸인들을 헤치고 주차장을 빠져나와 도시로 향하는 도로로 접어들었다. 창 밖으로 불타 버린 산들이 다시 보이고, 그들을 바라보던 걸인들은 점점 멀어져 갔다. 태양은여전히 뜨겁게 내리쬐고 있고, 도로는 울퉁불퉁했다. 앞좌석에 앉은 마르쉘은 장총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 꾸뻬씨는 이 나라에서 아마도 행복에 대해 배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물론 불행에 대해서도 많은 걸 배우게 되리라고.  

 

그는 중국에 가고, 많은 나라들에 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작은 수첩에 그가 배운 행복에 대해서 때론 불행에 대해서 적었다.

꾸뻬씨의 여행에는 많은 일이 생긴다. 오랜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원-나잇의 여자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불치병에 걸린 여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하며, 중국 노승을 만나기도 하고, 가난한 지역에 가 가정에 초대받기도 하고, 죽을 뻔 하기도 한다.

그가 만난 많은 사람들 중 흥미로웠던 두 인물은

행복을 물리적인 수치로 계산하려고 했던 과학자와 중국 노승이었다.

둘 다 꾸뻬의 수첩을 보고 행복에 대해 많은 것이 이 수첩에 담겨있다고 했지만,

둘의 보는 눈은 많이 달랐다.

과학자는 실험과 기계를 통해 분석하고 행복의 통계를 내고,

물리적으로 또는 화학적으로 행복을 도출해 내려고 했다.

반면 고승은 허허 웃으며 행복이 우리의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고승의 말이 더 와닿았다.

꾸뻬가 장 미쉘에게 행복하냐고 묻자, 그는 그 질문에 웃음을 터뜨렸다. 꾸뻬는 그 질문이 남자들은 잘 웃게 만들지만, 여자들은 울게 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꾸뻬가 잠시 돌아간 파리에서 제약회사에 다니는 여자친구에게 행복하냐고 묻자 그녀는 울어버린다.

헤어지자는 거냐고.. 그러나 그의 친구 장 미쉘에게 행복하냐고 묻자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같고도 다른 남녀의 심리.. 행복에 대한 것도 그런가 보다.

 

꾸뻬씨가 차량 납치범에게 남치를 당해 쥐 냄새가 나는 비좁은 벽장에 갇혀 비관론자와 낙관론자가 두목에게 각기 꾸뻬를 풀어줄지 말지를 이야기 할 때, 꾸뻬는 수첩을 찢어 '전부 다 걱정거리일 것이다. 우리 함께 이야기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라고 적어서 벽장 밖으로 보낸다. 이 작은 기지 하나로 그는 살아서 나올 수 있었다.


얼마간은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삶이란 어느 한 순간에 정지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사실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다른 것이다. 죽은 쥐 냄새가 나는 비좁은 벽장 안에 갇혀 있던 그날 이후부터 꾸뻬는 매 순간 삶이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그 느낌이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걸 자신도 알고 있다.......꾸뻬는 경이로운 삶에 대한 감동이 남아 있을 동안에 그것을 맘껏 누리고 싶었다. 

꾸뻬는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너무도 행복해서, 운전사와 경호원뿐 아니라 모두가 기뻐하기를 바랬다. 다행히 그곳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그랬다.

  

우리는 많은 때, 삶의 기쁨과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산다.

삶은 죽음에 임박했을 때, 그 때에야 소중함을 느끼고, 감사하고,

살아있음에 기뻐하게 된다.

얼마나 많은 때 나는 살아있음으로 기뻐하는가...

나에게 자주 물어봐야 하는 질문인 것 같다,


에뜨 부 꽁땅-당신은 행복한가

 

당신은 행복한가.....?

나는 이 질문을 들으면 울게 될까 아니면 웃을까?

당신은 행복한가?

사실 이 모든 사람들이 이미 충분히 행복해 있었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가끔씩 쟈스민과 루퍼트 때문에 괴로워하는 훌륭한 교수만 제외하고는. 

꾸뻬는 너무 깊은 슬픔이나 큰 두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들, 정말로 불행한 또는 불행하지 않으면서도 불행해 하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만났다. 여행을 다녀온 후 그는 자기 일을 더 많이 좋아하게 되었다. 이 특별한 여행에서 발견한 많은 배움들을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그의 삶이 되었다. 
 

 

위의 행복한가라는 질문의 답은 바로 그 아래 문장의 인용에 나와 있다.

사실 이 모든 사람이 이미 충분히 행복해 있었다.

다만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느끼지 못 하고 있을 뿐이다.

이 여행은 꾸뻬씨에게 특별했을 뿐 아니라 나에게 행복했고, 또 누군가에게 행복했음이 틀림 없다.

 

아래에 그의 수첩에 적혀있던 행복에 대한 배움을 정리해 보았다.


 배움
1 행복의 첫번째 비밀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2 행복은 때때로 뜻밖에 찾아온다. 
3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이 오직 미래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4 많은 사람들은 더 큰 부자가 되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행복이라 생각한다. 
5 행복은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산 속을 걷는 것이다. 
6 행복을 목표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노승
7 행복은 좋아하는 사람과 있는 것이다. -여인들
8 불행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다. -비행기에서
9 행복은 자기 가족에게 아무것도 보족한 것이 없음을 아는 것이다. 
10 행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11 행복은 집과 채소밭을 갖는 것이다. 
12 좋지 않는 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에서는 행복한 삶을 살기가 더욱 어렵다. 
13 행복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 쓸모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14 행복이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이다. 
주목할 점 - 우리는 웃고 있는 아이에게 더 친절하다. 
15 행복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16 행복은 살아 있음을 축하하는 파티를 여는 것이다. 
17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는 것이다. 
18 태양과 바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다. 
19 행복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20 행복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달려 있다. 
21 행복의 가장 큰 적은 경쟁심이다. 
22 여성은 남성보다 다른 사람의 행복에 대해 더 배려할 줄 안다. 
23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느 것이다. 

 나는 행복은 우리가 행복이라고 여기는 수 많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행복한가요?"

"왜 아니겠어요?"

 

3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이 오직 미래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6 행복을 목표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노승
9 행복은 자기 가족에게 아무것도 보족한 것이 없음을 아는 것이다.

20 행복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달려 있다.

 

당신은 행복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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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만리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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